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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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기원 추적하는 고인류학자들의 도전기

440만년전 아프리카 산림지대 살던
화석종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유인원과 인간의 특징 조합된 인류
최초 인류 ‘루시’보다 100만년 빨라

10년간 취재·인터뷰·논문 분석 거쳐
발굴 과정 막전막후 그려낸 논픽션

화석맨/커밋 패티슨/윤신영 옮김/김영사/3만2000원

 

2009년 10월, 가장 오래된 인류 조상으로 여겨져 온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보다 무려 100만년이나 앞선 것으로 추정되는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의 모습이 ‘사이언스’ 특별호를 통해 공개됐다. 발굴과 연구를 주도한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팀 화이트 교수 팀은 에티오피아와 미국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아주 먼 과거를 향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려 합니다.”

‘아르디’로 불리는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발굴 과정과 뒷얘기를 담은 논픽션이 나왔다. 아르디는 440만년 전 아프리카 산림 지대에 살던 종으로, 유인원과 인간의 특징이 조합된 인류였다. 사진은 아르디 발굴 장면. 출판사 제공

유인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인류에 속하는 계통을 의미하는 호미니드의 첫 자리를 차지하게 된 화석종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일명 ‘아르디(Ardi)’ 이야기다. 아르디는 지금으로부터 440만년 전 아프리카 산림 지대에 살던 종으로, 유인원 크기의 뇌와 다이아몬드 모양의 송곳니, 이상한 직립 보행을 보였던 유인원과 인간의 특징이 조합된 인류였다.

인류사 첫 페이지를 바꿔버린 발굴에 언론과 학계는 충격을 받았다. “루시보다 앞선 화석, 인류 조상의 역사를 앞당기다”(뉴욕타임스) “인류 진화에 관한 이론을 뒤엎은 화석”(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아르디가 루시로부터 인류의 첫 번째 조상 자리를 빼앗다”(데일리미러) “인류 가계도를 다시 그린 새로운 조상”(인터내셔설 헤럴드 트리뷴)….

아르디의 발견은 오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인류는 어디에서 왔을까, 하는. 여러 분야에서 인류 기원과 진화를 규명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져온 가운데 화석을 통해 인류 기원과 진화 흔적들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1856년 독일 네안더 계곡에서 인류 계통 최초의 화석 네안데르탈인 발견, 1891년 자바섬에서 호모에렉투스 종의 첫 번째 화석 발견, 192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채석장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의 머리뼈 파편 발견, 1959년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영국의 리키 부부에 의해 175만년 전 생존한 진잔트로푸스 발견, 곧이어 근처에서 손 쓰는 인간인 호모하빌리스의 흔적 발견….

아르디 이전까지 호미니드의 대명사는 ‘루시(Lucy)’였다. 1974년 11월24일 아침, 에티오피아 아파르 저지대의 하다르 지역에서 돈 조핸슨은 320만년 전에 살았던, 작은 몸집에 작은 두뇌와 유인원 같은 주둥이가 인상적인 직립 보행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화석을 발견했다. 발굴과 이어지는 화석 복원 작업을 하는 동안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비틀스의 노래 ‘루시는 하늘에 다이아몬드와 함께’가 울려 퍼졌기에 루시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핸슨은 루시가 인류 가계도에 속한 모든 종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주장했고, 루시는 이후 호미니드의 대명사가 됐다.

정말 루시가 최초의 인류일까. 혹시 ‘틈’이 있는 건 아닐까. 800만∼400만년 전 인류와 유인원의 화석 기록이 거의 없지 않는가. 루시로 통칭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너무 갑자기 등장한 건 아닌가.

화이트 교수는 인류와 유인원이 갈라지는 시기와 루시가 등장하는 시기 사이의 ‘틈’에 주목했다. 당시 생화학연구 등에 따르면, 호미니드라는 인류 계통은 아프리카 유인원과 약 500만년 전 또는 600만년 전에 갈라진 것으로 추정됐다. 호미니드가 500만년 전 유인원과 갈라져 나왔고, 최초 인류라는 루시가 320만년 전에 살았다면, 대략 400만년 전 시기에 ‘틈’이 발생하는 셈이었다. 400만년 전 시기의 인류 화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이트 교수는 바로 유인원과 루시 사이의 틈에 창을 내고 들여다보고 싶었다.

루시가 발견된 에티오피아 아파르 저지대 계곡에서 발굴을 했던 화이트 교수팀은 에티오피아의 불안한 내정 때문에 발굴을 하지 못하다가 1992년 재개했다. 1993년 아파르 저지대의 미들 아와시 지역에서 새로운 종의 치아 화석들을 처음 발견한 화이트 교수팀은 이듬해 신종 라미두스의 발견을 알리는 논문을 발표했다. 화이트는 논문에서 라미두스의 송곳니는 작고 뭉툭한 다이아몬드 모양이었고 자체적으로 닳아서 뾰족해지지 않아 인류 계통이라고 주장했다.

1994년 12월, 아파르 저지대 미들 아와시 지역에서 발굴을 이어간 화이트 교수팀은 440만년 전 퇴적층을 따라서 발굴을 이어갔다. 붓질, 붓질, 붓질…. 흙 속에서 서서히 형체가 드러났고, 마침내 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턱뼈, 손뼈, 발뼈, 골반, 머리뼈…. 발굴팀은 125개 이상의 뼈를 발굴했다.

아르디 상상도. 출판사 제공

분석 결과, 화석의 주인공은 여성 ‘아르디’였다. 아르디는 고대 범람원에 위치한 풀이 무성하고 얕은 습지에 쉬러 왔다가 그대로 440만년간 묻혀버렸다. 루시보다 100만년 이상 오래된, 발견된 인류 계통 화석 중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근처에서 다른 화석들도 발굴한 화이트 교수팀은 이후 15년간 철저한 비밀 속에 이 화석들을 복원하고 분석했다.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자생물학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분석 기술도 향상됐다. 이를 통해 아르디가 현생 침팬지와 다른 모습이 확인됐다. 나무에서 생활한 수상 유인원의 특징과 지상에서 두 발로 걷는 이족 보행 유인원의 특징을 겸비하고 있었고, 큰 주둥이와 튀어나온 송곳니, 넓은 앞니가 있는 침팬지와 달리 아르디의 입은 좀 더 짧고 가늘었으며, 저절로 날카롭게 벼려지는 송곳니와 넓은 앞니는 없었다. 결국 루시는 ‘침팬지에서 인류로 진화했을 것’이라는 해부학적 주제의 오랜 변주였다면, 아르디는 완전히 새로운 사실을 보여주는 존재였다.

커밋 패티슨/윤신영 옮김/김영사/3만2000원

책 ‘화석맨’은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커밋 패티슨이 아르디 발굴의 막전 막후를 그려낸 논픽션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무려 10년 동안 취재와 현장 발굴 동행, 관련자 인터뷰, 논문 분석을 거쳐 오랜 시간 집필했다. 이를 통해 과학사적 발견을 흡인력 있는 한 편의 소설 경지로 끌어 올렸다는 평. 등장인물에 대한 입체적이고 구체적인 묘사,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생동감 있는 에피소드, 디테일에 충실한 인용, 속도감 있는 서술, 극적 구성…. 책을 펴드는 순간, 흥미진진한 인류의 기원과 전화에 대한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