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녹색건축법)이 제정 10년째에 접어들었지만 아무도 제도 이행을 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건축물의 에너지 소비 총량 설정, 개별 건축물의 에너지 총량 관리 등 법에서 정한 주요 관리대책이 전혀 시행되지 않고 있다.
1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민기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이 국토부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건축물 에너지 소비 총량’을 설정한 시·도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녹색건축법은 시·도지사가 관할 지역 건축물에 대한 에너지 소비 총량을 설정·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총량을 정해 순차적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도록 하려는 취지다. 상업 공간과 가정 등 건물에서 에너지를 쓰면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국가 총량과 비교하면 많지 않지만, 제조·에너지생산 시설이 거의 없는 서울에선 건축물이 시 온실가스 배출의 70%를 차지하는 최대 배출원이다. 하지만 서울시도 에너지 소비 총량을 설정하지 않았다.
소관 부처인 국토부 역시 녹색건축법에 따라 ‘개별 건축물’의 에너지 소비 총량을 제한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개별 건물에 대한 에너지 규제는 일종의 ‘핀셋 규제’ 성격”이라며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총량 설정도 돼 있지 않은 만큼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법에는 건축물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방향성이 나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며 “제도 이행 시 행·재정적 지원에 대한 내용이 미비하다 보니 지자체는 ‘건물을 규제해 어떤 이득이 있지?’라고 느끼기 마련이고, 이런 상황을 두고도 중앙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국토부는 공공건축물의 에너지 관리도 손 놓고 있다. 국토부는 공공건축물의 에너지 소비량을 보고받고, 에너지효율이 낮은 건축물에 성능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요구를 받은 공공건축물 사용자나 관리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따라야 하지만 2016년 이후 지난달까지 성능개선 요구를 받은 117개 건물 중 녹색건축물 전환을 완료한 건 6곳(5%)에 불과했다.
특히 국토부는 매년 에너지를 많이 쓰는 6∼7곳에 성능개선 요구를 하다 2020년부터는 대상을 30동으로 늘렸다. 같은 용도, 같은 면적의 다른 건물보다 에너지를 적게 쓰더라도 성능개선 대상에 포함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상을 넓힌 뒤 실제 녹색건축물로 전환한 건 오히려 줄었다. 성능개선 요구를 받은 92곳 중 2020년에 1곳(1%)이 전환했을 뿐 지난해와 올해는 전환 실적이 전무하다.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건물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첫해인 2020년 4659만t(잠정)으로 전년보다 4% 줄었지만, 지난해(잠정)에는 다시 4770만t으로 늘었다.
김민기 의원은 “건물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이 거의 감소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관계 부처와 지자체의 의지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기후변화협약에 따라 국제사회와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목표(2018년 대비 2030년 40% 감축) 달성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