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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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하는 건가” 권리행사 부담… 불안 느껴도 한 달 내 ‘종료’ [심층기획 - 신변보호 연장 주저하는 피해자들]

통상 한달 단위로 조치 연장 여부 결정
“매번 보고서 작성 경찰 번거롭게 하나”
스마트워치 잘못 누를까 걱정도 많아
경찰 “피해자 원할 땐 100% 연장” 강조

17개 항목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
물리적 폭력 대비 온라인 폭력 저평가
‘신당역 살인’ 전주환 위험성 ‘낮음’ 분류
“위협적인 행동 유형별 나눠 개선 필요”

가해자 강제 조치 강화 필요 목소리

“안전조치만으론 위험 막기 역부족
영장기각 계속되면 신청 안 할 수도”

직장인 A(39)씨는 지난 4월 경찰에 요청했던 ‘범죄 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를 7개월 만에 종료했다. A씨는 사내 부패 행위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뒤 직장 동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동료들은 카카오톡에서 A씨에 대한 비방글을 올리는가 하면, 재판에 출석했던 A씨가 법정에서 나오자 항의하며 쫓아오기도 했다. 결국 가해자들은 회사에서 해고당했지만, A씨는 자신의 집 주소까지 알고 있는 그들이 언제 찾아와 해코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그런 A씨가 경찰에 요청했던 안전조치를 스스로 종료한 것은 ‘내가 오버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전조치는 통상 한 달 단위로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그는 “경찰이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를 보여줬는데, 물리적 폭력이 있었는지부터 물었다”며 “온라인상에서 내가 느낀 위협은 위협이 아니라고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전조치를 연장할 때마다 경찰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안전조치를 연장하면) 경찰을 번거롭게 한다는 인상마저 받았다”고 토로했다.

스토킹 피해자 등을 위한 경찰의 신변보호 조치인 ‘범죄 피해자 안전조치’ 절반 이상이 한 달 안에 종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월 스토킹에 시달리다 살해당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처럼 대부분의 피해자가 안전조치를 연장하지 않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안전조치 연장을 주저하게 만드는 현실적 요인들이 스토킹 사건에 대한 방치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전조치 절반 이상 한 달 만에 종료

세계일보는 20일 전국의 경찰서 중 안전조치가 가장 많은 세 곳의 종료 시점을 분석했다.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10월21일부터 올해 8월 말까지 안전조치 신청이 가장 많은 곳은 경기 수원 남부경찰서(327건), 서울 관악경찰서(326건), 인천 삼산경찰서(206건)다. 세 경찰서가 소재한 수원 영통구와 서울 관악구, 인천 부평구는 전국적으로 1인 가구 비중이 높은 곳이기도 하다.

이들 경찰서가 안전조치를 제공한 기간을 보면, 한 달 이내 종료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수원 남부서는 74.0%(242건), 서울 관악서는 55.5%(181건), 인천 삼산서는 78.2%(161건)가 한 달(31일) 이내 종료된 것으로 집계됐다. 그중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하는 기간은 28∼30일이다. 수원 남부서는 59.9%(196건), 서울 관악서 38.7%(126건), 인천 삼산서 71.8%(148건)였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 지역 외에도 안전조치 대부분이 한 달 이내, 길면 두 달 이내 종료된다”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범죄피해자 신변보호제도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를 보면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의 적용대상은 △특정강력범죄법 △범죄신고자법 △성매매처벌법 △범죄피해자보호법 △성폭력처벌법 △가정폭력처벌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생명이나 신체에 해를 입거나 입을 염려가 있는 경우,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 등 개별 법률이 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범죄 피해자 및 신고자, 그 친족, 검사, 재판장, 경찰서장 또는 사법경찰관은 안전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

안전조치 요청이 들어오면 경찰은 먼저 담당부서를 정하고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로 피해자가 처한 위험을 판단한다. 이후에는 신변보호심사위원회를 열어 신변보호의 필요성과 종류, 방법, 기간 등을 결정하게 된다. 안전조치 연장 또한 이와 동일한 절차를 밟는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 신변보호 조치가 종료될 가능성은 없다’고 경찰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서울의 한 일선서 여성청소년과장은 “안전조치를 종료하기 전에 피해자에 연락해 연장 의사를 묻기 때문에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데 종료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환 경찰청 피해자지원계장 또한 “피해자가 원할 경우 100% 연장해준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변호사들도 “피해자가 원해서 종료됐을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다만 피해자가 ‘왜’ 종료를 원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이은의 변호사는 “처음에 범죄가 일어났을 때 안전조치를 신청한 후 순찰이 강화되고 자신이 어느 정도 안전해졌다고 느끼는 사람은 안전조치 연장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안전조치 이용에 부담을 느끼는 피해자들에게는 경찰의 설명과 권리 고지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재련 변호사는 “피해자 중 자신의 위치가 경찰에 알려지는 것을 불편해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피해자들이 상시적으로 위치추적을 당하는 게 아닌데 이를 오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 보호조치를 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피해자들이 안전조치를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수사관들이 그 이유를 묻고 오해가 있다면 해소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피해자들은 안전조치 관련 권리행사를 하는 데 부담감을 느끼기도 한다. 안전조치를 담당하는 한 경찰관은 “(피해자들이) 스마트워치를 잘못 누를까 걱정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한 시민단체 소장도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은 분이 미안해서 이거(스마트워치)를 못 누르겠다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위험성 판단 기준 구체화 필요

