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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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는 이 한 명 없이… 맴돌기만 하는 ‘윗선 수사’ [이태원 핼러윈 참사]

특수본, 책임자 규명 하세월

용산구청장 등 17명 피의자 입건
구속영장 신청 없이 소환 조사만
‘보고서 삭제’ 등 지엽적 사안 매몰
“행안부·서울시 수사 소극적” 지적

이상민·윤희근 “현직서 상황 수습”
고위공직자들 사퇴론에도 버티기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사고의 책임 소재는 여전히 제대로 가려지지 않고 있다. 책임을 통감하고 물러난 고위공직자는 한 명도 없고, 사고 원인과 책임자 규명 등의 역할을 맡은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28일 특수본 등에 따르면, 특수본은 참사 발생 사흘 만인 지난 1일 출범해 현재까지 17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특수본은 17명 외에도 최근 참사 대응 관련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 혐의로 소방청 일부 인원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입건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이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이태원사고 특별수사본부에 재소환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출범한 특수본은 이튿날부터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용산구청 등을 압수수색하며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이후 약 한 달이 흘렀지만, 특수본은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핵심 인물들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도 없어 신병 확보도 하지 못했고, 행정안전부나 서울시 등을 필두로 한 윗선 수사도 하세월이다.

사고의 본질과 크게 관련이 없는 ‘용산경찰서 정보보고서 삭제 의혹’이나 ‘토끼머리띠 남성’, ‘아보카도 오일’ 등 지엽적인 사안이나 낭설에 수사력을 소모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용산서 보고서 삭제·회유 의혹에 휘말려 입건됐던 전 용산서 정보계장 정모(55)씨는 지난 11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지엽적 사안에 매달리다 실무진에게 압박을 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특수본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은 윤석열정부 출범 초창기 경찰 업무는 자신들의 소관이라며 31년 만에 다시 부처 내에 경찰 관련 조직인 ‘경찰국’을 부활시킨 이상민 행안부 장관에 대해 아무런 수사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수본은 수사 초반 행안부와 서울시의 책임에 대해 ‘법리 검토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다 안팎으로 ‘정권 실세 눈치보기 아니냐’는 등의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지난 17일에야 강제 수사에 나섰다. 그조차도 행안부 수장인 이상민 장관의 집무실은 압수수색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제대로 된 수사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특수본은 이 장관에 대한 소방노조의 고발사건도 직접 수사하기로 했지만, 지난 23일 고발인 조사 이후 역시 별다른 진척이 없다.

특수본 수사와는 별개로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고위공직자가 아무도 없다. 문책보다 책임 규명과 수습이 먼저라는 게 이유지만, 158명이 서울 한복판에서 사망한 사고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점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평가다.

이태원 참사 이후 1개월이 지난 28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에 추모객들이 놓은 추모메시지와 술, 음료, 국화꽃 등이 비닐에 덮여 있다. 뉴시스

경찰 총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8일 국회에 출석해 “책임 있는 공직자로서 현재 상황을 수습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길이 더 어려운 길이라 생각한다”며 사퇴론을 일축했고, 이 장관도 지난 14일 국회에서 “현재의 자리에서 제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책임을 가장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사퇴론을 에둘러 부정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중대본 회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한편, 특수본은 김광호(58) 서울경찰청장도 조만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특수본은 이날 경찰청 특별감찰팀으로부터 김 청장 감찰자료를 넘겨받았다. 김 청장은 핼러윈과 관련한 치안·경비 책임자로서 참사 전후 조치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진행 경과에 따라 김 청장도 피의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이희진·백준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