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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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머리띠 남성부터 BJ 책임론까지… 추측성 '마녀사냥' 경계해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밀어 밀어"…현장 목격자·생존자들, 누군가 고의로 밀었다 증언
유명 BJ 이태원 방문에 더 몰린 인파… 압사 사고 연결 주장도

154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로 온 나라가 애도의 기간을 가지고 있는 이때, 온라인상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무분별한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당초 이 압사 사고의 시발점이 된 것이 토끼머리띠를 한 남성이 밀어밀어를 외쳐서라는 의혹에서부터, 유명 BJ(1인 방송 진행자)의 등장에 사람들이 갑자기 모여들었기 때문이라는 등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확산하고 있다.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 유포로 혼란이 더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31일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사고 현장에 있던 목격자나 생존자들 사이에선 누군가 고의로 밀었다는 증언이 다수 나오고 있다. 골목 위쪽에서 “밀어! 밀어!”, “우리 쪽이 더 힘세 밀어” 등의 말이 나온 뒤 순식간에 대열이 내리막길로 무너졌다는 내용이다.

지난 29일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현장에서 119 구조대원등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처음 밀기 시작한 이들에 대한 구체적 묘사도 나왔는데, 토끼머리띠를 한 남성이 먼저 밀어밀어를 외쳤고 그 직후 압사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5~6명 무리가 밀기 시작했다”, “한국인 남자 무리에 외국인도 섞여 있었다” 등의 특징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실제 온라인상에서 사고현장을 찍은 각종 영상에는 토끼머리띠를 한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피해자들이 밀집해있는 지역으로 고의로 밀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온라인상에서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BJ들에 관한 것이다. 개인방송을 진행하는 BJ들에게 핼러윈 축제는 많은 시청자들을 모을수 있는 콘텐츠다. 그만큼 많은 BJ와 유튜버가 이날 이태원에 몰렸다.

지난 30일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 모습. 연합뉴스

특히 온라인 상에서는 유명 BJ인 케이와 세야가 방송차 사고지역을 들렀고, 직후 이 BJ들을 보기위해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압사사고가 발생했다는 이야기가 무분별하게 확산하고 있다. 실제 두 사람은 압사사고가 발생하기 전 이태원에서 개인방송을 진행했고, 방송 당시 인파들이 몰리기도 했다. 인파로 인해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케이는 “사람 진짜 많아”라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현재 두 BJ가 이태원에 등장하자 마자 이들을 보기위해 사람들이 몰렸고, 그 직후 압사사고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들을 사고의 원인으로 볼 근거는 없다. 과거 유튜버나 BJ의 방송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현재 이들의 당일 방송 촬영분은 개인방송 채널에서 모두 내려간 상태다.

 

논란이 확산되자 결국 케이가 입을 열었다. 그는 개인 방송 채널의 공지를 통해 “저 때문에 많은 인파가 모여 사고가 났다고 추측성 글들이 올라온다”면서 “방송을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너무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그는 “저는 술집을 방문한 게 아니고 인파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술집으로 밀려 들어오게 됐다. 종업원이 ‘지금은 위험하니 나가지 않는게 좋겠다’고 해서 30분 가량 건물 내부에 있다가 경찰분의 통제가 풀린뒤 이태원을 벗어났다”고 해명했다.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려 대규모 인명사고가 발생, 소방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이태원에서 생방송을 했던 BJ 퓨리가 이번 압사사고로 사망했다는 가짜뉴스까지 나왔다. 논란이 확산되자 BJ퓨리는 “저와 함께 방송했던 동생, 언니는 모두 무사하다며 걱정 해주시는건 감사드리지만 피해 유가족분들을 위해서라도 저희에 대한 억측은 자제 부탁드린다”고 썼다.

 

경찰은 확인되지 않은 각종 허위사실 유포 행위에 대해 강력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실제 사건 초기 온라인 상에는 “가스 유출이 있었다”거나 “일대 업소에서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사탕이 돌았다”는 소문도 나왔다. 하지만 경찰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참사와 관련한 마약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경찰이 압사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뉴스1

전날 총 475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꾸린 경찰은 현장 일대의 CCTV 영상 등을 확보해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선 상태다. 경찰은 사고 현장 수습이 끝난 뒤 서울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뒤편 골목길에 설치된 CCTV 영상을 다수 확보해 분석 중에 있다. 또 SNS에 게재된 사고 당시 현장 동영상을 확보해 상황을 재구성하고 있다. 아울러 주변 상인이나 사고 현장에 있던 시민 등 목격자들을 상대로 최초 사고 발생 지점, 이후 상황 전개 과정 등도 세밀히 확인할 계획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로 인한 인명 피해는 이날 기준 303명이다. 직전 집계치인 전날 오후 11시 기준의 286명보다 17명 늘었다. 사망자 154명은 변동이 없다. 부상자 수는 132명에서 149명으로 증가됐다. 부상자 중에서는 중상자가 3명 줄어든 33명, 경상자가 20명 늘어난 116명이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