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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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된 반지하엔 또 다른 세입자… 물막이판도 여전히 미비 [심층기획]

‘세 모녀 사망’ 주택가 다시 가보니

일부 가구들, 수해 이전 그대로
“피해노출 꺼리고 위험인식 낮아”
지자체 침수방지시설 설치 애로

지난 2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주택가. 이곳에선 지난 8월 수도권을 덮친 폭우로 반지하 주택에 살던 세 모녀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4개월여가 흘렀지만 피해 현장엔 여전히 창문이 널브러진 채 그날의 참상을 대변했다.

지난 2일 물막이판이 설치되지 않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반지하 주택 창문. 구윤모 기자

이 골목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A씨는 “당시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분들이 수해 이후 지상으로 많이 이사갔다”며 “이들이 떠난 반지하 공간은 또 다른 세입자들로 점점 채워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관악구는 수해 이후 이곳을 포함해 관내 침수취약가구 정비작업에 돌입했다. 총 8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저지대·지하주택 1269세대에 침수방지시설(옥내 역지변, 물막이판) 설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이날 주택가 골목을 둘러보니 많은 지하·반지하 가구 입구에 물막이판이 설치돼 있었다. 다만 여전히 일부 가구는 수해 이전과 별다를 바 없이 대비가 안 된 모습이었다. 침수취약가구가 물막이판 설치를 구청에 신청하지 않거나 신청했다가 철회하는 경우가 이어졌다는 게 관악구청의 전언이다. 물막이판을 설치하면서 침수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다.

관악구 관계자는 “침수취약가구의 동의가 있어야 물막이판을 설치할 수 있다. 신청한 순서대로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며 “올해까지 현황을 살펴보고 설치가 안 된 곳은 내년엔 설치하도록 계속 안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침수위험가구 안전차수문 설치에 나선 동대문구도 수요자가 없어 사업 계획이 다소 지연되고 있다. 안전차수문은 물감지 센서를 통해 40㎝ 이상 침수 시 자동 경보 시스템이 발동되고, 사물인터넷(IoT) 센서가 달려 침수 시 구청에 연락이 가는 장치다. 동대문구는 당초 10가구에 안전차수문을 설치하려고 했지만 원하는 가구가 없어 4가구밖에 설치하지 못했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동주민센터에서 신청을 요청하고 따로 접촉도 해봤지만, 건물주나 세입자 둘 중 한 명이 반대해 계획대로 설치하지 못했다”며 “아무래도 문을 하나 더 설치하면 불편하고, 자신의 집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수해 당시 상도동 반지하 가구에서 50대 여성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던 동작구는 현재까지 저지대 주택·상가에 물막이판 1521개, 역류방지밸브 2976개를 설치했다. 동작구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설치 건수가 매우 저조했다”며 “올해는 큰 수해가 발생해 신청이 예년보다는 많은 만큼 적극적으로 홍보해 수해에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구윤모 기자 iamky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