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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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혼적 사실혼의 보호요건 [알아야 보이는 법(法)]

이경진 변호사의 ‘슬기로운 가정생활’

중혼적 사실혼은 사실혼 관계의 당사자 일방 또는 쌍방이 제3자와 법률혼 관계에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우리 법제 하에서 중혼적 사실혼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이므로 이를 보호할 것인지, 보호한다면 어느 정도의 범위 내에서 할 것인지가 문제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재 다수의 학설과 판례는 중혼적 사실혼은 원칙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으나 ‘법률혼이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는 등 특별한 경우’에 보호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중혼적 사실혼의 배우자는 상대방의 법률혼 관계가 사실상 이혼상태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사실혼 관계에 있는 상대방에게 이에 대한 해소를 이유로 재산 분할을 청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대법원 1995. 7. 3, 94스30), 사실혼 관계 해소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도 마찬가지입니다(대법원 1995. 9. 26, 94므163).

 

그렇다면 중혼적 사실혼에 대하여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아 사실혼과 마찬가지로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허용한다면 어떤 경우일까요?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연금 지급 거부 처분취소 사건에서(대법원 1993. 7. 27, 93누1497 판결) 법원은 “법률상 배우자 사이에 이혼 의사가 합치되어 법률혼은 형식적으로만 존재하고 사실상 혼인관계가 해소되어 법률상 이혼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볼 수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법률상 배우자가 유족으로서 연금 수급권을 가지고, 사실상 배우자는 공무원연금법에 의한 유족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하여 일응 ‘이혼 의사의 합치’를 그 요건으로 판시했습니다.

 

“만약 사실상 배우자 외에 법률상 배우자가 따로 있는 경우라면 이혼 의사의 합치가 있었는데도 형식상의 절차 미비 등으로 법률혼이 남아 있는 등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사실상 배우자와의 관계는 군인연금법상의 사실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본 판례 역시 전술한 판례와 비슷한 맥락입니다(대법원 1993. 7. 27, 93누1497).

 

이처럼 판례는 특별한 사정을 ‘법률혼이 사실상 이혼상태인 경우’로 한정하고 있는바, 장기간의 부재나 별거 상태가 계속되어 묵시적인 이혼 의사의 합치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안에서도 ‘사실상 이혼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한 사례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명시적인 이혼 의사의 합치가 없더라도 법률혼 당사자의 별거 기간, 별거 이후의 관계 등에 비추어 볼 때 이혼 의사의 합치가 묵시적으로 인정된다면, 법률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의 이익을 해할 염려가 없다는 점에서 중혼적 사실혼을 법률혼에 준하여 보호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판례 중에는 법률혼 배우자가 행방불명된 기간이 약 4년 10개월이고, 중혼적 사실혼 배우자와의 동거 기간이 2년 10개월 정도로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법률혼의 관계가 ‘사실상 이혼상태’에 있었다고 보아 ‘특별한 사정’을 인정한 사례도 있습니다(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다64161 판결).

 

이경진 변호사의 Tip

 

‧ 법률혼의 보호와 유책주의 원칙상 중혼적 사실혼이 보호될 수 있는 ‘사실상 이혼상태’의 판단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사실상 이혼상태의 인정 범위를 얼마나 넓게 볼 것인지는 구체적인 사안과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경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jin.lee@barun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