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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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난민 신청 러시아인 537명… 인정자는 ‘0’

우크라 침공 후 한국행 ‘러시’

최근 7개월간… 우크라인도 11명
법무부 “대부분 심사 완료 안돼”
2021년 1차 심사에 평균 2년 소요

푸틴 軍동원령 후 입국시도 속출
“강제징집, 난민 사유 충분히 해당
러 신청자는 신속 심사 필요” 지적

오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8개월째에 접어드는 가운데, 전쟁 발발 이후 우리나라에 난민 인정 신청을 한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이 500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난민으로 인정된 경우는 아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맞물려 장기화한 난민 심사를 보다 신속하게 진행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19일 법무부에 따르면 러시아가 올해 2월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3월부터 9월까지 7개월간 러시아 난민 신청자는 537명을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난민 신청자는 11명에 그쳤다. 이 기간 전체 난민 신청자(7395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각 7.3%, 0.1%로 많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00일 넘어선 지난 6월 8일(현지시간) 폴란드 프셰미실 인근 메디카 국경 검문소에 도보 출입구 바닥에 한국 선교단체가 적어놓은 응원 메시지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는 “올해 3∼9월 난민 신청자 대부분 심사가 완료되지 않았다”며 “현재까지 심사가 완료된 경우 난민 인정자는 없다”고 밝혔다. 또 “러시아 난민 신청자 수는 역대 최고치였던 2019년 2830명에 비하면 많지 않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난민으로 인정된 우크라이나인이나 러시아인이 없는 건 1차 난민 심사에만 장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난민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인 ‘난민인권센터’가 법무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난민 신청자가 1차 심사 결정을 받기까지 평균 23.9개월이 걸렸다. 2년 가까이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법무부는 센터에 “각 난민 신청 건의 신청일과 1차 심사 결정일 사이 기간의 평균값”이라며 “지난해엔 코로나19 감염병 위기 상황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난민 신청자 면접 일정이 조정돼, 전년 대비 평균 심사 기간이 다소 늘었다”고 답했다.

최근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예비군 부분동원령을 내리며 러시아인들이 요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국내 입국을 시도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법무부는 구체적 현황은 공개하지 않고 “유효한 사증 소지자, 전자여행허가(K-ETA)를 받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통상의 출입국관리법령 및 절차에 따라 요건 미비를 사유로 입국을 불허하고 있다”고 밝혔다. K-ETA는 무사증 입국이 가능한 112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현지 출발 전 홈페이지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 정보를 입력해 여행 허가를 받게 하는 제도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뉴시스

난민인권센터 김연주 변호사는 “강제 징집은 난민 사유(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에 충분히 해당한다”며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과 난민법에 기초해 러시아 난민 신청자에 대해선 좀 더 신속히 심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예비군으로 반전 시위에 참가했던 한 소수민족 출신 러시아인이 최근 국내 공항에서 난민 신청을 해 심사에 회부된 사례가 있다”며 “이처럼 출입국항에서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는데, 공항과 달리 항구에선 이 제도가 정비돼 있지 않아 심사 기회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