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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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중심 ‘쌍순환’에 방점… ‘공동부유’ 앞세워 좌경화 강화 [심층기획-中 시진핑 영수시대]

(하) 경제·사회문제

당대회 ‘국내 대순환 중심’ 내순환 강조
공정기회 제공… 소득분배 질서 규범화
2023년 봄 측근 리창·경제통 허리펑 세워
美 견제 막고 국정 역점사업 속도낼 듯

리커창 등 개방파 대신 충성파로 중용
경제 원칙보다 정치논리 우선 가능성
정치국 신입 위원 절반가량 과학전문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자립화에도 박차

시진핑(習近平) 영수 시대를 맞아 공동부유(共同富裕·소득격차와 불평등을 줄여 모두 잘살자)를 앞세운 중국이 경제·사회 분야에서 좌경화 노선을 강화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체제 운용 원칙이었던 덩샤오핑(鄧小平) 시대 이래의 선부론(先富論: 먼저 일부가 부유해진 뒤 부를 확산한다)이 퇴색하면서 중국 내부의 갈등 증폭과 함께 중국 시장과 연결된 국제사회의 차이나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3일 공산당 총서기 및 정치국 상무위원회(상무위) 구성원을 뽑는 당 20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를 마친 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 상무위 기자회견장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중국공산당은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통해 당헌인 당장(黨章) ‘전체 인민 공동부유의 견고한 추진’과 ‘국내 대순환 주체의 쌍순환 발전 구도’를 명기했다. 당장에 이미 공동부유가 포함돼 있었지만 이번 개정으로 경제 분야를 넘어 중국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의제로 뚜렷하게 부각됐다.

 

시 주석은 16일 당대회 개막식에서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며, 중산층을 확대하고, 소득분배 질서를 바로잡을 것”이라며 공동부유를 4차례나 언급했다.

 

국내 내순환 중심의 쌍순환 전략은 개혁개방의 반대말로 해석된다. 시 주석이 2020년 5월 처음 제시한 쌍순환은 내순환(국내시장)과 외순환(국제시장)을 말한다. 대외적으로 개혁개방과 수출경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내수를 활성화한다는 의미이지만 ‘국내 대순환 주체’라는 용어로 내순환에 방점이 찍혔다. 미국 견제가 거세지자 내수 중심으로 경제를 키우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중국식 경제안보 전략으로 향후 중국 기업에 대한 당국의 통제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시 주석은 개막식에서 “합법소득을 보호하고, 지나치게 높은 소득을 조절하며, 불법소득을 단속해야 한다”며 “재산 축적의 메커니즘을 바로잡겠다”고도 했다. 소득재분배를 위한 부동산 보유세 등 재산세, 상속세, 부유세 등을 신설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중국의 경제·사회 분야는 국무원 총리가 총괄한다. 시 주석은 내년 봄 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 격)에서 측근 리창(李强)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총리에 선출되는 것을 계기로 공동부유, 제로 코로나 등 국정 역점 사업에 대한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上海)시 당서기로 활동한 리창과 함께 허리펑(何立峰)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이 경제 컨트롤타워의 투톱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된 허리펑은 정치국 위원 24명(상무위원 7명 포함) 중 유일한 경제전문가다. 시 주석이 1985~1988년 푸젠(福建)성 샤먼(厦門) 부시장으로 일할 때 인연을 맺어 40년 넘게 친분을 이어왔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중국의 좌경 노선이 강화되면서 개혁개방을 통해 성장해온 중국경제에도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중국경제는 이미 시 주석이 공동부유를 강조하면서 부동산, 정보기술(IT), 사교육 분야 등에 대한 각종 규제와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발목이 잡힌 상태다.

 

제로 코로나에 따른 도시 봉쇄 등의 여파로 중국의 올해 성장률은 목표치인 5.5%에 미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등은 3% 내외로 예상하고 있다.

 

개혁개방을 강조한 리커창(李克强) 총리, 리버럴 성향의 왕양(汪洋)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미국과 협상을 담당했던 류허(劉鶴) 부총리가 퇴진하면서 시 주석의 과속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세력도 사실상 사라졌다. 경제 운용에서도 견제와 균형이 사라지고 측근들의 충성 경쟁 속에서 경제원칙보다는 정치논리가 앞서는 상황이 예견된다.

 

중국은 특히 반도체 등 첨단기술 공급망 등을 놓고 미국과의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자립을 강조하면서 내부완결적 경제체제를 추구하는 강공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정치국에 새로 진입한 위원 13명 중 최소 6명이 과학기술 분야 경력이 있다는 점도 자립을 강조하는 시 주석의 의중이 반영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마싱루이(馬興瑞)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당서기와 위안자쥔(袁家軍) 저장(浙江)성 당서기는 나란히 우주항공 전문가 출신으로 우주항공 4인방의 일원으로 불렸다. 리간제(李干杰) 산둥(山東)성 당서기는 프랑스에서 핵 안전을 공부했고, 천지닝(陳吉寧) 베이징시장은 영국에서 환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장궈칭(張國淸) 랴오닝(遼寧)성 당서기는 중국 최대 방위산업체 중국북방공업집단유한공사의 최고경영자 출신이고, 인리(尹力) 푸젠성 당서기는 공중보건 전문가다. 중앙위원 205명 중에도 중국과학원과 중국공학원 회원이 5년 전보다 4명 늘어난 29명 포함됐다.

 

시 주석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에나 가능했던 1인지배체제를 구축하면서 반대파에 대한 감시·견제, 사회 전체에 대한 사상통제도 대폭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당 대회에 앞서 베이징 시내에 반시진핑 현수막이 걸리고 전국 주요 도시 화장실에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규탄하거나 1989년 6월4일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기리는 ‘8964’ 문구가 발견되는 등 심상찮은 분위기다. 상하이에서도 지난 23일 6명 정도가 베이징 현수막 시위에서 나온 ‘원치 않는다, 원한다’는 의미의 ‘부야오(不要) 야오(要)’를 3회 반복해서 적은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 베이징에 내걸린 현수막에는 ‘핵산을 원치 않고 밥을 원한다’, ‘인민영수를 원치 않고 선거권을 원한다’는 등을 반복한 저항의 메시지가 담겼다.

 

중국 관영 매체들이 당 대회 이후 민심 이반을 우려해 시 주석의 핵심지위와 결속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당 대회 폐막식 회의장 퇴장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국의 갈등 증폭과 향후 진로에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