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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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단장한 산·강·호수… 곳곳마다 ‘花려한 유혹’

지자체 ‘K-가든’ 조성 열풍

年 400만 방문 ‘1호 국가정원’ 순천만
4000억↑ 지역경제 파급효과 입소문

2025년까지 국가·지방정원 46곳 확충
도시브랜드 구축·환경 보전 삼중포석
가로림만·호미반도 등 해양정원 도전

일각선 무차별적 경쟁·정원 난립 우려
전문가 “도시 ‘녹색 허파’ 취지 살려야”
전국에 ‘정원(庭園) 열풍’이 불고 있다. 1호 국가정원인 순천만에 이어 울산 태화강도 관광지로 높은 인기를 끌면서 국가정원이 새롭고 차별화된 관광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관심은 뜨겁다. 지역색을 입힌 ‘해양정원’, ‘생태정원’ 등 지방정원 사업이 앞다퉈 추진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민선8기 핵심과제로 선정, 범시민추진위를 구성하는가 하면 캠페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정원 조성에 행정력과 정치력을 집중하고 있다. 정부도 정원문화 확산에 적극적이다. 한국형 정원으로, ‘케이(K)-가든’ 정책으로 불릴 만하다.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어서다. 산림청은 정원산업과 정원문화 확산의 거점 역할을 하는 국가·지방정원을 2025년까지 46개소로 확충하고 민간정원도 100개소까지 늘릴 계획이다.

 

순천만국가정원 야수의 장미정원. 순천시 제공

◆지자체 너도나도 정원 조성 붐

국내 국가정원은 순천만과 태화강 국가정원 2곳이며, 지방정원은 강원 영월군 연당원, 전남 담양군 죽녹원 등 5곳이다.

8일 산림청에 따르면 현재 조성을 추진하거나 계획하고 있는 국가·지방정원은 40여곳에 달한다. 충남 아산시 신정호지방정원, 경기 성남시 탄천지방공원, 경북 경주시 화랑지방정원 등이다. 이들 지자체는 산이나 강, 습지 등을 활용한 국가·지방정원 조성에 시동을 걸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지자체는 충남도다. 충남도는 충남 서산시와 태안군에 걸쳐 있는 가로림만 일원을 2026년까지 해양정원으로 조성할 계획을 세웠다. 총사업비만 1577억원이 투입된다. 충남도는 해양정원을 조성해 해양생태 거점을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 서산 오지리 갯벌 생태계 복원, 갯벌정원 운영 등 건강한 바다환경을 만들고 생태탐방로, 브랜드 상품 개발 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끈다는 계획이다. 2016년 가로림만권역 지속가능발전협의회 구성 후 지난해 12월 가로림만해양정원 설계비에 국비 35억8000만원이 반영되면서 탄력을 얻고 있다. 충남도는 올해 하반기 해양생태계법을 개정해 1호 해양정원으로 지정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경북 포항시도 ‘호미반도 국가해양정원’ 조성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내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1730억원을 들여 호미반도 일대 우수한 해양생태계를 보전하고 활용하기 위한 해양생태 및 교육 공간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시는 2020년부터 주민설명회와 전문가 자문회의를 열어 올해 4월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마무리했다. 지난 8월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으로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순천만국가공원 한국정원.

강원도의 경우 현재 춘천시와 정선군이 국가정원 조성사업에 뛰어들었다. 춘천시는 국내 유일 정원소재실용화센터를 2025년 개장 목표로 추진한다. 정원소재실용화센터는 산림청 산하 정원식물소재 및 정원자재·용품에 특화된 전담 국립 기관으로 춘천을 비롯한 도내 정원산업 발전 및 정원문화 확산을 위한 구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순천만국가정원 호수정원 전경.

춘천시는 향후 정원소재실용화센터를 거점으로 지방정원을 조성하고 국제정원박람회 유치 등 호수국가정원으로 성장시켜 갈 계획이다.

