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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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교부금 3조원 떼어내 '대학 살리기'…초·중등계 반발

고등교육 특별회계 신설

학령 인구 줄어 1인당 교부금
2000년 180만 → 2023년 1450만원
최근 5년 초·중등 투자 28조↑
고등교육비는 2조7000억 늘어

초·중등계 “현재도 예산 부족”
정부 “결국 초·중등이 혜택 봐”
野 “입법절차 안지켜”… 통과 변수

정부가 11조원 규모의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를 신설해 ‘대학 살리기’에 나선다.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재정난에 부딪힌 대학의 숨통을 틔워주고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취지인데, 초·중등 교육에만 쓰이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일부를 대학에도 떼어준다는 내용이 담겨 초·중등계가 반발하고 있다.

최상대 기획재정부 2차관(오른쪽)과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고등·평생교육 재정 확충 방향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교육부와 기획재정부는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고등교육 재정 확충 방향을 발표했다. 기존 사업 중 8조원 규모의 대학 경쟁력 강화 사업을 이관하고, 교육세에서 3조원을 전입해 총 11조2000억원의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를 신설한다는 것이 골자다.

 

8조원은 기존 사업에서 이관되는 만큼 실제 늘어나는 고등교육 예산은 3조2000억원이다. 올해 8월 발표된 내년 고등교육 예산은 12조1000억원이었지만, 특별회계가 신설되면 15조3000억원이 된다. 정부는 늘어난 재원을 지방대학 육성 등에 쓴다는 방침이다.

 

다만 증가하는 재원 중 3조원 규모의 교육세는 원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편성돼 각 시·도 교육청에서 유·초·중·고 교육에 쓰이던 것이어서 법 통과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등 132개 단체로 구성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수호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정부 발표 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교육재정을 줄이면 유·초·중·고 교육 질이 저하된다”며 반발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증가로 유·초·중등 예산은 급격히 증가하는 반면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는 매우 부족하다. 효율적인 배분을 통해 교육 분야 간 투자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며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대학 재정지원 2배 늘리고, 소멸위기 지방대에 전폭 투자

15일 정부가 발표한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 신설 방안에는 대학이 고사한다는 위기감과 함께 현재 교육재정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담겼다. 학령인구는 감소하는데 유·초·중·고에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은 늘어나는 만큼 이를 대학에도 쓰는 것이 효율적인 예산 운용이란 것이다. 초·중등 교육계는 “현재 예산도 부족하다”며 반발하는 가운데 정부는 “초·중등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교부금 느는데 대학 투자는 부족

정부는 매년 걷히는 내국세 총액의 20.79%를 떼 교육예산에 배정한다. 교부금은 여기에 교육세의 일부(누리과정 지원분 제외)를 더한 것으로, 초·중등 교육을 담당하는 시·도 교육청에 배정된다. 경제 성장으로 세수(稅收)가 늘면서 내년 교부금(77조3000억원)은 2000년(14조9000억원)보다 5.2배나 늘었다. 같은 기간 학령인구는 감소해 1인당 교부금은 180만원에서 1450만원으로 8배 증가했고, 예산 중 다 쓰지 못하거나 다음 해로 넘어간 이월·불용액은 매년 수조원에 달한다. 반면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2019년 기준 1인당 초·중등 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4배지만, 고등교육비는 0.6배에 그친다. 최근 5년간 초·중등 교육 투자는 28조원 이상 확대된 반면 고등교육은 2조7000억원만 증가했다.

정부는 재정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교부금에 들어가는 교육세 중 누리과정(만 3∼5세 교육과정)에 지원하는 금액을 뺀 3조원을 대학에 쓴다는 방침이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유·초·중등과 고등교육 간 재정 칸막이가 50년째 유지돼 불균형이 심각하고, 대학은 혁신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특별회계가 신설되면 우선 현재 1조원 수준인 대학 일반 재정지원이 1조9000억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학교당 지원액은 국립대는 88억원에서 176억원으로, 수도권 일반대는 49억원에서 100억원으로 2배 증가한다. 특히 지방 일반대 지원액 증가폭은 2.7배(49억원→13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지방대의 특성화 분야 육성에 연간 5000억원을 지원하는 등 지방대가 인재 양성·산업 중심지 역할을 하도록 전폭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국립대의 노후 시설 교체에도 9000억원을 투자한다.

◆초·중등계 반발… 법 통과돼야

초·중등 교육계는 “동생 돈을 빼앗아 형에게 주는 것”이라며 교부금 개편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교원, 학부모 단체 등으로 구성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수호 공동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학생 수가 줄었으니 예산도 줄여야 한다고 하지만 최근 4년간 학교는 353개, 학급 수는 4563개 늘었다. 과밀학급이 전체 학급의 28%에 달하고 노후건물도 많아 필요한 예산은 줄지 않는다”며 “대학은 별도의 고등교육교부금을 만들어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별도의 교부금법을 제정하라”는 등의 요구를 하며 국회 앞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이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수호 공동대책위원회의 '지방교육재정확보를 위한 범국민서명운동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대표 발언을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정부는 교부금을 개편해도 초·중등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장 차관은 “교육청에서 안 쓰고 적립하는 교부금이 올해 19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교육청은 ‘투자할 부분이 많다’고 하지만 3조원을 뺀다고 못 하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최상대 기획재정부 제2차관도 “초·중·고교생이 자라 대학생이 되는 만큼 대학 재정 여건이 개선되면 초·중등생이 혜택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등록금 문제 등은 건드리지 못하고 초·중등 예산만 끌어오는 미봉책을 내놨다고 비판한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는 “정부안은 교부금에서 3조원을 떼면서 일반회계 증가분은 2000억원에 그친다. 법인세에 고등교육세를 부가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왼쪽부터) 강민정 서동용 의원이 15일 국회 본관 2층에서 교육부의 예산안을 비판하는 피케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특별회계가 신설되려면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법 제정안’ 등 3개 법이 통과돼야 하지만, 국회 계류 중이다. 이날 야당은 정상적인 입법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더불어민주당·무소속 위원들은 “관련 법률안이 상정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법안 통과를 전제로 특별회계 내역을 발표하고 심의해 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며 “야당을 무시하며 밀어붙인다면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