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의 논문을 통해 세상에 처음으로 비트코인이 공개된지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가상화폐가 ‘재래 통화를 대체할 수 있는지’, ‘가치가 있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계속되는 사이 가상화폐 시장은 이미 커질대로 커졌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상화폐 보유인구만 지난해말 기준 560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여겨졌던 가상화폐들이 하루아침에 휴짓조각이 돼버리는 경우가 즐비하다. 특히 올해 들어 발생한 루나사태와 해외 거래소인 FTX의 파산, 이번 위믹스 상장폐지까지 대형 사고가 이어지며, 가상화폐의 신뢰성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거래소의 갑질 vs 초과 유통으로 투자자 위험
“업비트의 슈퍼갑질로 인해 상장폐지를 당했습니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는 2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전날 밤 국내 4대 거래소의 위믹스 상장 폐지 결정에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장 대표는 “위믹스 유통 계획을 제출한 곳은 국내 4대 거래소 가운데 업비트뿐이다. 이번 사태는 업비트의 슈퍼 갑질이라고 본다”며 “상장 폐지에 대한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는데, 위믹스가 어떤 기준을 맞추지 못했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일방적인 거래 지원 종료는 갑질”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거래소, 그 중에서도 업비트에 돌린 것이다.
이날 장 대표의 기자회견은 업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위믹스 상장폐지의 파장이 만만치 않고, 칼자루를 쥔 거래소를 직격으로 비난했기 때문이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위믹스 거래지원 종료로 인해 전날 2375원에 거래되던 위믹스는 25일 오후 2시 기준 558원으로 75%가 급감했다. 지난해 최고가 기준 2만8000원대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약 97% 폭락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도 하루도 안 돼 3000억원 넘는 돈이 공중분해됐다.
디지털자산 거래소협의체(닥사, DAXA)는 지난달 27일 위믹스의 신뢰도가 훼손됐다며 이 코인을 ‘투자 유의종목’으로 지정한바 있다. 당시 위믹스가 거래소에 제출한 예상 유통량이 실제 유통량 대비 30% 더 발생됐다는게 이유였다. 위메이드는 당초 10월말까지 거래소에 위믹스의 예상 유통량을 약 2억4957만개로 제출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약 7245만개가 더 유통됐다.
위메이드 측은 이에 “파트너십 계약 체결 때마다 협력 모델의 목적이나 형태에 따라 불가피하게 일정 물량의 위믹스가 추가로 공급돼 거래소에 제출한 수치보다 발행량이 늘었다”고 해명했다. 논란의 소지가 큰 해명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후 닥사에 소명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갑질로 인해 상장폐지라는 결과를 얻었다는데 더 큰 발언의 무게를 뒀다. 그는 “업비트에 당신들이 정의하는 유통량이 무엇이냐고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지금까지 준 적이 없다”며 “업비트에 들어가면 유통 계획을 밝히지 않은 코인이 부지기수다. 가상자산이라는 사회적 재산을 다루는 기업의 이런 처사는 사회악”이라고 강조했다.
◆위메이드 가처분에 업계 회의적 시선
이제 눈은 향후 진행될 위메이드측과 업비트의 법적 공방으로 쏠린다.
우선 장 대표는 거래소에 대한 가처분 신청으로 상장폐지 결정에 대한 불복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장 대표는 “가처분에 집중할 생각”이라며 “재판부에 여러 증거를 제출한 뒤에는 닥사와 나눈 이메일과 텔레그램 메시지, 화상회의 내용 등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업계에선 위메이드의 이같은 가처분 신청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법원은 코인의 상장폐지와 관련한 가처분신청과 관련, 코인 거래소에 결정 권한이 있다고 봤다. 현재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 등 법적 보호장치가 충분히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거래소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이같은 거래지원 여부를 결정해야한다는게 법원의 시각이었다.
앞서 업비트에서 거래종료를 당한 피카코인을 비롯해 드래곤베인 코인 발행사가 빗썸코리아를 상대로 법원에 낸 거래지원종료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바 있다.
