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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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는 한국 경제… 생산·소비 부진에 교역조건 악화까지 [한강로 경제브리핑]

한국 경제에 침체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중국 봉쇄 등의 영향으로 수출 부진이 지속되면서 광공업을 중심으로 생산이 감소한 가운데 내수마저 고물가·고금리의 여파로 위축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화물연대 파업에 따른 물류대란과 이태원 참사 등 생산과 소비·투자 측면에서 각종 악재가 쌓이고 있어 경기 침체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부진 등의 여파로 10월 수출 금액과 물량이 모두 1년 전보다 줄어들었다. 특히 수출 금액은 2년 만에 하락 전환했다. 여기에 수입 가격은 계속 오르면서 교역 조건은 19개월째 나빠졌다. 또 국내 경기침체의 사전지표로 여겨지는 장·단기 채권금리 역전 현상도 11월 중순부터 약 2주간 지속되고 있다.

 

◆10월 생산 코로나 이후 최악…경제 침체 가능성↑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10월 전산업생산(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은 전월 대비 1.5% 감소했다. 지난 7월 0.2% 감소한 이후 넉 달째 감소세다. 감소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이 본격화했던 2020년 4월(-1.8%) 이후 30개월 만에 가장 컸다.

 

업종별로 보면 광공업 생산이 광업(-9.2%), 제조업(-3.6%), 전기·가스업(-1.9%) 등 전 부문 감소세를 보이며 전월보다 3.5% 감소했다. 제조업만 놓고 보면 기타운송장비와 반도체에서 각각 5.5%, 0.9% 생산이 늘었지만 자동차와 기계장비에서 각각 7.3%, 7.9% 감소했다. 제조업의 판매를 보여주는 출하는 2.0% 감소했고, 재고 역시 1.4% 줄었다. 통상 재고 감소는 경기가 활황일 때는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10월의 경우 그간 워낙 많이 쌓였던 재고를 밀어내는 일시적 조정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광공업 생산이 큰 폭의 감소세를 보인 건 수출 부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수출은 반도체 등 주력 품목의 수출액이 급감하면서 2년 만에 감소세로 전환한 바 있다.

30일 오후 부산 남구 부산항 용당부두에 컨테이너들이 가득 쌓여있다. 뉴스1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경기 회복세를 이끌었던 내수마저 뒷걸음질하고 있다. 10월 서비스업 생산은 0.8% 감소해 2020년 12월(-1.0%) 이후 22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주식거래 축소로 금융·보험업이 1.4% 감소했고, 수출입과 주택거래 부진으로 운수·창고업과 부동산업이 각각 1.5%, 3.8% 줄었다.

 

소매판매는 승용차 등 내구재(-4.3%), 의복 등 준내구재(-2.5%) 판매가 줄면서 전월 대비 0.2% 감소했다.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보합(0.0%) 흐름을 나타냈다.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99.2로 전월보다 0.1포인트 감소하며 4개월 연속으로 하락했다.

 

문제는 수출 여건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내수를 추가로 위축시킬 수 있는 악재가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경우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와 봉쇄정책에 대한 시위 확산으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중국 수출액은 10월 15.7% 줄었고, 11월에도 20일까지 28.3% 급감한 바 있다. 정부는 “생산 측면에서 수출 감소세 지속,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영향 등이 향후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또다시 악화하는 교역조건…10월 수출금액 2년 만에 내림세로

 

한국은행이 30일 발표한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달러 기준·잠정치) 통계에 따르면 올해 10월 수출금액지수(원화 기준·잠정치)는 125.02(2015=100)로, 1년 전보다 6.7% 하락했다. 수출금액지수는 2010년 10월(-3.4%) 이후 24개월 만에 처음 내림세로 돌아섰고, 하락 폭도 2020년 8월(-9.3%) 이후 2년2개월 만에 가장 컸다.

 

수출 품목별로는 자동차 등 운송장비(+19.6%), 석탄·석유제품(+8.0%)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출금액지수가 하락했다. 특히 섬유·가죽제품(-19.0%), 1차 금속제품(-16.2%), 화학제품(-14.1%), 컴퓨터·전자·광학기기(-13.0%) 등의 내림 폭이 컸다.

 

10월 수출물량지수는 116.43으로, 1년 전보다 3.4% 하락했다. 지난 6월(-2.5%) 이후 4개월 만의 하락 전환으로, 수출 물량 역시 2020년 8월(-3.7%) 이후 2년2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을 기록했다. 주로 섬유·가죽제품(-20.1%), 석탄 및 석유제품(-12.4%) 부진에 영향을 받았다.

