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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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 성미산에 무슨 일이… 사람에게 산은 어디까지 양보해야 할까요?

푸르른 녹음의 시간을 지나 울긋불긋 물든 나뭇잎이 바람에 파르르 떨며 깊어가는 가을을 알리는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자리한 작은 산 성산(성미산)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지금 그대로의 성미산 지켜주세요’, ‘성미산의 목소리를 들어라!!’, ‘선소통 후진행’

 

유모차를 밀고 나온 젊은 엄마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인까지 폐종이상자로 만든 팻말을 들고 성미산 입구 앞 삼단공원으로 모여들었다.  

 

잠시 뒤 어린 아이들까지 ‘성미산은 사람들 것이 아니라 동물들 것이예요’, ‘우리가 놀고 동물들도 놀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등등 손수 적은 구호를 외치며 공원으로 들어왔다.   

 

무엇이 주민들을 화나게 했을까.

 

“이게 험준한 산도 아니고 그냥 동네 조그마한 마을 뒷산이잖아요. 멀쩡한 데다 (나무 베고) 데크 깔 돈이 있으면 더 좋은데 쓰는 게 낫죠.”

 

성산은 해발 66m의 야트막한 산이다. 성산동에 사는 70대 주민 A(가명)씨는 굳이 이런 곳까지 시설물 공사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머리를 저었다. 유모차를 밀고 온 B씨는 “흙을 밟고 울퉁불퉁한 길을 걸으며 산을 느끼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정말 보행약자를 고려한 정책이라면 차라리 울룩불룩한 보도나 인도 없는 골목길부터 신경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포구는 성산 삼단공원 자리에 복합커뮤니티센터를 짓고 산 아래쪽에 있는 체육관부터 삼단공원까지 지그재그로 데크를 놓는 무장애숲길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 2월1일 착공했지만 주민 반대로 십 여일 만에 공사가 중단됐다. 구청 관계자는 “주민분들이 산을 훼손한다고 우려하는 데 이건 오해”라며 “여기 있는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아까시나무)는 이미 죽은데다 천근성이어서 넘어지기 쉽다. 주민 안전을 위해 이런 나무는 베고, 불필요한 샛길은 나무를 심어 막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데크는 휠체어 탄 장애인 등 보행약자를 위한 무장애길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아까시나무는 한 때 일제의 잔재로 여겨져 미움을 샀지만 탄소 흡수능력이 뛰어나고 꿀벌에게 꿀을 주는 밀원수여서 재평가받는 나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지난해 아까시나무를 기후변화 대응 수종으로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진 오른편 체육관(빨간 원)부터 산 위쪽으로 지그재그로 데크가 놓일 예정이다. 

성미산은 10만㎡밖에 안 되는 작은 산이지만 곳곳을 ‘주민 편의’를 위해 내줘야 했다. 2014년 봄 성미산 체육관이 산자락에 문을 열었고 군데군데 운동기구가, 구석구석 보행로가 생겼다. 지난해 3월에도 굴착기가 나무를 벤 자리에 운동기구와 화장실, 2m 폭의 데크 계단이 놓였다.    

 

2010년(위)과 2020년 서울 마포구 성산(성미산)의 위성사진. 카카오맵

산이 필요한 건 사람만이 아니다. 천연기념물인 새매와 큰소쩍새, 솔부엉이를 포함해 박새, 쇠딱따구리, 홍여새, 멧새 등 다양한 새들의 보금자리다.

 

주민들은 의견수렴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구청이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고 비판하고, 구청은 주민설명회도 하고 조례를 만들어 민·관·전문가가 참여하는 상생위원회의 법적 근거까지 마련했다고 반박한다. 주민들은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열려 있는 소통을, 구청은 일정한 형식을 갖춘 자리를 원하는 탓이다. 상생위는 구청 관계자 2명, 조경·산림분야 전문가 5명,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 통장협의회장 등 이해관계인 6명 그리고 지역주민대표 1명 등 총 14명으로 구성돼 있다.

 

‘소통’에 관한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이날 현장을 찾은 박강수 구청장은 조만간 구청 회의실에서 주민과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도시형 마을공동체로 유명한 이 지역 성미산마을의 주민 김수련씨는 “이미 많은 개발로 몸살을 앓는 생태숲에서 등산로 정비를 이유로 수많은 나무를 벌목하게 되면 성미산은 여느 근린공원과 다를 바 없는 인간 편의 위주의 공원이 될 것”이라며 “마을숲을 지키고 싶은 주민과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