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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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전작도록 ‘정답’ 있는데도… 이중섭 그림 두달 간 거꾸로 걸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촌극’ 궁색한 변명

지난 8월부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아버지와 두 아들’ 위·아래 바뀌어”
지적 잇따르자 공지도 없이 재설치
문체부 전작도록엔 ‘모범답안’ 수록
미술관 “틀린 것은 아냐” 애매한 답변

2021년 ‘황소’ 기증작 소개 때도 실수
윤 관장, 이건희뮤지엄 건립도 반대
이건희컬렉션 향후 행방도 불투명

국립현대미술관이 거꾸로 전시해 혼란이 인 이중섭 그림이 정부의 이중섭 전작도록에도 포함돼 올바르게 게재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가 최고 미술기관은 그림을 거꾸로 걸고, 그림을 다시 되돌린 후에도 틀려서 고쳐 건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부가 수억원을 들여 제작한 전작도록에는 멀쩡한 ‘정답’이 나와 있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은 지난 8월 12일부터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이중섭’ 전시를 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건희컬렉션’ 기증 후 이중섭 작품만을 90여점 모아 처음 선보이는 자리였다. 지난달 말, 전시작 중 1954년 작품 ‘아버지와 두 아들’을 슬쩍 거꾸로 돌려놓은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두 달 가까이 위·아래를 반대로 걸어놨다가, 전시를 본 전문가들이 ‘그림이 거꾸로 걸렸다’는 지적을 하자 일반 관람객에게 아무런 공지 없이 슬쩍 다시 걸어놓은 것이다. 미술관은 애초 기증받은 그림의 액자 뒷면 고리 모양에 따라, 또 삼성 측에서 받은 도판 이미지에 따라 그림을 건 것이었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이중섭’의 1쇄도록에 ‘아버지와 두 아들’이 거꾸로 인쇄된 모습(오른쪽)과 역대 전시, 전작도록 등에서 확인되는 원래 작품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미술계에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나왔다. 실수였다 하더라도 이 같은 실수가 걸러지지 않은 채 약 50일간 방치된 점, 이중섭은 ‘전작 도록’까지 있는 작가라는 점 등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작도록도 보지 않은 것인지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전작도록은 위작 시비와 혼란 방지, 정확한 작품 정보를 정리해 제공하기 위해 이중섭 작품 전수조사를 해 놓은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6년부터 3개년간 매년 약 3억원 예산을 들인 사업이다. 이중섭에 관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이자,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 결과를 축적해 일종의 ‘모범답안’화돼 있는 셈이고 계속 업데이트된다. 문체부와 산하기관인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사업을 맡아 진행하다 2019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됐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인터넷상에서 누구나 접속해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했으나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넘어온 뒤에는 기존 사이트가 폐쇄됐고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된 컴퓨터에서 볼 수 있다. 확인 결과, ‘아버지와 두 아들’ 역시 전작도록에 포함돼 있었고, 국립현대미술관이 뒤늦게 교체한 대로 위아래가 정상적으로 나와 있었다. ‘전작도록을 확인했는지’ 묻는 질문에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우리도 확인했다”고 했다. 보고도 잘못 건 것이다. 한 전문가는 “윤범모 관장이 한국근대미술전문가라고 하는데 걸러내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전시를 쓱 보고도 ‘어 이거 이상한데’ 해야 할 텐데 이상하다”고 말했다.

미술 관련 우리나라 최고 국립기관이 작품을 거꾸로 건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조용히 넘어가려 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약 50일간 먼저 전시를 보고 간 관람객은 자신이 본 위·아래가 정상인 줄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해명 과정에서 더욱 모순에 빠졌다. ‘대중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고도 왜 정정 공지를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미술관 관계자는 “이 그림은 작가 서명이 없고 정확히 어디가 위·아래인지 명시돼 있지 않아 ‘어떻게 걸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며 “오류로 보고 정정 공지를 할 사항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 왜 고쳐 걸었느냐’는 질문에는 즉답이 없다가 추후 별도로 “전문가 자문회의에서 그림자 음영이 좀 더 자연스러운 쪽으로 의견 주신 것이고 이를 수용해 교체한 것”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처음 건 방향도 틀린 것은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면 ‘이 그림이 정확히 위·아래가 없는 그림이냐 있는 그림이냐, 있다면 어디가 위라고 보는 것인지 국립현대미술관의 입장이 무엇이냐’고 묻자 “지금 고쳐 걸어놓은 대로가 맞다”고 말했다. 이번엔 다시 위·아래가 없는, 어떻게 걸어도 상관없는 그림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컬렉션 관련 문제가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윤 관장이 이건희컬렉션을 소개하는 기자회견에서 1950년대 그려진 이중섭의 ‘황소’ 연작 가운데, 기증된 작품이 아닌 다른 엉뚱한 황소 그림을 화면에 띄워놓고 소개했다. 과천에서 최근 끝난 ‘생의 찬미: 한국채색화특별전’에서 고미술품인 이상범의 ‘무릉도원도’를 장기간 내놓은 것이 적절한 관리인지 논란이 됐다. 과천에서 진행 중인 ‘이건희컬렉션 특별전: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 전시에서는 전시예산 4억6000만원의 60% 넘는 금액이 전시 공간 장식에 쓰여 논란이 일었다. 이건희컬렉션 전체 목록이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도 논란이다. “최대한 빨리 공개하겠다”는 말을 하며 1년 6개월이 지났다.

이건희컬렉션의 향후 행방도 국립현대미술관은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이건희기증관을 지어 이건희컬렉션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공식적인 정부 입장이다. 그런데 문재인정부 시절 이런 필요성에 찬성 입장을 밝혔던 윤 관장은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두 언론 매체와 인터뷰에서 입장을 바꿨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계속 소장하는 것이 기증 취지에 맞는다고 주장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대중에게 작품 위아래를 혼동케 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덕수궁에서 2020년 연 ‘박래현:삼중통역자’ 전시 때도 상하 반전된 도판을 언론에 제공했다가, 거꾸로 된 그림이 보도된 후 뒤늦게 인지하고 정정했다. ‘생의 찬미:한국채색화특별전’에서는 민화와 채색화를 동일시한 교육자료를 제작해 두 달간 비치했다가 전량 폐기했다. 잇단 사건에 미술계 관계자는 “신뢰도가 하락하고 기능이 마비된 조직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