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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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착용 의무 폐지 넘어 정권붕괴 목표” [세계는 지금]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硏 HK연구교수

‘히잡 강제’는 이슬람 정체성 과시 수단
“이번 시위는 자유에 대한 거대한 열망”

이란 전문가인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는 4일 현재 이란 시위는 히잡착용 의무 폐지를 뛰어넘어 정권 붕괴를 목표로 타오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란 민중이 이슬람 원리에 입각한 강권 정권이 유지되는 한 히잡착용 의무를 폐지할 리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 교수는 “(이란)이슬람공화국의 상징이자 정체성 자체인 히잡을 양보하는 건 곧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며 “국가 입장에서는 히잡이 이념의 근본이기 때문에 타협할 수 없다”고 했다. 1979년 이슬람혁명 후 왕정이 붕괴한 뒤 국명에도 포함된 이슬람공화국은 이란의 국체(國體)를 의미한다. 이슬람율법에 의해 나라를 통치한다는 의미로, 이란 특유의 신정(神政) 통치 기반이 되고 있다. 히잡 강제는 바로 현 정권이 이슬람공화국의 정체성을 과시하려고 선택한 수단이다.

 

구 교수는 “국내적으로는 국가가 개인의 몸까지 통제하고, 대외적으로는 무슬림 여성의 상징인 히잡을 통해 이곳(이란)이 이슬람 국가임을 전 세계에 드러내고자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 교수는 히잡 의문사 사건이 촉발한 이번 시위에 대해 “히잡으로 시작했지만 히잡에 결코 국한될 수 없는 ‘자유에 대한 거대한 열망’”이라고 정의했다. 핵심은 히잡을 쓰든 벗든 ‘여성에게 자율적인 선택권이 있느냐, 없느냐’이며, 국가에 완전히 종속된 국민의 자유를 되찾는 것이라는 의미다.

구 교수는 이번 시위를 통해 정의를 지향하는 이란인의 저력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만이 답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특히 부정선거 항의 녹색 운동(2009년)과 경제정책을 규탄한 두 번의 시위(2017, 2019년) 등 과거 실패가 현재 세대, 성별, 지역, 계급을 초월하는 항쟁을 일으키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2009년의 시위가 정권 자체는 인정하면서 내부 개선을 요구하는 측면이 강했다면 이번에는 현 정권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위기의식 고조로 인해 체제 변혁이라는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구 교수는 “우리가 이렇게 외면해서 역대 최저 투표율로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가 대통령이 됐고, 누가 하든 상관없는 줄 알았는데 정말 최악의 지도자가 뽑히니 너무 힘들다는 자각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내 손으로 한번 바꿔보자는 의지가 아주 강력하다”며 “이슬람혁명 때 민중의 힘으로 새 정권을 세워 본 이들인 만큼 역사적 경험에서 희망을 갖기도 한다”고 했다.


정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