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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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이 미운 에르도안 "핀란드 먼저 나토 가입 어떨까"

기자회견에서 스웨덴 맹비난… "이대론 안 돼"
'핀란드·스웨덴 나토 가입안 분리해 처리' 제안
난처해진 핀란드 "스웨덴과 같이 가입하고파"

핀란드·스웨덴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막을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아 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이 두 나라를 바라보는 시각차를 드러내 눈길을 끈다. 튀르키예 입장에서 볼 때 핀란드는 잘하고 있으니 먼저 나토에 가입시키되, 스웨덴은 ‘문제’가 많으니 좀 더 지켜보자는 것이다. 이에 핀란드는 “스웨덴와 같이 가입하고 싶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9일 외신에 따르면 지난 6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 참석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스웨덴을 맹비난했다. 그는 “테러조직이 스웨덴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고 테러조직이 스웨덴 의회에 있는 한 튀르키예가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긍정적 접근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말로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선을 그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프라하=EPA연합뉴스

반면 핀란드에 관해선 “우리의 입장은 긍정적”이라고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핀란드·튀르키예 관계는 스웨덴·튀르키예 관계와는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며 “핀란드는 테러리스트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나라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테러조직, 테러리스트란 튀르키예 정부에 반대하는 쿠르드노동자당(PKK) 및 그 소속 조직원들을 뜻한다. 튀르키예는 앞서 스웨덴·핀란드 양국 정부가 PKK 조직원들한테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 난민처럼 대우하는 것이 ‘테러를 조장하는 행위’라며 두 나라의 나토 가입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스웨덴·핀란드 양국이 “테러조직을 단속하겠다”고 약속하자 반대를 철회하긴 했으나 튀르키예는 여전히 그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철저히 감시하는 중이다. 현재까지 핀란드는 약속을 잘 지키고 있으나 스웨덴은 그렇지 않다는 게 에르도안 대통령의 판단인 듯하다.

 

사실 스웨덴은 얼마 전 에르도안 대통령을 몹시 분노하게 만들었다. 스웨덴의 TV 뉴스 프로그램 ‘스웨덴 뉴스’가 에르도안 대통령의 인권유린 의혹을 비판하는 풍자 형식의 특집물을 내보낸 것이 발단이었다. 튀르키예 외교부는 자국 주재 스웨덴 대사를 초치해 “우리 대통령, 그리고 튀르키예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며 엄중히 항의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에 참석한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오른쪽 2번째)가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왼쪽) 등 각국 정상들과 대화하던 중 격앙된 표정을 짓고 있다. 프라하=EPA연합뉴스

이날 기자회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핀란드 먼저 나토에 가입시키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나토는 기존 회원국들이 모두 동의해야만 새 회원국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다. 현재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안은 기성 회원국 30개 나라 중 튀르키예와 헝가리만 뺀 28개국의 찬성을 얻은 상태다. 그간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안은 ‘패키지’처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으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렇게 할 필요 없이 따로 분리해 핀란드만 먼저 처리하자’는 제안을 내놓은 셈이다. 스웨덴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린 것이다.

 

스웨덴 입장에서는 지극히 모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라하에서 열린 EPC 정상회의 내내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는 격앙된 표정으로 각국 정상과 취재진에게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는 모습이 포착되곤 했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 지난 6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유럽정치공동체’(EPC) 정상회의 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프라하=EPA연합뉴스

더 난처한 쪽은 핀란드다. 나토 조기 가입을 꼭 실현하고 싶지만, 그래도 스웨덴과의 의리가 있는데 ‘너희만 먼저 가입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덥석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EPC 참석을 계기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안보와 지정학의 관점에서 북유럽의 핀란드와 스웨덴은 함께 나토에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물론 판단은 튀르키예와 헝가리의 몫”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