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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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죽음으로 몰고 간 약물 중독

19세기 영국에 ‘라파엘 전파’라는 작가 그룹이 있었다. 산업혁명의 본고장인 당시 영국에는 프랑스처럼 혁신적인 사실주의로 소외 계층을 다룬 작가들이 없었다. 중산층의 삶의 모습을 새로운 회화 기법으로 나타낸 인상주의 같은 양식적 경향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자리를 20대 초반 세 명의 작가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라파엘 전파가 메웠다.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 ‘축복받은 베아트리체’.

이들은 산업혁명 후 획일화한 문명의 병폐를 예술을 통해 풀어보려고 했다. 라파엘 전파라는 이름은 라파엘 시대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 나왔고, 라파엘이나 그 전통을 이은 아카데믹한 회화들의 획일화한 방식에 대한 반발에서였다. 르네상스 이래 밝고 어두움을 같은 원리로 묘사하고, 똑같은 조명 아래서 그림을 그린 것이 자연에 대한 진실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라파엘 전파는 초기에는 밝은 색채나 정밀한 세부 묘사를 통해 자연에 더 가깝게 다가가려 했다. 후기로 오면서는 자연의 묘사보다 인간의 내면세계에 더 많은 관심을 나타냈는데, 역시 산업혁명 후 넘쳐나는 물질문명에 대한 문제의식에서였다. 철학이나 종교 같은 정신적인 것에 의지하려는 성향을 보였다.

 

후기의 대표적 작품 ‘축복받은 베아트리체’는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가 28세에 약물 중독으로 죽은 아내 시달을 그리워하며 그린 그림이다. 시달의 표정을 에로틱하면서도 신비롭게 표현했다. 배경에는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영혼을 상징하는 인물을 그려 넣어 그와 시달 간의 영원한 사랑을 상징했다. 해시계를 경계에 둬 자연의 시간을 넘어선 영원한 사랑을 암시했다. 후광을 두른 새가 시달 무릎 위에 양귀비꽃을 떨어뜨리는데, 그것은 시달이 약물 중독으로 죽었음을 암시한다.

로세티는 이렇듯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를 부드러운 윤곽선과 불분명한 형태들로 나타냈다. 신비로운 색채로 에로틱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슬픔과 우울함에 더 가깝게 다가간다. 즐거운 토요일 아침 이렇게 우울한 그림 한 장을 꺼낸 이유는 요즘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마약 문제의 심각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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