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금시장 유동성 위기가 증권사와 보험사, 캐피털사 등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큰 제2금융권으로 번지고 있다.
내년 상반기 기준금리가 4%를 넘고, 가계대출 금리 상단은 연 9%에 근접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물가의 추세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가 올해 들어 10월까지 2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7일자 세계일보 경제면은 우울한 지표와 뉴스로 도배됐다.
◆국내 자금시장 유동성 부족 도미노
강원도 레고랜드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로 증권사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차환 위험이 수면 위로 드러난 데 이어 생명보험사들도 조기상환(콜옵션) 미행사 등 문제가 생겼다. 또한 신용카드와 캐피털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발행도 차질이 생기면서 할부금융 서비스가 축소되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6일 금융당국과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흥국생명이 달러화 신종자본증권의 조기 상환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DB생명은 오는 13일 예정된 300억원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 행사일을 2023년 5월로 변경했다.
이들 생명보험사들은 지급여력비율(RBC)이 낮아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미루거나 포기한 것으로 풀이된다. 콜옵션 시기를 늦추면 추가 금리가 붙어 금리만 6∼7%에 달하고, 달러채를 발행하면 환율을 반영해 금리가 10%를 넘을 수 있다. 하지만 생명보험사들은 당장 지급여건이 되지 않아 고금리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흥국생명의 달러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 이후 외화채권 시장에서 외화표시채권(한국물) 가격이 급락하고, 거래량도 급감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울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국내외 외화채권시장에서 흥국생명의 액면가 100달러 신종자본증권 거래 가격은 4일 72.2달러로, 이달 1일 흥국생명 콜옵션미행사 공시 직전인 10월 말(99.7달러)보다 30% 가까이 급락했다. 낮아진 가격에도 거래는 저조하다.
AAA급 초우량 채권인 한국전력(한전) 회사채도 3년 만에 처음으로 유찰되는 등 발행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한전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일영 의원실에 제출한 ‘회사채 유찰분석’ 자료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달 17∼26일 네 차례에 걸쳐 1조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려고 했지만, 응찰액이 9200억원에 그쳤고 5900억원어치 채권만 발행됐다. 한전채는 정부가 지급보증하는 AAA급 초우량 채권인 데다 금리도 높아 지난 3년간 유찰된 적이 없었다. 또한 한전은 처음으로 회사채 유찰 이유에 대해 “금융시장이 급격히 경색되면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고 밝혔다.
초우량 회사채가 유찰되는 사례는 한전만이 아니다.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수력원자력도 지난달 24일 각각 2000억원과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려 했으나 전액 유찰됐다.
자금시장 유동성 위기는 카드·캐피털사들도 피하지 못했다.
이날 여신금융업계에 따르면 이달 국내 주요 카드·캐피털사의 신차 최저 할부금리는 할부 60개월 기준 신한카드 6.54%, 현대카드 6.6%, 삼성카드 7.0%, 롯데카드 7.9% 등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너 달 전(3%대) 금리와 비교하면 거의 2배 수준이다. 자동차 할부금리가 급등한 것은 기본적으로 국내외 금리 상승으로 카드·캐피털사의 시장 조달금리가 3년 만기 카드채(신용등급 AA·민평 3사 평균) 기준 지난 연말 2.4%에서 지난 4일 6.1%로 급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드·캐피털사들은 이런 금리 수준으로도 자금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 가계대출 금리 연9% 근접 관측
내년 상반기 기준금리가 4%를 넘고, 가계대출 금리 상단은 연 9%에 근접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최종금리 목표를 기존 4%대 중후반보다 더 올리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변동금리와 고정금리는 지난 4일 기준 연 5.160∼7.646%, 5.350∼7.374% 수준이다. 신용대출 금리(1등급·1년)는 연 6.100∼7.550%, 전세자금대출(주택금융공사보증·2년 만기)도 5.180∼7.395%로 이미 7%대 중반에 이르렀다.
이처럼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 상단이 약 13년 만에 모두 7%를 넘어선 상황에서 향후 금리 상승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가 천천히 더 오랜 기간, 더 높은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은행 역시 기준금리 인상 압박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뒤 “이제 금리 인상 속도보다는 최종금리 수준(how high)과 지속 기간(how long)이 중요하며, 이전 예상보다 최종금리 수준은 높아졌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 9월 점도표에서 4.5∼4.75% 수준이었던 최종금리 전망치가 다음달 5% 안팎으로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후 시장에서는 현재 3.00%인 한국 기준금리가 내년 상반기까지 최소 3.75%, 최대 4.50%에 이를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그만큼 은행의 예금 금리 등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고, 결국 은행이 대출에 적용하는 금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만약 기준금리가 현재보다 1%포인트 이상 올라 내년 상반기 4.00%를 넘어설 경우, 대출금리 상단도 8%를 뚫고 9%에 근접할 전망이다.
◆근원물가 21년 만에 최대폭 상승
근원물가가 올들어 10월까지 누적 기준으로 21년만에 최대폭으로 올랐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인 지난달 106.09(2020년=100)로 작년 누계 대비 3.5% 올랐다. 이는 10월 누계 기준으로 2001년(3.6%) 이후 21년 만의 최대 상승폭이다.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는 식료품과 에너지 관련 품목을 제외한 309개 품목으로 작성된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기조적인 물가상승률의 추이를 보여준다.
월간 기준으로 봐도 지난달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2% 오르면서 2008년 12월(4.5%) 이후 약 14년 만에 가장 크게 올랐다. 지난 8월 4.0%로 올라선 뒤 9월 4.1%를 기록한 뒤 오름세가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계절적인 충격이나 일시적 충격을 제외하고 곡물 외에 농산물과 석유류 품목을 제외한 401개 품목으로 작성하는 국내 기준 근원물가 지표인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지수 역시 지난달 전년 누계기준으로 4.0% 뛰어오르며 2008년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근원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국제유가 급등이나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 등 외부 공급 요인을 제외하고도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많다는 의미다. 특히 근원물가 중 외식 등 개인서비스 가격은 한번 오르면 잘 떨어지지 않는 하방경직성이 크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간 물가를 끌어올린 국제 원자재 가격이 안정되더라도 당분간 고물가가 지속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 전체 물가 상승률 가운데 개인 서비스의 기여도는 7월 1.85%포인트에서 10월 1.97%포인트로 확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