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71) 라자로 추기경은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10·29 참사’와 관련해, “우리(국민들)에겐 매우 큰 슬픔이고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며 “몇 명이라도 자기 임무에 충실하고 모든 것을 바쳤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 안타깝다. 국가도 그렇고, (우리 모두) 자신들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휴가를 맞아 1년 4개월 만인 지난달 30일 귀국한 유 추기경은 2일 서울 광진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전 10·29 참사 희생자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며 이렇게 당부했다.
앞서 대전교구장을 역임하던 2021년 6월11일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에 임명된 그는 지난 8월27일 추기경에 서임됐다. 교황청 성직자부는 전 세계 모든 성직자와 신학생들을 관장하는 부서다.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직을 제안받고서 9일간 고민했다고 전하며 “9일간 숙고 끝에 다시 교황님을 찾아뵙고 제게 무엇을 원하시느냐고 되물었더니 교황님께서는 ‘십자가’라고 답하셨다”고 말했다. 또 “교황청에 부임하니까 많은 분이 ‘잘 왔다. 올 사람이 왔다’라고 하더라. 아시아인이 교황청 장관이 됐다는 것 자체가 교황청이 로마나 유럽에 머물지 않고 세계교회로 거듭났음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며 “교황청(세계교회)과 한국 교회(지역교회)가 상호보완 역할을 하는 데 가교 역할도 잘 하겠다”고 다짐했다.
유 추기경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가능성과 관련, “교황님께서 지난 8월 KBS 인터뷰를 통해 ‘같은 형제인 남과 북을 위해 언제든 갈 수 있다. 형제들이 같이 살도록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싶다’고 하셨으니 모든 건 북한에게 달려 있다”면서도 “지금까진 북한이 무대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분명한 건 교황님은 핵무기를 포함해 모든 무기 만드는 것 반대하신다”며 “나라마다 무기 만드는 것 1년만 멈춰도 전 세계 기아가 해결된다고 강조하신다”고 덧붙였다.
유 추기경은 국내에서 연극으로도 공연된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을 봤다고 한 뒤, 영화 속 전·현 교황들의 모습이 상당히 비슷하게 그려졌음을 내비쳤다. 그는 “(영화에서처럼 베네딕토 전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 두 분의 모습이 정말 다르다”면서도 “마지막까지 다르지만 두 분이 어떻게 조화하고 서로를 존중하는지가 나오는데, 우리도 거기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곧 86세 생일을 맞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에 대해 비교적 괜찮다고 전하면서 “교황님의 많은 쇄신책이 정착되가고 있는 만큼 오래 사시라고 개인적으로 기도한다”고 했다. 외부에 귀감이 될 만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표적인 쇄신책을 묻는 질문에 그는 “극동 아시아에 있는 대전의 시골 사람을 장관으로 만든 게 단적인 쇄신”이라며 “쇄신은 문장과 규약으로 그냥 되는 게 아니라 곧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인적 쇄신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황이 장관직을 제안했을 때) ‘여러 언어를 하지도 못하고 부족한 게 많아서 어렵겠다’고 말씀드리니 교황님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주교님은 사람들과 관계를 좋게 맺으니 그런 것으로 교황청 분위기를 바꿨으면 좋겠다’고 하셨다”며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통해 교황청 쇄신을 해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 추기경은 국민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한국 사람은 보통 국민이 아닙니다. (교황이 한국인을 높게 평가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6·25 전쟁을 겪고서도 다른 나라와 달리 모든 어려움 이겨내고 시련을 극복했잖아요. 또 웃을 줄 알고 여건되면 이웃을 도와주는 데도 적극적인 국민입니다. 그런 (강점을) 계속 살려나가는 동시에 좀더 정직하고 투명해졌으면, 받는 것보다 베풀고 나눠주는 것의 기쁨을 알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