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가상화폐 거래소 중 하나로 꼽혔던 FTX가 파산보호신청을 한 데 더해 일부 자산에 대해 해킹 가능성까지 불거져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FTX의 파산 신청과 자산 증발 사태에 전문가들은 ‘코인판 리먼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의 직접적 피해는 아직 정확히 추산되지는 않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이번 사태로 가상화폐 시장 자체에 미칠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일보는 14일 지면에서 이같이 가상화폐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겨준 ‘FTX 파산’ 소식을 다루었다. 아울러 최근 주요 시중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대출자 중 70% 이상이 변동금리가 아닌 고정금리를 선택하는 현상을 다루었다. 금리 인상기에도 변동금리를 고집하는 대출자가 대부분이던 기류에 변화가 찾아온 셈이다.
◆FTX 파산신청…“리먼때와 같은 위기상황”
13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FTX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에 파산법 11조(챕터11)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미국 파산법의 챕터11은 파산법원 감독하에 구조조정 절차를 진행해 회생을 모색하는 제도로 한국의 법정관리와 유사하다.
파산 신청서에 따르면 FTX 부채는 100억∼500억달러(약 13조2000억∼66조2000억원)에 이르고, 자산도 부채와 같은 규모다. 채권자는 10만명을 넘는다. 이번 파산 신청은 가상화폐 업계 역사상 최대 규모다.
여기에 FTX의 해킹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파장이 커지는 형국이다.
FTX 신임 최고경영자(CEO) 존 J 레이 3세는 12일 성명에서 “특정 자산에 대한 무단 접근이 발생해 사실관계 검토에 착수했다”며 “법 집행 기관 및 규제 기관과 협력하고 있다”고 했다. 블록체인 분석회사 엘립틱도 이날 오전 FTX의 가상화폐 지갑들에서 4억7500만달러(6265억원) 규모의 가상자산이 의심스러운 정황에서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다른 블록체인 분석업체 난센은 FTX 거래 플랫폼에서 하루 새 6억6200만달러(8732억원)의 디지털 토큰이 유출됐다고 짚었다.
FTX에 돈이 물린 투자자는 일본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 캐나다 온타리오 교사 연금,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등 광범위하다. 소프트뱅크는 앞서 FTX 투자 사실을 인정했지만 투자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블룸버그통신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소프트뱅크가 FTX에 약 1억달러(1319억원)의 자금을 투자했다”며 최소 1억달러의 손실을 볼 것으로 추정했다.
국내 투자자들의 직접적 피해는 아직 정확히 추산되지는 않고 있다. 일단 모바일인덱스 등에 따르면 국내 FTX 이용자는 최소 1만여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법인과 기관투자도 가능했던 만큼 개별기업 투자 가능성도 남아 있다. FTX에 가상화폐를 상장한 업체들의 피해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게임업체 컴투스그룹은 자사의 가상화폐 ‘C2X‘를 FTX를 통해 상장했다.
금융당국은 국내에서 FTX 측 가상화폐에 투자한 금액을 약 23억원가량으로 추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FTX가 발행한 ‘FTT토큰’을 투자유의 종목으로 지정했던 코인원·코빗·고파스 등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12일부터는 FTT로의 입금을 중단시켰고, 거래 정지를 의결했다. 업비트와 빗썸은 FTT를 상장하지 않은 상태다.
직접적인 피해가 크진 않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이번 사태로 가상화폐 시장 자체에 미칠 파장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가상화폐 시장은 국내와 해외 간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한 데다 FTX 파산에 따른 시장 신뢰 붕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작이었던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에 빗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글로벌 최대 가상화폐거래소인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CEO는 12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가상자산 시장이 과거 2008년 베어스턴스나 리먼브러더스를 무너뜨린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다를 바 없는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며 “FTX가 무너지면서 ‘폭포효과’처럼 다른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담대 ‘변동금리’에서 ‘고정금리’로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의 지난달 신규 주택담보대출 중 90%가량이 고정금리를 조건으로 이뤄졌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작년 말에는 고정금리 비중이 20% 정도에 불과했는데, 최근 수개월 사이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NH농협은행 관계자도 “최근 실행되는 주택담보대출의 대부분은 고정금리”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신한은행의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9월 67%에 이르렀고, 지난달에는 70%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분위기가 확 바뀐 것은 금융소비자의 ‘긴축 체감’뿐 아니라 변동금리와의 격차 축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 장기물 채권과 연동된 고정금리는 미래 불확실성 탓에 변동금리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 지난해 4분기 이후 본격적 금리 상승기에 접어들었지만, 최근까지 고정금리가 외면받은 것도 꾸준히 변동금리를 0.5%포인트 안팎으로 웃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1일 기준 KB·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코픽스 기준)는 연 5.180∼7.711%, 고정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는 5.300∼7.273% 수준이다. 하단의 차이가 0.12%포인트에 불과하고, 상단은 오히려 변동금리가 0.438%포인트나 높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 상승기 대출자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금융 당국도 고정금리 대출을 독려하고 있기 때문에, 은행이 우대금리 등을 통해 고정금리를 낮춘 것도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대출자의 금리 선택 행태가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존 대출을 포함한 전체 가계대출 기준으로는 여전히 변동금리 조건 대출이 지나치게 많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 중 고정금리 비중은 21.5%에 그쳤다. 2014년 4월(23.8%) 이후 8년5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예금 시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이자 수익을 얻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금리가 더 높은 예·적금 상품을 찾아 자금을 수시로 옮기는 ‘금리 노마드족’의 영향으로 저축은행 업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앞서 지난달 한은이 두 번째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이후 저축은행이 최고 6%대 중반에 이르는 예·적금 특판을 진행하자 금융소비자의 ‘오픈런’이 빚어졌고, 저축은행중앙회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금을 유치하더라도 이내 다른 저축은행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면 순식간에 자금이 이탈하는 사례가 반복되며 저축은행이 수신고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규모가 작은 저축은행일수록 수신 자금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을 경우 경영 상태가 건전한데도 갑작스레 자금 변통이 안 돼 발생하는 ‘흑자도산’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경영하고 있는데도 하루 만에 큰 금액이 오락가락하는 현상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밝혔다.
조달 경쟁 심화로 인해 저축은행업계에서 조만간 연 7%대 정기예금 상품의 등장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저축은행은 은행과 달리 정기예금 등 수신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은행보다 수신 금리를 높게 유지해야 안정적으로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