장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가처분과 함께 형사절차까지 언급했다. 가상화폐 거래소의 불합리한 결정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및 업무방해 등 법적 공방으로 사태가 번질 가능성도 있다.
장 대표는 “글로벌 매출이 있다”며 위믹스 상장폐지에 대해 애써 무덤덤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 논란은 위메이드 전체의 위기로 확대될 것이란 시각이 많다. 게임개발사였던 위메이드측은 지금까지 게임 생태계 구축에 필요한 통화 수단으로 위믹스를 발행해왔다. 이같은 위믹스 사업 영역은 갈수록 확대돼 2021년 4분기 기준 위메이드의 사업별 전체 매출 3523억원 중 64.1%를 차지했다.
장 대표가 법적 분쟁을 예고했지만, 거래소가 이번 결정을 철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거래소로서는 위믹스의 재거래를 허용하거나, 지원거래 종료를 철회할 경우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닥사로 대표되는 거래소가 물러설 경우, 향후 거래 및 지원종료 결정에 코인 개발사들이 우후죽순 법적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4대 거래소의 한 고위임원은 “거래종료를 당한 위믹스와 위메이드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당초 본인들이 제출한 예상 유통량과 실제 유통량의 차이는 코인의 신뢰성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코인의 가치는 희소성과 직결된다”며 “거래소에 공시된 정보와 실제 유통량이 다를 경우 투자자들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루나에 FTX까지, 신뢰 회복 가능할까
지난 5월 테라루나 사태, 11월 글로벌 거래소 FTX의 파산신청에 이어 이번 위믹스의 상장폐지 소식까지 더해지며 가상자산시장에 대한 불안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개발자 권도형씨가 설립한 테라폼랩스에서 발행한 암호화폐 테라USD(UST)와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자매 코인인 루나(LUNA)의 대폭락 여파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바이낸스 기준 시총 9위, 업비트 기준 시총 4위였던 초대형 코인이 폭락하자 그 여파로 디파이(DeFi) 플랫폼 셀시우스와 미국의 13조원대 대형 헤지펀드인 쓰리애로우즈캐피탈이 파산했다. 당시 루나는 일주일만에 무려 -99.9%라는 암호화폐 사상 최악의 기록을 세웠다.
이후 불과 6개월 만인 11월 초에 터진 FTX 사태는 루나 사태로 인해 때이른 겨울을 맞은 암호화폐 시장에 찾아온 눈폭풍이었다. 한때 세계 2위까지 오르며 명성을 날렸던 미국의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붕괴는 현재 국내에서도 눈에 띄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FTX 파산 신청으로 자산 출금이 막힌 FTX 국내 이용자 수는 1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FTX가 자체 발행한 토큰인 FTT뿐 아니라 FTX와 밀접한 관계자 있는 솔라나를 보유한 투자자들도 큰 손실을 봤다. 이번 사태가 수면위로 떠오른 지난 8일까지만 해도 22달러선에서 거래됐던 FTT는 현재 1.5달러로 90% 폭락했다.
FTX 사태 여파로 글로벌 암호화폐 대출 업체인 제네시스의 파산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제네시스는 FTX에 약 1억7500만 달러를 예치해 둔 것으로 파악되는데 FTX에 돈이 묶인 상태에서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하자 유동성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로 인해 제네시스는 최근 대출 상환을 중단한 상태다.
그간 암호화폐 시장의 ‘큰손’인 제네시스의 재정 건전성은 업계 전반의 재정 건전성을 보여주는 척도로 여겨져 왔다. 이번 사태가 단순히 몇몇 기업의 위기를 넘어 암호화폐 업계 전반의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위믹스 사태 여파로 인한 피해도 상당할 전망이다. 위믹스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도 널리 알려졌던 프로젝트인 것을 고려했을 때 이번 사태는 글로벌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투자심리 위축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회의감이 시장에 감돌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위믹스는 지난 10월 업비트 거래대금 기준 상위 3위권에 드는 종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