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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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유인원 찾아 나선 수의사의 여정

7년간 아프리카 등 열대우림 돌며
고릴라·침팬지·오랑우탄 등 찍어
얼마나 우리와 닮았는지 보여주고
그들이 처한 위기를 세상에 알려

우리들은 닮았다/릭 퀸/이충 옮김/바다출판사/2만5000원

 

“일이 이렇게 될지는 전혀 몰랐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평범한 수의사가 어질러진 책상을 치우다 발견한 기사를 읽고 시작하게 된 여정을 기록한 기행문이자 모험담이다. 출발점이 된 기사의 주인공은 심각한 멸종위기종인 마운틴고릴라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프리카 열대우림에서 활동하는 수의사 단체 ‘고릴라 닥터스‘. 이들을 다룬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또 다른 기사까지 내처 읽은 저자는 일상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고릴라 학살 현장에 있었던 그 수의사들이 얼마나 실의에 빠졌을지 상상해보았다….위협받는 야생동물과 최전선에서 모든 역경에 맞서고 있는 수의사들. 모든 구절이 내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번에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보람이 있을 거야.’ 호기심에서 시작한 일이 사명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이후 2013년부터 7년 동안 저자는 르완다부터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과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을 돌며 멸종위기에 처한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 오랑우탄 등 대형유인원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캐나다의 성공한 수의사이자 안과학과 교수인 릭 퀸은 멸종위기인 고릴라를 보호하는 수의사단체 활약을 소개하는 기사를 읽은 후 카메라를 들고 여행길에 올라 이후 7년 동안 열대우림을 돌며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등 다양한 대형유인원 모습을 기록한다. 그들이 얼마나 우리와 닮았는지를 생생히 보여주고 그들이 처한 위기를 알렸다. 사진은 릭 퀸이 촬영한 마운틴고릴라들의 모습. 바다출판사 제공

그가 방문한 나라들은 대부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강력 범죄가 빈번하여 여행경보가 발령된 위험한 지역들이다. 또 무거운 사진장비를 멘 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열대우림을 헤치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고, 쓰러진 나무 아래로 기어 다니고 구멍에 빠지고, 하반신이 완전히 잠긴 채 늪지대를 지나가고, 큼직한 거미와 거머리에 시달리는 험난한 고생길이다. 흥미진진한 여행기의 마지막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콩고공화국에 할애된다. “범죄와 시민 소요, 그리고 납치 문제로 인해 여행하지 마시오”라는 경고가 따라붙는 여행위험국이다. “꼭 여행하기로 결정했다면 유서를 작성하고 장례식 희망사항을 논의하고, 인질범과 협상할 이를 정하라”는 살벌한 안내까지 이어진다. 그럼에도 저자가 이곳을 찾는 이유는 지구에 있는 고릴라의 99% 이상이 서부저지대고릴라이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그가 발견하는 것은 너무도 평화롭고 경이로운 모습이다. 골똘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어린 침팬지, 서로 씨름하며 노는 개구쟁이 쌍둥이 새끼 서부저지대고릴라, 팔베개를 하고 자면서도 다른 팔로 울타리를 만들어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 마운틴고릴라, 아기를 업고 안고 해먹처럼 흔들며 놀아주는 어미 오랑우탄….참을성 있게 포즈를 취해준 어느 암컷 마운틴고릴라와 오랫동안 눈을 마주치다가 저자는 어떻게든 그들을 돕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던 막연한 소망은 대형유인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찍어 그들이 얼마나 우리와 닮았는지를 생생히 보여주고 그들이 처한 위기를 사람들에게 알리자는 적극적인 행동으로 실현된다.

릭 퀸/이충 옮김/바다출판사/2만5000원

저자의 여행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지속 가능한 여행으로서의 생태관광의 현실을 접하게 된다. 자연 상태 그대로 잘 보전된 보호지역을 찾은 여행객은 자연과 교감하고 생태계를 관찰 학습할 기회를 얻고, 관광 수익은 생태계 보전을 위해 쓰이거나 지역 주민들에게 되돌아가게 하는 지속가능한 관광 형태다. 방문 인원과 시간은 엄격히 통제되고 허가제로만 운영되며, 국립공원 소속의 정규 가이드와 추적꾼의 인도하에 유인원들을 방해하지 않는 조용한 관찰이 이루어진다. 수년간에 걸쳐 인간의 접근에 노출된 대형유인원들은 인간에 대한 선천적 두려움을 버리고 관광객들이 옆에 있어도 평소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된다. 시시각각으로 좁혀지고 있는 대형유인원 서식지를 둘러싼 갈등도 포착된다. 국제적 보호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형유인원의 독자적 생존은 위태로운 수준이며, 이렇게 개체 수가 계속 감소하는 원인은 모두 우리 인간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 식용 고기로 직접 먹거나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밀렵, 어린 새끼들을 애완동물로 밀거래하기 위해 납치하는 과정에서 저항하는 어미들을 살해하는 불법행위가 여전하다. 여기에 서식지를 침입해 들어오는 인구 과잉과 개발, 가난한 주변 농민과의 마찰이 새로운 위협으로 대두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