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127시간 멈추자 뒤늦게 IDC 중요성 대두
지난달 15일 경기 판교 SK C&C IDC에서 발생한 화재로 이곳에 메인 서버 3만2000대를 둔 카카오의 서비스가 중단됐다. 그러자 메신저부터 메일, 택시 호출 등 생활 속에 스며든 여러 서비스에서 장애가 발생했다. 완전한 복구에는 5일하고도 7시간30분이 걸렸다.
네이버도 이번 IDC 화재로 서비스에 문제가 발생했다. 강원 춘천시에 자사 IDC를 별도 보유한 덕분에 장애 복구가 빨랐다고는 하지만 완전한 복구까지는 이틀 이상이 소요됐다. 이로 인해 국민 포털서비스라는 기업의 명성에도 금이 갔다.
◆의원 입법안 어떤 내용 담겼나
전 국민이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들이 한순간에 무력화하자 정치권은 ‘과잉 규제’라며 폐기했던 법안을 다시 꺼냈다.
사태 발생 사흘여 만에 여야는 방송통신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양측 법안 모두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부가통신사업자에게도 방송통신재난관리계획을 수립·시행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달 18일 발의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 안은 부가통신사업자에게만 이 의무를 부과했지만 과방위 야당 간사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 안에는 데이터센터사업자에게도 같은 의무를 부과하도록 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박 의원 안은 ‘서버, 저장장치, 네트워크 등의 이중화 및 이원화 의무’를 명시했지만 조 의원 안은 ‘데이터센터의 보호 의무를 부과’한다고만 정했다.
◆개정안, 무엇이 문제인가
부가통신사업자에게 방송통신재난관리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2일 업계에 따르면 개정안 통과 시 정부는 이를 근거로 민간기업에 자료 요구 등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기업비밀이 노출되거나 특히 민감한 데이터가 정부의 관리하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다. 무엇보다 재난관리계획 의무가 부과됨과 동시에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징금 처분이 내려질 수도 있다. 문제는 이 과징금이 과거 최대 3000만원에서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 사건 이후 매출액의 3%로 대폭 상향되면서 기업의 부담이 커졌다는 점이다.
이 법안의 또 다른 핵심인 서버의 ‘이중화’는 원래 서버의 내용을 다른 서버에 복사해 두는 기본적인 안전 개념이다. 이중화는 같은 데이터센터 내에서 작업이 이뤄지는 한계가 있어 이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보안 조치인 ‘이원화’도 함께 언급된다. 이원화는 별도의 데이터센터에 같은 내용을 저장해두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응과 복구가 빠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인 구글 등이 여러 차례의 화재에서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이 덕분이다. 다만 이를 법으로 강제할 경우 기업마다 다른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 비용 증가로만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2년 전 국회에서 어떤 논의 있었나
이 법안이 과거에는 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을까. 국회가 업계의 반론을 전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카카오와 네이버 등이 회원사로 가입된 한국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는 2020년 3월 방송통신발전법 개정안 검토의견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자료를 보면 인기협 측은 정보통신망법과 같은 법 시행령에 이미 재난에 대비한 보호 조치 등이 이뤄지고 있어 이중 규제라는 논리를 폈다. 특히 대부분의 부가통신사업자는 지진, 화재 등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두고 있다고도 했다. 또 서버 등 IDC는 사회기반시설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의원들은 대부분 업계의 논리에 공감했다. 2020년 5월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산업 발전에 저해되는 과잉 규제 요소가 있다는 점도 일리가 있는 쟁점”이라며 법안 통과에 반대했고,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영업비밀, 프라이버시 침해 이런 걸 굉장히 염려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결국 민생당 채이배 의원만 홀로 “데이터센터를 재난에 대비하자고 하는데 그 내용을 빼면 알맹이가 없는 법안이 된다”고 말했다.
◆국감장에선 네이버·카카오 총수도 기류 변화
이번에는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지난달 24일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카카오와 네이버 총수는 달라진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조승래 의원이 방송통신발전법 개정안에 대한 생각을 묻자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은 “카카오 먹통 사태로 얼마나 생활 곳곳에 불편을 느끼게 했는지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됐고 이 계기로 인해 대한민국 인터넷 전반이 사실 방향성과 이런 부분에서 좀 더 업그레이드되는 여러 모습으로 승화되는 바람을 갖고 법적인 부분은 제가 정확히 파악을 못하고 있어서 직답이 어려운 점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도 “구체적 법안에 대해 연구하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답을 드리자면 사용자한테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하면 협력할 수 있다. 선행해야 될 일은 앞으로 사용자 보호라든지 또 한 가지 해외 업체와 차별화 없이 이뤄진다고 하면 노력하는 일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두 기업의 총수가 개정안의 취지에는 공감한 것으로 읽힌다.
◆업계 “사기업에 책임과 업무 다 떠넘겨” 반발
정보통신(IT) 업계에서는 여전히 개정안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통신·방송사와 순수 사기업인 플랫폼 기업은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라며 “업계에는 대기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도 있는데 법안의 파장을 다각도로 살피고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미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IDC 규제와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데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이용자의 개인정보 보호나 외국 기업과의 역차별 문제 등도 있다”고 했다.
정부가 민간에 역할을 떠넘기고 책임까지 맡기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정보보호법학회 회장을 지낸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플랫폼은 대체불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 안보나 재난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번 사태는 정부가 코로나19 관련 QR코드나 잔여 백신, 전자신분증 등 너무 많은 서비스를 사기업에 의존한 것이 근원적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