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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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청정국’ 옛말… 외국인 마약범죄 10년새 6.5배

국적 다양해지고 ‘단순 투약→밀수’ 중범죄화
한국 마약류 범죄 처벌 약해 지적…검찰도 소극적 기소로 대응해와
당정, ‘마약과의 전쟁’… 尹 “특단 대책” 주문 이틀 만에 일사천리
성일종 “마약류 관리 총괄 콘트롤 타워 구축하고 범죄 수사 지원”

‘마약 청정국’으로 불리던 한국은 이제 옛말이 됐고, 외국인 마약 범죄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부산경찰청은 지난달 베트남인 전용 클럽과 노래방에서 '마약 파티'를 벌인 베트남 국적 마약 판매책 A씨 등 외국인 72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인터넷으로 엑스터시나 케타민 등 마약류를 구입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파티 참가자를 모집했다. 또 충남경찰청은 이달 5일 필로폰 등의 마약을 국내에 대량으로 밀반입한 태국인 마약유통조직 총책과 일당 40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라오스에서 필로폰 등을 콜라젠으로 위장해 국제특급우편(EMS)으로 국내에 들여온 뒤 자국민에게 유통하거나 직접 투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에서 외국인들이 저지른 마약류 범죄는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범죄수사연구원이 지난 20일 ‘마약범죄 대응 공동학술대회’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359건에 불과했던 외국인 마약류 범죄는 지난해 2335건으로 약 6.5배로 증가했다. 마약류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들의 국적도 다양해져 2012년 31개국에서 2021년 71개국으로 늘어났다.

 

외국인 마약류 범죄의 유형은 단순 투약에서 밀수로 중범죄화하는 추세다. 범죄수사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외국인 마약범죄의 61.8%가 투약 사범이었고, 밀수 사범은 5.8%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1년에는 투약 사범 비율이 44.7%로 낮아지고 밀수 사범 비율이 20.5%로 크게 높아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불법 체류자들이 본국에서 마약류를 밀반입해 한국에 있는 자국인들에게 판매하거나 함께 투약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외국인 마약류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데는 외국에 비해 한국이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마약류관리법에 따르면 마약류 단순 투약은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 마약류를 제조하거나 유통하면 무기징역이나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법원의 양형은 법이 정해놓은 기준에 크게 못 미쳤다. 지난해 선고된 마약류 범죄 1심 판결 4747건 중 2089건(44.0%)이 집행유예에 그쳤고, 벌금형도 205건(4.3%)에 달했다. 실형이 선고된 경우에도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이 나온 판결은 20건(0.4%)에 불과했다. 실형 판결 중에는 1년 이상 3년 미만의 징역형이 1410건(29.7%)으로 가장 많았고, 1년 미만의 징역형도 463건(9.8%)이나 됐다.

 

검찰도 소극적인 기소에 머물렀다. 지난해 검찰이 처리한 마약류 범죄 1만8695건 중 6205건(33.2%)만 재판에 넘겨졌다. 3668건(19.6%)은 범죄 사실이 인정되나 재판에는 넘기지 않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315건(1.7%)은 상대적으로 처벌이 약한 약식재판에 회부됐다.

 

다만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발생한 마약류 범죄 수위가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마약 제조나 유통 등 중범죄 대신 단순 투약과 같은 범죄가 대다수다 보니 법원 양형도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마약류 범죄 처벌기준이 외국에 비해 낮은 수준은 아니다”라며 “한국은 외국과 달리 단순 투약 사범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양형이 낮아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민의힘과 정부는 최근 국내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마약 유통과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26일 당정협의회를 개최했다. “마약과의 전쟁이 절실하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마약 문제 해결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주문한 지 이틀만이다.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이날 “당정은 마약류 관리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고 마약범죄 수사에 대해서는 인력과 시스템 등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성 의장은 또 “애초에 마약류가 국민의 일상 속에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해야 한다”며 “의료용 마약류는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지만 철저한 관리하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료용 마약류 관리 중독자 치료 및 재활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무엇보다 상품명 앞에 마약을 붙이는 마약 마케팅 등 마약의 피해를 가볍게 보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청소년들에 대한 마약류 예방 교육 등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