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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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장 제때 보고 못 받은 이유로 ‘행적’ 의문 급부상 [이태원 핼러윈 참사]

경찰 수뇌부로 향하는 수사·감찰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 자리 비운 탓
서울청장 오후 11시36분 첫 보고 받아

윤청장, 그후 38분 지나서야 상황 파악
지휘부간 보고 지체 납득하기 어려워
경찰청도 윤보다 대통령실 먼저 보고
당일 윤청장 ‘공백’ 주장에 설득력 실려
윤, 첫 출근도 사고 발생 4시간여 지나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한 경찰의 수사와 감찰은 지휘부를 향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지휘부의 공백 사태가 참사 당일 경찰의 야간 상황 관리 시스템이 제때 작동하지 않은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치안의 총 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의 첫 보고가 대통령실보다 늦게 이뤄진 것을 두고는 행적을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참사가 벌어진 지난달 29일 류미진 당시 서울경찰청 인사교육과장(총경)은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으로 당직 근무를 서면서 상당 시간 자리를 비운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은 서울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건 접수와 처리를 총괄한다. 야간 상황에는 사실상 ‘서울경찰청장 직무대리’의 역할로 상당한 권한을 가진 만큼 일선 경찰서장에 준하는 총경 계급이 돌아가며 맡고 있다. 상황관리관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서울경찰청 지휘부와 경찰청 상황담당관에게 보고할 의무가 있다.

행안장관·경찰청장, 안전관리 대책 회의 참석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이 3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실에서 열린 ‘다중 밀집 인파사고 예방안전관리 대책 관계 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번 관계장관 회의에는 이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가운데),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오석환 교육부 기획조정실장, 남화영 소방청 차장이 회의에 참석했다. 행정안전부 제공

당시 이태원 참사는 소방이 오후 11시50분 ‘대응 3단계’와 ‘전국 구급차량 국가동원령’을 발령했을 만큼 매우 긴급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류 총경은 112 상황실이 아닌 본인의 사무실에 머물다가 오후 11시39분에서야 112 상황실에 복귀한 것으로 파악됐다. 당직 지침상 주간근무 전반(오전 9시∼오후 1시)과 야간근무 전반(오후 6시∼이튿날 오전 1시)에는 112 상황실에서 자리를 지켜야 하는데 이를 어긴 것이다.

류 총경의 부재는 참사 당일 서울 지역의 야간 상황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태원 일대에서 오후 6시34분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는 등 인파 관리를 요청한 신고가 11차례나 접수됐지만, 경찰이 적절한 대응에 나서지 않은 것 또한 류 총경의 부재와 연관이 깊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김광호 서울경찰청이 늑장 보고를 받은 것 또한 류 총경의 부재가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참사 당일 상황관리관이 서울경찰청장에게 보고를 하지 않으면서, 김 청장은 이임재 당시 서울 용산경찰서장에게 오후 11시36분에서야 첫 보고를 받았다. 이 전 서장의 보고가 늦었다는 점 역시 보고체계의 문제로 지적되지만, 112 신고를 관리하는 상황관리실마저 공백 상태였던 것이 사태를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입구 앞에 '민주국가에서 경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내용의 문구가 적혀있다. 연합뉴스

경찰의 보고체계는 일선 경찰서→시·도 경찰청→경찰청 순으로 이어진다. 일선 경찰서와 시·도 경찰청의 상황 관리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경찰청에 ‘치안 상황 보고’가 처음 접수된 시간은 자정을 넘긴 0시2분이었다. 윤 청장은 이보다 12분이 지난 0시14분에 경찰청 상황1담당관으로부터 첫 구두 보고를 받았다. 김 청장이 처음 보고를 받은 지 38분이 지난 뒤다.

김 청장이 늑장 보고를 받은 것은 일선 경찰서와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의 보고 체계가 지켜지지 않은 때문이지만, 김 청장에서 윤 청장으로 이어지는 상부 보고에 또다시 38분이나 소요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에서는 오후 11시38분쯤부터 ‘이태원서 다수 호흡곤란’ ‘이태원 대규모 압사 사고’ 등의 속보가 쏟아진 상황이라서 확인 작업을 거쳤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더욱이 사태를 이미 인지하고 있던 대통령실에 경찰이 첫 보고를 한 시간은 0시5분이다. 0시2분 서울경찰청에서 보고를 받은 경찰청이 수장인 윤 청장보다 대통령실에 먼저 보고를 했다는 것은 윤 청장에게 공백 사유가 있었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10월 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을 찾아 관계자로부터 현장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경찰청 제공

더욱이 윤 청장은 사고가 발생하고 4시간15분이 지난 30일 오전 2시30분에야 경찰청으로 출근해 지휘부 회의를 주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남화영 소방청장 직무대리가 오후 10시15분 첫 신고를 접수하고 1시간 만인 오후 11시15분에 상황판단회의를 주재한 것과 대조적이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지휘부 공백 사태의 책임을 물어 대기발령된 류 총경과 이 총경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아울러 전날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등지에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압수물을 분석하고 있다.

특별감찰팀은 서울경찰청의 늑장 대응과 관련해 김 청장에 대한 감찰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청장은 사고 당일 오후 11시36분에 첫 보고를 받았는데, 참사와 관련한 대응이 적절했는지 살펴볼 것으로 알려졌다. 김 청장이 보고를 늦게 받으면서 이후 경찰청 보고까지 줄줄이 늦어졌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아울러 김 청장이 첫 보고를 받고 윤 청장이 보고를 받는 데 38분이나 소요된 것과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추후 감찰을 통해 확인해야 할 부분”이라며 감찰 가능성을 시사했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