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위암이 의심된다고 하니 서울로 가봐야죠.” 경북 예천군에 사는 직장인 김모(42)씨는 직장에 이틀간 연차를 내기로 했다.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불량 등의 증상을 느껴 안동의 한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았는데 ‘초기 위암이 의심된다’는 의사 소견이 나왔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넋이 나간 것도 잠시, 김씨는 위암 치료로 유명하다는 서울의 대형병원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진료 일정을 잡기 위해서다. 그는 “지방에 있는 병원은 아무래도 규모가 작고, 의료 경험이 풍부한 인력도 부족해 생명과 직결된 수술과 검사는 무조건 서울(대형병원)에서 받아야 한다는 심리가 퍼져 있다”며 “이럴 때 지방에 사는 게 가장 한탄스럽다”고 푸념했다.
#2. 지난해 9월 유방암 판정을 받은 포항시 주민 최정순(60대·여)씨는 몸이 아픈 것만큼 정신적 고통을 느끼고 있다.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 향하는 서울 병원행이 고되기 때문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마을버스로 역사에 가는 것부터 시작해 KTX를 타고 서울에 도착해선 복잡한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최씨는 “직장에 다니는 자녀들이 병원 진료 때문에 휴가를 얻어야 하니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면서 “큰 병이 생기면 대도시로 나갈 수밖에 없고 교통비와 숙박비 등 추가 비용까지 발생해 경제적 부담도 크다”고 말했다.
‘아프면 서울로 간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의료 격차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지방은 고령화에 의료 수요가 지속해서 증가하는 데 반해 의료 수준은 수도권보다 떨어진다. 의료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돼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이 고착화해서다. 실제로 지방 환자들의 수도권 의료 기관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는 모양새다. 지역 간 균형 잡힌 의료 인력 배치와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원정 진료비 12조원… 중증 환자의 30% 다른 병원행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 격차는 국가 균형발전과 궤를 같이하며 시간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수도권을 찾는 환자는 꾸준히 증가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전체 진료비 95조6940억원 중 수도권 진료비는 47조7921억원이다. 전체 진료비의 절반인 49.9%를 차지했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향하는 원정 진료가 늘어난 영향이 컸다. 원정 환자의 진료비는 12조4500억여원에 달했다. 수도권 총진료비의 26.1%를 차지했다. 응급환자 사망률도 시도별 편차가 뚜렷하다. 2020년 기준 치료가능사망률이 가장 높은 곳은 충북으로 10만명당 50.56명이었다. 이어 인천 48.58명, 강원 48.14명, 전남 47.46명, 경북 46.98명 순으로 높았다. 치료가능사망이란 시의적절하게 치료를 받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망을 말한다.
역으로 서울의 사망률은 37.50명으로 확인됐다. 서울 사망률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사망률을 기록한 세종 34.34명 다음으로 낮았다. 다시 말해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응급환자의 생존율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권역응급의료센터 중증 응급환자 전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년)간 40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찾은 중증 응급환자 47만6510명 중 2만2561명(4.7%)이 병원을 옮겼다. 시도별 자료를 보면 중증 응급환자 전원율이 가장 높은 곳은 전남(9.7%)이었다. 전체 평균 전원율(4.7%)의 두 배를 넘었다.
눈여겨볼 점은 바로 병원을 옮긴 사유다. 서울(38.3%)과 경기(26.4%) 등 수도권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시설 부족’으로 환자가 옮겨졌으나 전남(41.3%)과 제주(30.6%), 경북(30.2%) 등 지방은 ‘처치 불가’로 확인됐다. 다시 말해 전문의가 부족해 응급수술이 어려웠다는 의미다. 여기에 최근 5년(2016∼2020년)간 응급실 도착 전 사망률은 전국 평균 0.25%로 나타났다. 119 환자 1만명당 25명이 응급실 도착 전에 사망한 것이다. 지역별로는 경북이 1만명 당 71명으로 가장 사망률이 높았다. 이어 전북 65명, 강원 49명, 제주 45명, 충북 42명, 경남 37명 등이다. 반면 광주는 9명, 서울은 10명, 경기 14명 등으로 비율이 낮았다.
◆“의료 격차 악순환 고리 끊어야”
수도권 의료 쏠림 현상은 지역 간 의료 서비스 격차를 악화한다. 원정 환자가 늘수록 지방 병원은 경영 악화를 호소한다. 의료 인력 이탈과 시설 확대의 어려움으로 결국 의료의 질은 떨어지게 되고 환자는 지방 병원을 불신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구미의 한 병원 관계자는 “전체 의료 인력의 절반가량이 수도권에 집중된 것이 지방 도시의 의료 서비스 하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며 “지역 간 균형 잡힌 인력 배치와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전문가 역시 정부 차원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봤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지방거점병원을 늘리고 수술 실력이 뛰어난 의사와 간호 인력을 강화하는 등 지역 밀착형 의료 환경을 구축하지 않는다면 원정 진료 환자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이가 들수록 병원 때문에 시골이 아닌 대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라면서 “국토 균형발전을 꾀하려면 정책적인 분산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공공 의료기관을 비롯한 각종 인프라에 대한 과감한 지방 투자를 더는 미루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북, 공공의료원 전문의 확충 추진…신안, 응급환자 원격 협진 시범운영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의료서비스 강화를 위한 자구책 마련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비수도권의 의료 공백과 접근성 문제가 대두되면서다.
가령 경북도는 포항·김천·안동에 있는 도립의료원 3곳에 전문의를 충원하고 시설과 장비를 보강하기로 했다. 양질의 공공의료 서비스를 주민에게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경남도는 김해 공공의료원 설립과 의과대학 신설 등을 민선8기 복지분야 도정과제로 뒀다. 응급의료 종합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경남응급의료지원단을 구성한다. 여기에 서부경남 공공병원을 설립한다는 계획을 갖고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섬이 많은 신안군은 하의·암태·가거도·홍도에서 발생하는 응급 환자를 대상으로 원격협진 시스템을 시범운영하고 있다.
원격협진은 원격진료와는 다른 형태다. 원격지 의사가 멀리 떨어진 의료인의 의료과정에 대해 지식이나 기술 자문을 하는 의료 서비스다. 이 시스템은 해무와 태풍 등 악천후로 선박이나 헬기 이송이 불가할 경우 상급병원 전원 시까지 생명 유지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원정 진료 환자의 교통비를 지원하는 지자체도 있다. 제주도가 대표적이다. 제주도는 올해 의료급여 수급자와 차상위 본인부담 경감 대상자 가운데 희귀난치성 질환과 중증 질환자의 교통비를 최대 12회까지 지원하고 있다.
지원 사항은 항공료와 선박비, KTX 이용료 등이다. 18세 미만 질환자는 동반 보호자 1명까지 추가 지원한다. 제주도는 지난 8월 말 기준 희귀난치성 질환과 중증 질환자 177명의 도외 병원 이용 교통비를 집행했다.
여기에 제주도는 지난 3월 전국 8번째 닥터헬기 배치 지역으로 선정됐다. 닥터헬기는 응급의료 취약지역 응급환자의 신속한 항공 이송과 응급처치 등을 위해 운용하는 전담 헬기다. 제주도는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헬기 운영 사업자를 선정함에 따라 12월1일 운항 개시를 목표로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응급 의료전용 닥터헬기가 도입되면 환자 발생 시 도내 어디에서든 신속한 이송과 치료가 가능해진다”며 “생명을 지키는 골든타임을 확보하고 중증 응급환자의 사망률을 크게 줄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