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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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 폐지안에… 여성계 “여성정책 표류할 것”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차관급으로 격하돼 협업 애로
국무회의 출석권 등도 사라져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기존 기능을 보건복지부 산하 본부로 두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공개되자 여성계는 “성평등 주무부처가 사라지면 여성정책이 구심점을 잃고 표류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는 여가부가 폐지되더라도 여성정책은 축소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지만, 장관급의 ‘부’가 차관급의 ‘본부’로 격하되면 기능과 권한 축소는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5일 여성계 등은 여가부가 맡던 가족·청소년, 여성권익 업무 등을 복지부로 이관해 ‘여성가족본부’(가칭)를 두는 정부 방안에 대해 성폭력 피해자 지원 등 여가부 고유 업무가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은아 이화여대 교수(여성학)는 “국가 차원에서 성평등 정책을 핵심으로 하는 주무부처가 없어진다는 게 문제”라며 “여가부가 협업하는 정책 사업이 많은데 업무를 이끌어갈 주체를 없애고 기능을 분산시킨다면 성평등 정책은 후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지향할 수 있는 방안이지만 (여성 관련) 문제가 많이 나오는 현 단계에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5일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관련 기능을 보건복지부 산하 본부로 두는 안을 골자로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정부서울청사 여성가족부 복도. 연합뉴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여가부는 (기능이 아닌) 대상 중심의 부처이고, 여성 대상 (업무가)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더 많은 인프라를 가진 부처의 틀 속에서 일하는 것이 더 유기적”이라고 설명했다. ‘협업보다는 통합이 낫다’는 것인데, 여가부 업무가 대부분 유관부처와의 협업을 통하거나, 간접 지원 사업 위주여서 정책을 펼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제기돼왔다.

 

일례로 경력단절 여성에게 취업상담과 직업교육훈련 등 취업 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는 고용노동부와 여가부가 공동으로 운영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에는 여가부 업무 중 ‘여성 고용’ 부문을 고용부,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방안 등은 법무부로 이관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하지만 여가부가 폐지돼도 여성정책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남는다면 다른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업은 필수적이다. 예컨대 지자체가 펼치는 정책·사업이 성별과 무관하게 혜택을 주는지 평가하는 ‘성별영향평가’ 사업이 대표적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장관급 부처로도 협업이 쉽지 않았는데 복지부 내 차관급 본부가 되면 다른 부처와 제대로 협업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또 본부로 격하되면 장관이 갖던 국무회의 출석권과 의안 제출권이 없어지고, 국무총리에게 소관 업무와 관련된 다른 부처 업무와의 조정을 요청하기 어렵다는 점도 여성정책 축소 근거로 제기된다.

 

권 대표는 “복지부든 법무부든 젠더 관점에서 정책을 다루지 않았던 곳에서, 게다가 그 수장도 젠더 관점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여가부가 다뤘던 이슈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전국의 286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전날 성명을 내고 “여성이 폭력 피해를 겪고, 일터에서 살해당하는 사회”라며 “성평등 정책 전담부처인 여가부의 책무와 권한이 더욱 강화돼야 하는데 정치적 위기마다 ‘여가부 폐지’ 운운하며 여성 인권과 성평등 정책을 후퇴시키려는 정부와 국민의힘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정한 기자 h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