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관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다. 제발 공부들 좀 하시라.”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2022 국민미래포럼’에서 만난 취재진에게 이같이 말했다.
앞서 정 위원장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 침략으로 망했을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고 써 파문이 일었다.
이에 야당은 “일제가 조선침략을 명분으로 삼은 식민사관”이라며 비판을 쏟아냈고 여당 내에서도 “전형적인 가해자의 논리”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정 위원장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역사학자들은 정 위원장의 발언을 어떻게 생각할까.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 위원장의 주장은 당시 조선의 상황을 과도하게 비하함으로써 일제의 침략이란 본질을 가리고 있다고 비판이 많다.
◆우리 스스로 망했다는 조선 망국론…실제로는
정 위원장 주장의 핵심은 ‘조선은 스스로 무너졌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의 잔혹한 학살과 침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전에 조선이라는 국가공동체가 중병에 들었고, 힘이 없어 망국의 설움을 맛본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식민지배의 원인을 조선 내부에 있었다고 분석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최근 논란을 언급하며 “한국은 나름대로 문명개화를 위한 개혁의 길을 가고 있었고, 다만 일본보다 30년 정도 뒤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격차’가 그만큼 컸을 뿐”이라며 “‘한국은 이미 스스로 망하고 있었다’는 논리는 식민주의자들이 만든 것이기도 하고 또 역사적 사실과도 거리가 먼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1960∼80년대 일본의 식민사관을 비판하고 한국의 ‘내재적 발전론’을 주장한 일본의 역사학자 가지무라 히데키의 주장을 인용하며 ‘조선은 스스로 망했다’는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조선은 일본보다 20여년 늦게 개항을 했고 서구와 직접 접촉한 일본과 달리 개항 상대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문명개화의 길이 더딘 것뿐 개화의 단계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의 사건으로 청국과 일본에 간섭과 방해를 받은 것 등이 개혁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개혁의 속도가 다소 조정되기는 했지만, 갑오개혁에서 제시한 문명개화는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며 “각종 관제 개혁이 이루어졌고, 조세제도, 징세제도, 경찰제도, 군사제도 개혁 등이 진행되었다”고 말했다.
또 “1905년 이후 한국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입헌군주제를 모색하고 있었다”며 “대한제국이 그대로 존재했다면, 1919년 즈음에는 한국에 공화제 혁명이 일어났을 가능성도 있다. 입헌군주제나 공화제로 바뀌었다면, 개혁 사업은 훨씬 더 속도를 낼 수 있었을 것이고, 한일간의 격차는 더욱 좁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식민지배와 수탈의 본질은 일제의 침략
조선왕조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 위원장의 주장은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리가 국권을 빼앗긴 것을 마치 우리의 잘못인 것처럼 이야기한다면 일제가 저질렀던 만행이 가려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재의 우리가 가진 문제점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역사를 인용하는 것은 적절하지만 정 위원장은 자신의 주장에 활용하기 위해 무리하게 동원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즉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 없고 일본이 조선왕조와 전쟁을 안 한 것이 아니라 청일전쟁, 동학농민운동 등을 통해 조선을 하나씩 무력화시켰다는 것이다.
반 교수는 “한미일 군사 훈련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이 일본의 군사력 증강과 제국주의 시절로 회귀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조선왕조의 부패로 인해 망했다고 이야기하면 논점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