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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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소재 놓고 의견 분분… 주최자 없어 국가배상 어려워 [이태원 핼러윈 참사]

책임 소재 놓고 의견 엇갈려

관리·감독문제 있어야 국가배상 성립
일반도로서 발생해 책임 묻기 어려워
“사고 유발자엔 업무상과실치사 적용”

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 사흘째인 31일 이번 참사에 대한 책임 소재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핼러윈 축제’라는 특성상 행사 주최자나 안전관리 책임자가 불명확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형사처벌은 물론 국가배상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다만 “누군가 고의로 밀었다”는 목격담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이들에 대한 처벌 가능성이 제기된다.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사고 현장 부근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미국인 희생자 2명의 사진이 붙어 있다. 뉴시스

법조계에 따르면 통상적인 압사 사고의 경우 해당 시설에 대한 안전관리 책임자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된다. 과거 사례를 보면 행사장이나 학교 등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 등에서는 행사 주최자나 안전관리 책임자들이 이 혐의로 처벌된 전력이 많다.

2005년 10월 경북 상주에서 일어난 ‘운동장 압사 참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관람객이 몰려 11명이 사망하고 100여명이 다친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김근수 전 상주시장, 행사를 주관한 방송사 PD, 상주시청 전직 국·과장은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이들은 모두 금고형의 집행유예 또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각각 선고받았다.

1990년대 말 광명의 한 백화점에서 에스컬레이터 사고로 1명이 희생될 때는 물론, 대구 우방타워랜드에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구 우방타워랜드에서 진행된 라디오 공개 방송에 수천 명의 학생이 한꺼번에 입장하려다 여중고생 3명이 숨진 사고와 관련해서도 당시 안전관리자들이 대거 수사대상에 포함됐다.

다만 이태원 압사 참사의 경우에는 주최자가 없을 뿐 아니라 특정 시설이 아닌 일반 도로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묻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법조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서울경찰청 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들이 3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였고 지자체나 경찰 등이 사람들이 이만큼 모였을 것을 예상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법적 책임은 다른 문제”라며 “국가배상이 성립되려면 국가의 고의·과실로 관리, 감독 책임이 문제가 되어야 하지만 이번 사건은 국가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한규 법무법인 공감 변호사도 “현장에 있었던 경찰이 경찰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한 상황이었는지 등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국가배상책임을 추궁하기는 어려워보이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야구장이나 출퇴근길 지하철 등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매뉴얼 마련과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생존자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목격담은 새로운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사고 현장에서 일부 시민이 “밀어 밀어”를 외쳤다는 내용이다. 경찰은 현재 폐쇄회로(CC)TV 등 사고 당시 장면을 분석해 해당 증언이 사실인지 확인 중이다. 이 같은 목격담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검사 출신의 김은정 법무법인 리움 변호사는 “‘밀어 밀어’를 외쳤던 사람들이 특정 가능하다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문제가 될 것”이라며 “의사가 수술을 잘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하철에서 실수로 남의 발을 세게 밟는 경우나 밀쳐서 다치는 경우 업무상과실치상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많은 인파 속에서 자신이 밀 경우 누군가 넘어질 수 있다는 걸 예상하면서도 밀었다면 이들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박미영 기자 mypar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