정선군은 2018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알파인스키 경기가 치러진 가리왕산에 국가정원 유치를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한 범도민 추진위원회까지 결성, 국회를 찾아 국비 지원 등을 요청하는 등 유치 총력전에 나선 상황이다. 정선군은 가리왕산 국가정원을 ‘올림픽 국가정원’으로 명명, 올림픽 유산을 계승하고 정원산업을 폐광지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방침이다. 대전 서구도 노루벌 국가정원 지정을 추진 중이다. 서철모 대전 서구청장은 “노루벌 생태단지를 내륙형 국가정원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구봉산 둘레길을 국가정원 조성 예정지까지 확장해 체류형 관광지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국가브랜드 도시로 도약…산업·생태 공존

지자체들이 국가 및 지방정원 조성에 나서는 건 지역경제 활성화와 도시브랜드 구축, 환경 보전 등 두 마리 이상의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정원은 국가브랜드인 만큼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주목, 가치가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정원 문화와 산업을 육성, 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도도 높다.

전남 담양군 죽녹원 지방정원 전경. 전남군 제공

지자체들이 정원 조성에 사활을 거는 가장 큰 이유는 지역경제 활성화다. 순천만과 태화강 국가정원은 매년 수백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을 이끈다. 2015년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순천만 국가정원의 전체 규모는 92만7000㎡로, 주제정원만 57개에 이른다. 연간 방문객은 400만명이 넘는다. 2019년 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규모는 축구장 120개 크기인 83만5000㎡이다. 개원 후 매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으며 소위 대박을 쳤다. 순천만·태화강 국가정원 두 곳은 각각 연간 4000억원, 411억원 이상의 지역경제 파급 효과를 거둬들이고 있다.

도시 재생으로도 연결된다. 영국 콘웰주의 공공정원인 ‘이든 프로젝트 식물원’은 식물원·정원의 환경적·공익적 기능을 지역과 함께 공유하고 지역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500명의 직원 가운데 85%가 지역주민이다. 관람객수는 연 1800만명이며 경제적 효과는 1조8000억원에 이른다. 지역 협력사업도 활발하다. 지역거점 의료기관과 협업, 공동체회복사업, 도시계획 참여에 적극 나선다.

태화강 국가정원을 조성한 울산은 산업도시에서 생태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의 부작용을 극복하고 첨단산업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울산시가 태화강을 국가정원으로 조성한 배경엔 오염된 태화강 복원과 함께 정원을 통한 산업도시 이미지 탈피도 들어있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순천만 습지 방향으로의 도심 팽창을 방지하는 완충 역할을 한다.

충남 가로림만 감태갯벌정원.
충남도 제공

◆경쟁 과열·차별화 모호 해소는 과제

일각에선 경쟁 과열로 정원 난립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부분 지역이 산, 강, 호수 등 자연 생태를 정원 테마로 잡고 있다 보니, 지역특색이 모호해진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띠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나온다.

국가정원은 수목원정원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조성·운영하는 지방정원 가운데 국가정원 지정요건에 적합한 경우 산림청장이 지정한다. 과거 ‘제주올레길’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자 지자체가 너도나도 ‘둘레길’ 조성에 나서면서 특색을 찾기 어렵다는 전례와 비슷한 길을 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사후 관리 부실도 우려점으로 제기된다. 우후죽순 생겨난 전국 둘레길의 경우 사후 관리가 안 돼 코스가 이어지지 않거나 주택가를 통과하는 등 면밀한 계획이나 예산이 수반되지 않으면서 ‘지역의 특색있는 걷는 길’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는 길’이란 인식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국가정원 조성 역시 유행처럼 개장 초기 반짝 주목을 받았다가 부실한 사후관리로 애물단지로 남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산림전문가는 “국가정원은 개발 우선인 도시 계획의 열기를 낮추고 생태 보전 등 산업과 생태가 공존할 최적의 사업이라 볼 수 있지만 국가정원에 대한 수요와 점진적 조성으로 대두되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권진욱 영남대 교수(조경학과)는 “국가정원을 만드는 건 그 지역의 도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라면서 “인프라는 물리적 역할은 물론 경제적 파급효과 등 사회적 가치를 줄 수 있는데 도시 기반의 녹색허파라는 핵심을 잡고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어 “경쟁 과열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데 정원이 환경개선 등에 효과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생기는 것은 오히려 이점이 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전·춘천·포항=강은선·박명원·이영균 기자, 전국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