한국은행. 연합뉴스

수출입금액지수는 해당 시점 달러 기준 수출입금액을 기준시점(2015년) 수출입 금액으로 나눈 지표이고, 수출입물량지수는 이렇게 산출된 수출입금액지수를 수출입물가지수로 나눈 것이다.

 

서정석 한은 물가통계팀장은 “친환경 자동차를 중심으로 운송장비와 2차전지 수출이 호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로 반도체 등 컴퓨터·전자·광학기기 제품과 화학제품 등의 수출 금액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수입은 금액과 물량 모두 1년 전보다 증가했다. 10월 수입금액지수(165.10)와 수입물량지수(130.29)는 1년 전보다 각 9.8%, 5.3% 상승했다. 수입 금액은 23개월, 수입 물량은 4개월 연속 상승세다.

 

개별 품목 중에서는 석유 등 광산품(28.6%), 운송장비(32.4%)의 수입 금액이 크게 늘었다. 수입물량지수는 운송장비(52.8%)와 컴퓨터·전자·광학기기(23.2%)가 주로 끌어올렸다.

 

다만 수입액(통관기준) 가운데 선박·무기류·항공기·예술품 등은 빠져있다. 이 품목들의 경우 가격 조사가 어려워 수입물가지수를 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입 가격이 수출 가격보다 더 크게 오르면서 교역 조건은 악화했다. 10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1년 전보다 7.4% 하락한 87.74로 19개월 연속 내림세를 기록했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수출 한 단위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을 지수화한 것으로, 상품 100개를 수출하면 87.74개를 수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수가 낮아질수록 교역 조건이 악화했다는 것이다. 다만 순상품교역지수는 9월보다는 1.5% 높아졌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국제유가가 하락한 영향으로 보인다.

 

소득교역조건지수(98.66)는 수출물량지수(-3.4%)와 순상품교역지수(-7.4%)가 모두 떨어지면서 1년 전보다 10.6% 하락했다. 소득교역조건지수는 우리나라 수출 총액으로 수입할 수 있는 전체 상품의 양을 나타낸다. 순상품교역지수와 소득교역조건지수는 각각 19개월과 9개월 연속 하락했다.

 

◆‘침체 신호’ 장단기 금리 역전 계속…여전한 ‘돈맥경화’

 

국내 경기침체의 사전지표로 여겨지는 장·단기 채권금리 역전 현상이 11월 중순부터 약 2주간 지속되고 있다. 기업의 자금 조달 난이도를 가늠하는 신용스프레드(회사채 3년물 AA-등급 금리와 국고채 3년물 금리 간 차이)도 벌어지는 추세다. 경기침체의 시그널이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 경제의 위험 정도를 측정하는 선제 지표인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하락하고 있다. ‘기업’은 매우 어려워지는 데 반해 ‘국가’는 비교적 괜찮아지고 있는 모양새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단기자금 경색 국면의 파장이 여전하다. 

사진=뉴스1

3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채권시장에서 2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3.827%로 마치며 5년 만기 국고채 금리(3.697%)와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3.667%)보다 높았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3.689%를 기록해 ‘3년-10년’ 국고채 금리 역전 현상도 일어났다. ‘2년-10년’간 채권금리 역전 현상은 지난 17일부터 계속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채권금리는 만기가 길어질수록 높아지는 성향을 띤다. 돈을 빌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건 사고로 인해 투자자가 원금을 못 돌려받을 ‘위험’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장·단기 채권금리 역전 현상은 시장참여자들이 단기간에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했다는 뜻이 된다. 

 

신용 스프레드가 벌어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의미다.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하려면 더 많은 금리를 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날 무보증 3년 만기 AA-등급 회사채 금리는 5.445%를 기록,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보다 175.6bp(1bp=0.01%) 높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4월 이후 13년 만의 최고치다.

 

정작 한국 경제 위기 측정 지표인 CDS 프리미엄은 낮아지고 있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28일 기준 한국 외국환평기금 채권(5년 만기)의 CDS 프리미엄은 50.89bp를 기록했다. CDS 프리미엄은 지난 3일 74.9bp까지 올랐다가 최근 들어 낮아지고 있다. 기업의 위험은 올라가는데 국가의 위험은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통화에서 “CDS 프리미엄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 신용은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지만 채권시장, 특히 단기 금융시장이 안 좋다는 것으로 일시적인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단기’쪽 영역은 제일 통화정책 부담을 받는 데다, 단기 자금시장 불안도 있다”며 “CDS 프리미엄은 환율과 상관관계가 높다”고 말했다. 10월까지만 하더라도 1400원대를 넘던 원·달러 환율은 계속 하락,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전일 대비 7.8원 내려간 1318.8원에 마감됐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