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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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법정시한 또 넘긴 예산안, 9일까지는 반드시 처리하라

윤석열정부 첫 예산안이 법정처리 시한인 2일까지 처리되지 못했다. 헌법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까지 국회가 이듬해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야가 그동안 소위 ‘윤석열표 예산’과 ‘이재명표 예산’으로 충돌하며 예산 심의는 표류했다. 여기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문제까지 겹치며 협상은 난마처럼 꼬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체 수정안을 내 단독 처리를 할 수 있다고 압박하고, 정부와 국민의힘은 ‘준예산’ 편성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 위기라 민생 안정이 시급한데 예산안 늑장처리라는 고질적인 병폐가 되풀이돼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국회 권한이자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 8일과 9일에 본회의를 개최하려고 한다”고 밝혔으나, 여야의 현격한 시각차로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여야는 어제도 정책위의장과 예결위 간사가 참여하는 ‘2+2 협의체’를 열어 협상을 재개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특히 민주당이 이 장관 탄핵소추안을 낸다면 예산안 타협은 어렵다는 게 국민의힘의 분명한 입장이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예산안이 정치공방의 희생양이 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2014년 국회 선진화법 도입 후 예산안은 법정 처리시한을 지키지 못했더라도 짧으면 하루, 길면 8일 후 처리됐다. 2019년 처리된 2020년도 예산안은 12월10일 처리되면서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후 ‘최장 지각처리’ 기록으로 남았다. 내년도 예산은 이를 뛰어넘어 새로운 불명예 기록을 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여러 정치 쟁점이 엉켜 있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예산안이다. 경제·민생 최우선 관점에서 합의안을 도출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9일까지는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

 

예산안 처리가 법정시한을 넘긴 와중에도 여야 의원들은 ‘지역구 챙기기’를 위해 34조원이 넘는 예산을 밀어넣으려 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철도를 놓거나 도로를 뚫어달라는 요구가 가장 많았고 금액도 컸다. 철도·도로 노선 관련 증액요구는 180여 건에 달했고, 이 가운데 19건은 그 규모가 500억원을 넘었다. 정부의 나랏돈 씀씀이를 견제해야 할 의원들이 자기 표밭 챙기기에만 몰두하는 건 사라져야 할 구태다. 예산안 처리가 어차피 기한을 넘긴 만큼 심사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비효율적인 선심성 예산 증액은 국민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