일각에서는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의 필요성을 판단하는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 체크리스트는 물리적 폭력 대비 온라인 폭력의 위험성은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청이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경찰이 사용하는 위험성 체크리스트는 17개 평가항목으로 구성된다. 경찰은 17개 문항의 답변을 토대로 위험성을 ‘매우 높음’, ‘높음’, ‘보통’, ‘없음 또는 낮음’ 중 하나로 평가한다.

17개 문항 중 위험성 여부 판단에 중요한 건 첫 두 문항이다. 1번 문항은 가해자로부터 △폭행 △협박 △성폭력 △스토킹 △감금 등을 당한 사실이 있는지, 2번 문항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족에게도 1번 항목의 행위를 한 사실이 있는지 묻는다. 1번과 2번 문항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지 않은 경우 위험성 ‘없음 또는 낮음’으로 분류된다.

3번 문항부터 5번 문항까지는 1번 문항을 토대로 해당 행위의 ‘상습성’을 파악하고, 그 뒤로는 행위의 위험성, 피해의 심각성, 취약성 등에 관한 질문한다. 1번 문항의 피해가 없었다고 분류되면 위험도가 낮게 평가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도 한달 만에 안전조치가 종료된 바 있는데, 당시 경찰은 가해자 전주환의 위험성을 ‘없음 또는 낮음’으로 분류했다. 피해자가 안전조치 연장을 원하지 않긴 했지만, 이와 별개로 경찰의 위험성 평가도 온라인 스토킹의 위험성을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 피해자는 전주환으로부터 “만나달라”거나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겠다”는 식의 협박성 메시지를 350여건이나 받고 있었다. 이후 올해 1월 피해자가 전주환을 2차 고소했을 때도 경찰은 피해자가 안전조치를 원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위해 징후가 높지 않음 점 등을 이유로 안전조치를 실시하지 않았다.

이윤호 동국대 교수(경찰행정학)는 “이제 스토킹이나 협박도 온라인에서 더 많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위험성 평가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구체적으로 위협적인 행동을 유형별로 나눠 점수를 차등화 하는 등의 방식으로 점수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안전조치’ 피해자 사망사건 2022년 4건… “구속률 높여야”

 

신변의 위협을 받는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범죄 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가 시행되고 있지만, 안전조치를 받고도 피해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강제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범죄 피해자 안전조치를 받던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은 4건에 달했다.

 

지난 2월 서울 구로구에서 50대 남성 조모(56)씨가 전 여자친구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여성은 사건 4일 전 ‘협박을 받고 있다’며 조씨를 폭행과 특수협박 혐의로 고소했고 범죄 피해자 안전조치도 받았다. 고소 사실을 알게 된 조씨가 다시 피해자를 찾아가 협박하자 경찰은 조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조씨를 유치장에 입감한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일부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영장을 반려했다. 유치장을 나온 조씨는 다시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했다. 범행 후 도주한 조씨는 다음날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경북 김천에서는 지난 5월 불법 동영상을 유포한다는 협박을 받아 112시스템 등록과 스마트워치 지급 등 안전조치를 신청한 피해자가 경찰서를 나간 뒤 1시간 만에 살해당했다.

 

지난 6월 경기도 안산에서는 60대 남성 A씨가 헤어진 여자친구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한 달 전 A씨가 ‘왜 만나주지 않느냐’며 욕설을 퍼부은 후로 피해여성은 경찰의 안전조치를 받고 있었다. 같은 달 경기도 성남에서도 폭행과 스토킹 피해를 당해 안전조치를 받던 여성이 살해당했다.

 

전문가들은 구속 등 가해자에 대한 강제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안전조치만으로는 피해자가 극단적인 위험에 내몰리는 것을 막기 역부족”이라며 “근본적으로는 구속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피해자에게 반복적으로 위해를 가하고 있는 게 확인돼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해도 (법원이) 안 받아주는데, 그게 반복되면 일선(경찰)에서는 아예 구속영장 신청을 안 하게 된다”고 말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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