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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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이주호, 국정교과서·교육 서열화 부를까

이 후보자 “교육 주체에 자율·자유 최대한 보장”

윤석열 대통령이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하면서 교육계가 연일 시끄럽다. 이명박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했던 이 후보자가 다시 교육부에 돌아오면 과거 논란이 됐던 국정교과서가 부활하고, 교육 서열화가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 후보자는 “교육 주체들에게 자율·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밝혀 교육 정책이 크게 개편될 것으로 보인다.

 

3일 국회 교육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서동용 의원은 “이 후보자 지명은 국정교과서 부활의 신호탄”이라고 주장했다. 서 의원은 이 후보자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서울시교육감에 출마했던 사실을 언급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좌편향 교육을 바로잡겠다”며 “서울형 교과서 개발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교육을 강화하고 가치 중립적이고 자랑스러운 역사관을 정립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서 의원은 “박근혜정부 시절 추진됐던 한국사 국정교과서와 유사한 형태의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공약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난 9월 30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며 후보자 지명 소회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 후보자의 공약자료집에는 “임시 정부는 건국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국민의 대표성을 충족하지 않은 채 구성된 임시기구임을 분명하게 교육할 필요가 있음”이란 내용도 있다. 서 의원은 이를 두고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을 임시 정부 수립이 아닌 1948년 8월15일로 보는 뉴라이트의 역사관이 반영되었던 박근혜정부의 국정교과서와 맥을 같이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 후보자는 2011년 교과부 장관 시절 역사과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그동안 사용해오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주인공이기도 하다. 최근 발표됐던 2022 교육과정 개정 시안에서도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단어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이므로 ‘자유민주주의’란 단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박근혜정부에서 국정교과서를 주도했던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을 최근 발족한 국가교육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지명했다. 여기에 보수적인 역사관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이 후보자까지 10년 만에 교육부 장관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지면서 향후 한국사 국정교과서가 부활하거나 교과서 집필기준이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서점의 한국사 관련 서가. 연합뉴스

서 의원은 “윤 대통령이 교육개혁을 얘기하면서 오히려 과거의 인물을 다시 중용하는 인사를 하는 것이 결국 교육 정책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며 “이 후보자는 교육계로부터 예전에 부적절한 인물로 평가가 완료된 만큼 지명 자체를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가 장관으로 임명될 경우 실제 많은 교육 정책이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정부에서 폐지를 추진했던 자율형사립고(자사고)는 이 후보자의 장관 시절 대표 정책으로 꼽힌다.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면서 자사고와 외고 등은 존치될 가능성이 커졌는데, 이 후보자까지 임명되면 자사고와 외고 등이 모두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진보 교육계에서는 자사고, 외고 등이 고교 서열화를 부른다고 비판하지만 이 후보자는 이런 경쟁, 서열화가 결과적으로는 학력을 높이는 수단이 된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다. 장관 시절에는 학업성취도 전수평가 결과를 학교별로 공개하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후보자 지명 후 첫 출근길에서 “앞으로 경쟁교육과 서열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교육 주체들에게 자율과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교육의 바람직한 발전을 유도할 최상의 방법”이라며 “자율은 책무를 강화하는 것과 병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만 그는 경쟁교육이 아닌 '교육격차 해소'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자는 “AI(인공지능) 개인 교사, IB(국제 바칼로레아) 등 혁신적인 수단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미래에 필요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코로나19로)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많이 벌어졌고, 교육 분야에서도 기초학력 미달자가 많아졌다”며 “이를 해소하려면 창의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뉴시스

교육계에선 이 후보자가 장관이 되면 교육부에 대대적인 개편이 이뤄질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이 후보자가 이사장으로 있던 'K-정책 플랫폼'은 대학 관련 업무를 교육부에서 떼어내 총리실로 옮기고 과학기술혁신전략부를 만들어 대학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현재 교육부에서 초·중등 업무는 대부분 교육청으로 넘어간 상태여서, 대학 업무까지 떼어내자는 것은 사실상 ‘교육부 폐지론’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이 후보자는 자신의 주장이 교육부 해체론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선진국 중에서 우리나라처럼 대학을 (정부) 산하기관 취급하는 나라는 없다. 과감하게 규제개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펼친 것“이라며 “다만 교육부를 폐지하자는 건 아니다. '폐지론'과 대학에 자유를 주자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교육부는 사회부총리 부처이고,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려면 교육부에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후보자는 과거 인터뷰에서 대학 업무를 떼어내는 대신 보건복지부와 나눠 맡은 유아교육을 교육부에서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향후 복지부와의 유보통합(유치원·어린이집으로 이원화된 유아교육·보육 체계 일원화) 추진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보통합은 이전 정부들에서도 수십년간 시도해왔으나 유치원·어린이집 교사 자격·처우 차이 등 예민한 문제가 달려있어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이 후보자는 “(유보통합을 위한) 부처 간 협의와 조율이 미진하다”며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지난 9월 30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후보자는 “중책을 수행할 후보자로 지명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정책은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거나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학생·교사·교수·학부모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장관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