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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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작가 정훈, 백혈병 투병 중 별세…향년 50세

영화 패러디 만화로 오랫동안 큰 사랑을 받아온 정훈 작가가 5일 오전 10시 44분쯤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백혈병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50세.

 

특유의 위트와 해학을 절묘한 세태 풍자와 함께 선보였던 명랑만화가로서 고인은 창원고를 졸업한 뒤 1995년 만화잡지 ‘영챔프’가 주관한 신인만화공모전으로 데뷔했다. TV에 중독된 실업자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 ‘리모코니스트’가 입상작이었다.

 

이후 인터뷰 때문에 만난 영화전문지 ‘씨네21’ 기자 제안으로 연재를 시작한 영화 패러디 만화가 그의 대표작 ‘정훈이 만화(연재 초기 ‘만화 VS 영화’). 이 작품에서 고인은 언어유희를 통한 웃음과 ‘남기남’, ‘씨네박’같은 인기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매주 개봉한 영화에 당대 사회 문제를 절묘하게 녹여내며 풍자하거나 서민의 고단한 삶을 연민 가득한 웃음과 애정으로 작품에 녹여냈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시사만화를 할 때 나름의 어떤 기준을 갖고 주의하는 점은 그 사람에 대해서는 비난하지말자. 이런건 있어요. 조롱하지는 말자. 조롱의 대상이 될지언정 좀 유쾌하게, 재밌게 하자. 그래서 오히려 조롱해야되는 실존 인물들, 정치인들을 풍자할 때도 오히려 좀 애정을 갖고 그려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 같은 건데 오히려 그게 사람들한테는 더 오래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상당히 그 사람들을 비판하는 입장인데도 풍자하는 인물들이 한편으로는 정이 가요”라고 설명했다. 

지난 3월까지 전시됐던 한국영상자료원의 정훈작가 특별전 포스터.

고인 작품 가장 큰 특징은 단연 엉뚱함과 황당함이다.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에 황당무계한 엔딩, 허를 찌르는 입담으로 독자를 즐겁게 했다. 이러한 작업에 대해서도 고인은 “나는 영화를 비트는 게 아니라, 아주 촌스러운 살아가는 이야기 또는 고전과 역사를, 영화를 빌려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생활의 관찰과 경험이 먼저고 그걸 담는 틀로 영화를 끌어온다”고 생전에 설명했다. 그의 ‘정훈이 만화’는 1996년부터 2020년까지 연재됐는데 10년을 넘기던 시점에서 연재를 잠시 중단하자 독자 항의가 빗발쳐 다시 그렸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명랑만화 작가로서 고인은 영화잡지 이외에도 다양한 매체에 만화를 그려왔다. 특히 고인은 의료매체 ‘청년의사’에 의료계의 주요 이슈부터 마음이 따뜻해지는 환자와의 에피소드, 의과대학 족보 변천사 등 의사들의 세계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만화 ‘쇼피알’을 무려 2002년부터 최근까지 연재했다. 이를 단행본으로 묶은 ‘청년의사 남기남의 슬기로운 병원생활 1‧2권’과 ‘읽고 나면 입이 근질근질해지는 한국사’, ‘야매 공화국 10년사’, ‘트러블 삼국지’ 등 역사만화를 다수 출간했고, ‘표현의 기술’, ‘한국사를 바꾼 결정적 만남’,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등 20권 이상의 단행본을 냈다. 빈소는 계명대 동산병원 백합원 5호실, 발인 7일 낮 12시30분.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