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서명이 없고 어디가 위·아래인지도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에 기존 방향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이중섭’에 전시 중인 1954년 작품 ‘아버지와 두 아들’에 대한 미술관 측 언급이다. 미술관 홍보관이 전한 이 언급은 관장과 전시과장 확인 하에 언론에 전달한 공식 답변이다.<세계일보 10월12일자 20면 ‘전작도록 ‘정답’ 있는데도… 이중섭 그림 두 달간 거꾸로 걸었다’>
미술관 답변대로 ‘아버지와 두 아들’은 위·아래가 불분명한 그림일까? 기자가 이중섭 전작도록을 확인해 보니 이 작품을 위·아래가 불분명하거나 혹여라도 거꾸로도 걸어 감상했던 작품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나와있지 않았다. 반면 위·아래가 분명한 그림으로 서술된 자료들은 여러 곳에서 확인됐다.
◆위·아래는 분명
이중섭 전작도록에는 이 작품이 인용된 사료 6개가 소개되고 있었다. 이 가운데 3개 출처에서 위·아래가 분명한 그림으로 묘사한 문구들이 제시됐다.
1986년 중앙일보사 ‘30주기 특별기획 이중섭전’ 자료에는 ‘이런 소재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화면 전체에 긴장과 투혼이 엿보인다. 그림의 내용을 보면 까마귀가 한 아들의 푸른 옷자락을 물고 늘어지는 것을 아버지가 필사적인 힘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그 아래로 흰옷을 입은 다른 아들은 두 발을 벌리고 펄쩍 주저앉아 고개를 위로 하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고 서술됐다. 한 모서리 쪽에 있는 형상이 하늘을 나는 조류(鳥類·날짐승)이고, 흰옷을 입고 있는 다른 아이는 그 ‘아래’에 있으며 ‘고개를 위로’ 하고 있다고 서술돼 있다. 조류가 있는 쪽이 왼쪽 상단임이 확인된다.
돌베개 출판사에서 2014년 나온 최열의 ‘이중섭 평전:신화가 된 화가, 그 진실을 찾아서’ 453쪽에는 ‘화면 하단에 다리를 벌리고 앉은 아이가 상단의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다. 상단 오른쪽에 누운 자세로 두 팔과 두 다리를 뻗어 푸른 옷 입은 아이를 잡아당기는 아버지의 모습은 위험으로부터 구출하려는 긴박한 자세지만 정작 푸른 옷 입은 아이가 어떤 위험을 겪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 뒤에서 까마귀가 옷자락을 잡아 물어 당기는 게 고작이다’라고 돼 있다. 그림에 대한 묘사 곳곳에서 위·아래가 분명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8월 전시를 개막하면서 이 작품을 거꾸로 걸었다가 약 50일 후쯤 제자리로 돌려놨다. 미술관 측은 이를 관람객들에게 공지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상하를 뒤집어 걸었던 것이) 정정 공지를 해야 할 오류는 아니다”라고 해 해명 과정에서 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일었다.
◆방치된 전작도록
이중섭 작품이 거꾸로 걸린 사고가 일어나면서 전작도록 관리 문제점도 드러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산하기관인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해 구축한 이중섭 전작도록 사이트는 현재 오류 메시지만 띄운 채 방치돼 있다. 오류 메시지와 함께 적힌 문의처에 확인해보니 지금은 전작도록을 관리하지 않고 있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직원은 “제대로 삭제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아 그렇게) 노출됐다”고 설명했다.
전작도록 사업은 2015년 사업계획이 발표돼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예술경영지원센터 업무였고, 2019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관됐다. 한국 대표 근대화가인 이중섭, 박수근을 우선 만들기로 했고 한 작가당 매년 3억원 예산이 배정됐다. 당시 문체부는 “전작도록은 미술품 감정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뿐 아니라, 향후 영문본 해외출판 등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심도 있는 정보를 전 세계 미술계에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런데 현재 전작도록을 관리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은 별도 사이트를 운영하지 않아 일반인 접근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미술관 내 디지털자료실에 사전 예약을 하고 직접 방문해야만 볼 수 있다.
2019년 이관 이후 전작도록은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을까. 지난 11일 기자가 방문해 확인한 전작도록에 1년 6개월 전인 이건희컬렉션 기증 내용은 아직 반영되지 않은 듯했다. 미술관이 거꾸로 전시해 논란이 인 ‘아버지와 두 아들’은 ‘김각 소장’이라고 돼 있었다.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한 항목이거나 확인이 필요한 과거 소장이력이 아닌,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의 소장처가 엉뚱하게 쓰여 있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공개한 연도별 사업계획에선 전작도록 후속 관리 관련 언급이 한 군데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