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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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SPC, 장기 ‘불매 운동’ 늪에 빠지나 [이슈+]

멤버십 포인트 프로그램 사용자 감소 추세
불매 참여자들, 회사의 근본적 변화 요구
과거 남양유업 불매 장기간 지속으로 타격
일각, 가맹점 피해, 시민간 편가르기 우려
전문가, 가맹점 뒤 숨지 말고 적극 해결 주문

“해피포인트 앱부터 지웠습니다.”

 

26일 직장인 이모(24)씨는 최근 SPC 불매 운동에 동참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빵, 도넛, 아이스크림 등은 대체가 너무나 쉬운 품목이라 애쓰지 않아도 쉽게 불매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리점 강매 등으로 질타를 받은 남양유업의 제품도 먹기를 꺼렸다는 이씨는 “SPC의 사고나, 일련의 과정 수습 과정을 들으니 도저히 사먹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26일 서울 서초구 SPC그룹 본사 앞에서 여성노동단체 관계자 등이 SPL평택공장 노동자 사망사고 관련 추모 기자회견을 마친 뒤 SPC그룹을 규탄하며 계열사 로고를 찢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제빵공장에서 연이어 사망 사고와 손가락 절단 사고가 발생한 한 SPC 그룹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SPC 불매 운동은 올해 초 SPC가 부당노동행위로 경기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고, 노동자들이 단식투쟁에 들어가면서 시작될 조짐을 보였다. 여기에 최근 발생한 산업재해와 이를 대처하는 모습이 알려지며 기름을 부은 상황이다. 

 

SPC 불매운동의 분위기는 이 회사의 멥버십 프로그램인 ‘해피포인트’ 앱 사용자의 감소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인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가 이날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사망 사고가 벌어진 지난 15일 이후 해피포인트 앱 사용자 수는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SPC그룹 허영인(가운데) 회장을 비롯한 계열사 대표자들이 지난 21일 서울 양재동 SPC 본사에서 최근 발생한 계열사 SPL 제빵공장 사망사고와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

아직 단기적인 수치이기는 하나, 사고 당일인 15일 해피포인트 앱의 구글 플레이스토어·애플 앱스토어 합산 일간 활성 이용자(DAU)는 62만8000여명이었다가, 다음 날 57만8000명으로 8% 빠졌다. 평소 60만대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이 앱 사용자 수가 하루 사이 5만 명이 감소한 것이다. 이튿날인 17일에는 57만4000명, 18일에는 54만8000여명으로 감소세가 이어졌고, 19일에 60만명으로 잠시 올랐으나 21일에는 53만8000명으로 급감했다. 22일에는 53만1000명으로 지난 1년간 기록한 DAU 중 가장 낮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각종 커뮤니티에는 파리바게뜨를 비롯해 SPC가 운영하는 브랜드 목록이 공유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불매 운동이 소상공인인 가맹점주를 어렵게 할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또 불매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인데 SNS 등에서 불매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SPC 잘못이지 수많은 가맹점주의 잘못은 아닌데 6000여개의 매장이 다 똑같이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 자영업자들도 얼마나 힘들까”라며 “사태를 모르고 이용하는 분들이나 설령 알고도 이용한 분들을 욕하는 것은 보기 힘들다”는 의견이 올라왔다.

지난 20일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참가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불매 운동에 찬성하는 측은 일시적으로는 가맹점주에게 피해를 주지만 결국 본사 차원에서 압박을 느껴야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남양유업과 SPC 제품 모두 불매 운동하고 있다는 김모(30)씨는 “가맹점주들이 어려움을 겪을 걸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이번 사태가 흐지부지되면 불공정한 시스템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SPC 브랜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날수록 본사가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불매운동의 표적이 된 남양유업의 경우 2013년 이른바 ‘대리점 갑질’ 사태 이후 끊이질 않는 논란으로 주가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시가총액은(지난해 기준) 4600억원 가까이 감소했다. 이에 결국 홍원식 회장이 사퇴를 발표하며, 지분매각 약속을 하기도 했다.

지난 2013년 5월 8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편의점 출입문에 "저희 매장에서는 악덕기업 남양우유 제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했습니다."라고 적힌 팻말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일각의 우려처럼 SPC의 사업구조가 남양유업과 달라, 가맹점주의 피해가 더 클 가능성은 있다. 남양유업 대리점은 통상 여러 회사의 우유 제품을 취급하지만, SPC 가맹점들은 본사와 전속계약을 맺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의 제품들을 팔 수 없어 가맹점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본사가 가맹점 뒤에 숨지 말고 보다 확실한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이 교수는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사과하긴 했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말도 빠지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내용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SPC도 남양유업 때처럼 경영진의 비윤리성 도마 위에 올라, 불매 운동이 상당히 오랫동안 진행될 수 있다”면서 “사망 사고가 난 다음 날 생산공정을 돌리는 것을 보면 애초에 노동 존중 마인드가 결여된 것으로 보이고, 사람들도 남양유업보다 심각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