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 군사도발이 접경지역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 북한은 2일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울릉도 서북쪽 167㎞, 속초 동쪽 57㎞ 지점에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떨어뜨리고, 서해상에도 다수의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영해 근접지역에 탄도미사일이 낙탄한 셈이다. 북한은 이날 20여발의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강원도 고성군 일대에서는 동해 NLL 북방 해상완충구역 안쪽으로 100여발의 포병사격을 했다. 도발 수위를 높이면서 한·미동맹 무력화를 꾀하려는 의도라는 평가다.
최근 북한은 서해 백령도 서북방에서 상선을 NLL 너머로 보냈으며, 동해에서는 포사격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다. 이번엔 울릉도 인근과 NLL 이남 공해상을 겨냥해 탄도미사일을 쏘는 고강도 도발과 더불어 동·서해에서 포사격과 탄도미사일·지대공미사일 발사를 감행해 정밀타격능력을 과시했다. 김형석 대진대 교수는 “과거 중국이 대만 해역에 무력시위를 한 적이 있는데, 그런 방식으로 극도의 긴장감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위기 국면에서 어느 정도 맞춰서 쏠 수 있는지를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탄착 지점이 북한의 의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이 매우 공격적이라는 점은 미사일 발사 시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이 미사일 20여발을 쏜 이날은 한·미가 전투기 240여대를 투입해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 연합 공중훈련을 진행 중이었다. 전날에는 미 핵추진 잠수함 키웨스트함이 부산에 입항했다. 하지만 북한은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대신 분단 이후 처음으로 NLL 이남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이 핵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미 연합훈련에 공세적으로 대응, 한·미동맹 무력화를 노리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9월25일부터 보여준 전술핵 미사일의 실전능력을 기반으로 자신들이 도발해도 한·미가 대응할 수 없다는 확신에 따른 행동”이라고 말했다.
접경지역 내 무력충돌 방지 역할을 했던 9·19 남북군사합의가 남북의 미사일 발사로 무력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은 지난달부터 동·서해 해상완충구역에 포사격을 하면서 9·19 합의를 위반해왔고, 이번에 NLL 이남으로 미사일을 쏘고 동해 NLL 북방 해상완충구역에 포사격을 하면서 또다시 합의를 위반했다. 다만 우리 군이 대응 차원에서 NLL 이북에 공대지미사일을 쏜 것도 합의 위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자위권 차원의 대응에 합의 위반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북한이 추가 군사행동을 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제7차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전략도발부터 접경지역에서의 국지도발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NLL 무력화 의지를 다시 한번 드러낸 것으로 남북 간 동·서해상 무력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반면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군의 전투준비태세가 격상된 상황이라 북한이 섣불리 도발하면 북한이 피해를 볼 수 있다. 북한도 이를 잘 안다”며 “제일 경계할 상황은 (큰 도발 국면보다는) 북한이 정말로 조용할 때”라고 말했다.
◆주민들 “사이렌, 민방위 훈련인 줄” 방송 없어 혼란
“사이렌 소리가 민방위 훈련인 줄 착각했는데 알고 보니 북한 미사일 도발이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2일 오전 북한 탄도미사일이 동해상으로 발사된 뒤 경북 울릉도 전역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2∼3분간 이어지면서 당국과 주민, 관광객들은 놀라움과 함께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주민들에게는 긴급대피령이 내려졌고 미사일 발사 소식이 전해진 뒤 부모의 안부를 묻기 위한 자녀들의 전화도 쇄도했다. 남진복(울릉) 경북도의원은 “울릉도에는 공습 등 비상 사태에 대비하는 지하대피소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울릉주민들은 정부 차원에서 지하대피소 건립에 적극 나서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울릉군은 공습경보 발령 25분이 지나서야 주민들에게 대피 안내 문자메시지를 발송, 주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울릉군 전역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린 건 이날 오전 8시55분이다. 주민들은 사이렌 소리만 울릴 뿐 공습경보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없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울릉군 관계자는 “상황 파악을 하느라 주민들에게 대피 문자를 보내는 게 늦어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군 당국은 이날 오후 2시부로 울릉도 공습경보를 해제하고 경계경보로 대체했다.
이날 국토교통부는 북한의 동해상 미사일 발사 때문에 일부 항공로를 폐쇄했다고 밝혔다. 해당 항공로는 북한과 일본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이날 오전 10시58분부터 3일 오전 11시5분까지 폐쇄된다. 이번 조치로 폐쇄되는 항공로 중 북한을 경유하는 항공로(B467)를 사용하는 항공사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일본을 경유하는 항공로(L512)는 일평균 33대가 사용하고 있어 국토부는 항공사에 임시로 우회항로(G597 등)를 사용하도록 조치했다.
강원지역 지방자치단체는 북한 도발 직후 안보 관광지 운영을 중단했다. 고성군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에 통일전망대 운영을 즉시 중단하고 관광객 50여명과 직원들을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에서 내보냈다. 인제군도 비무장지대(DMZ) 테마노선 탐방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