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고품격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세계적 안내서로 이름이 알려진 ‘미쉐린 가이드(Michelin Guide)’는 프랑스 중부의 미쉐린 형제가 설립한 타이어 회사 미쉐린의 실적 향상을 위한 전략이 시작이었다.
1889년 프랑스 중부 끌레르몽 페랑에 미쉐린 타이어 회사를 세운 앙드레와 에두아르 미쉐린 형제는 당시 열악한 도로 여건과 수천대에 불과했던 자동차로 인해 타이어 소비가 부족할 것을 우려하고, 어떻게 하면 타이어를 더 많이 소비할 수 있게 할까를 연구한 끝에 운전 장려의 일환으로 운전자를 위한 무료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지금은 이른바 ‘여행 맛집’ 표준 안내서가 됐지만 당시 책자에는 여행 중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 정보와 함께 타이어 교체 방법이나 주유소 위치 등 운전자를 위한 유용한 정보도 담겼다.
회사 성장으로 명성을 함께 얻게 된 미쉐린 가이드의 풍부한 내용을 위해 형제는 익명의 전문 평가원들을 고용해 여러 레스토랑을 방문·평가하게 했고, 이는 현재 선정 시스템의 뼈대가 됐다. 요리의 수준, 요리의 완벽성, 요리를 통해 표현한 쉐프의 창의적인 개성, 조화로운 풍미,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이라는 5가지 원칙을 준수한다.
미쉐린 가이드하면 떠오르는 ‘별점 시스템’은 1926년에 처음 도입됐으며, 1957년에는 현재 ‘빕 구르망(Bib Gourmand)’으로 불리는 카테고리도 등장했다. 빕 구르망은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의미하며, 도시별 합리적인 수준의 가격(現 유럽 35유로, 미국 40달러, 일본 5000엔)을 기준으로 부여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평균 가격 4만5000원 이상이 대상이 된다.
미쉐린 평가원들은 세계 주요 호텔과 레스토랑에서의 전문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엄격한 수련을 통과한 후에만 평가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이들은 1년에 약 250회의 식사를 하고 호텔에서 160박을 보내며 600여명을 만나고 1000개 이상 보고서를 작성한다. 철저한 익명으로 활동하는 평가원들은 레스토랑 방문 시 일반 고객과 동일한 방식으로 예약하고 식사를 한다. 공정성 유지를 위해 자비로 밥값을 낸다. 만장일치로 별의 수여를 결정하고, 수여 여부는 개인의 의견이 아닌 장시간 논의를 거쳐 객관성을 높인다.
특히 국내에서 매년 발표될 때마다 요식업계의 시선이 쏠리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은 샛별이 떠오르는 무대가 되기도 하는데, 2019년 11월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 2020’에서는 총 179곳 레스토랑 중 2스타를 받은 레스토랑 2곳과 1스타를 받은 레스토랑 7곳이 새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었다.
13일 서울 광진구 비스타 워커힐 서울에서 진행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3’ 1~3스타 레스토랑 발표에서도 여러 곳이 승급 영광을 안았다. 올해는 별을 받은 레스토랑 35곳과 빕 구르망 레스토랑 57곳을 포함해 총 176곳의 레스토랑이 포함됐다.
이날 발표된 1스타 레스토랑에는 지난해의 수상 결과를 유지한 19곳을 포함해 새롭게 1스타를 받은 6곳(승급 1곳 포함) 등 총 25곳이 선정됐다. 1스타는 요리가 훌륭한 레스토랑을 의미한다. 새롭게 1스타를 받은 레스토랑 관계자들은 자신만의 노력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땀과 노력으로 일궈낸 결과라며 가족 등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2스타는 8곳이 선정됐으며, 이 중에는 지난해 1스타에서 올해 2스타로 승급한 1곳이 포함돼 주목을 받았다. 2스타는 요리가 훌륭해 멀리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레스토랑을 말한다. 1스타에서 2스타로 승급한 레스토랑 ‘스와니예’의 이준 쉐프는 “(별점의) 무게감이 느껴진다”며 “동료에게 고맙고, 저를 지지해주는 가족에게도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쉐프는 “저희를 포함해 다이닝 업계에서 사람이 잘 뽑히지 않아 많은 분들이 어려워하시는데 멋진 직업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며 “지식과 경험을 가진 분들이 많고 젊은 분들이 인생을 맡겨도 후회하지 않을 분들이 계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3스타에서는 레스토랑 ‘가온’이 지난해 수상을 유지한 가운데, 레스토랑 ‘모수’가 2스타에서 3스타로 승급했다. 모수의 안성재 쉐프는 소감에서 “미쉐린 가이드에 대해 알아가면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저 무대에 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현실이 되어서 참 행복하다”며 “꿈을 위해 같이 고생하는 직원들과 언제나 저를 지지해주시는 가족 덕분에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안 쉐프는 “3스타의 자켓이 무겁다”며 “별의 개수를 떠나 서울의 미식에 관해 저희가 요리사로서 젊은 쉐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웃었다.
제롬 뱅송 미쉐린 코리아 대표는 “미쉐린 가이드를 통해 미식과 함께하는 즐거운 여행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며 “미쉐린 가이드 발간이 쉐프에게는 용기와 열정, 창의성과 완벽을 향한 끝없는 탐구를 응원할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뱅송 대표는 “미쉐린 가이드 서울과 함께하는 여행은 단순한 미식 탐험을 넘어 쉐프의 용기와 모험이 됐고, 이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나누는 정신이기도 하다”고 의미를 강조했다.
그웬달 뿔레넥 미쉐린 가이드 인터내셔널 디렉터는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미식업계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했지만 서울의 쉐프들은 위기를 의미 있는 성장의 기회로 삼았다”며 “영감을 주는 새로운 레스토랑이 탄생하고 창의성 넘치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등 대단한 미식의 발전이 이뤄졌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K-컬처를 향한 전세계 여행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서울은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며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담은 미식의 정수를 즐길 수 있는 서울에서 더욱 큰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가장 활기차고 개성 있는 미식 문화를 선보이는 곳 중 하나로 손꼽히며, 미쉐린 가이드는 여러 나라에서 한국인 쉐프들이 별점을 받고 활발한 활동으로 인정받는 모습에 주목해 2016년부터 ‘미쉐린 가이드 서울’을 발간하고 있다. 평가 기준은 다른 도시와 동일하게 글로벌 원칙을 적용했다. 한국인과 다양한 국적의 평가원 투입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미식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전 세계 평가 기준의 일관성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