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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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평가에 “XX 크다” “기쁨조” 성희롱… ‘필터링 강화’만 외치는 교육부

교원평가 욕설·성희롱 논란

세종 고교 서술문항서 문제 발언
피해 교사, 가해 학생 색출 요구
교육부 “익명성 훼손” 불가 입장
현장선 필터링 시스템 한계 지적

교원단체 “서술형 평가 없애야”

최근 세종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원능력개발평가(교원평가) 서술식 문항에 여교사에 대한 노골적인 성희롱 발언을 남긴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되자 교육부가 “필터링을 강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필터링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교원평가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5일 한국교직원총연합회(교총)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에 따르면 세종 A고 교사들은 최근 교원평가의 일부 문항 작성자를 찾아달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교원평가는 학생과 학부모가 교원에 대한 만족도 등을 평가하는 제도로, 올해 평가는 9∼11월 진행됐다.

세종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작성한 교원능력개발평가 자유서술식 문항 일부. 여교사의 이름과 함께 성희롱성 발언이 적혀 있다.  트위터 캡처

A고 교사들은 학생이 익명으로 쓰는 서술식 문항에서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했다. 서술식 문항에는 ‘○○이, ○○ 크더라. 짜면 모유 나오는 부분이냐’ 등 교사의 이름과 신체 부위를 언급한 성희롱 발언이 다수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교사 이름을 여성 성기를 연상시키는 단어로 변형해 적은 학생도 있었다. 자신을 피해 교사라 밝힌 B씨는 트위터에 ‘교원평가 성희롱 피해 공론화’ 계정을 만들고 “피해 교원은 모두 젊은 여성이며 현재까지 4명이 확인됐다”며 “학교 측에 문제를 공론화해 가해 학생들이 스스로 잘못을 밝힐 기회를 주자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고, 가해 학생을 찾기 위해 수사기관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B씨의 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퍼지며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는 이날 “부적절한 서술형 문항 답변으로 교원들이 피해를 보는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서술형 문항 필터링 시스템이 완벽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필터링 시스템을 개선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선 필터링 시스템 강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2010년 교원평가가 도입된 후 서술형 문항에 욕설·성희롱 발언이 난무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으나 교육부는 매번 ‘필터링’만 외치고 있다”며 “필터링은 얼마든지 피하는 방법이 있고, 아이들도 이걸 알고 있어서 필터링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 A고 사안에서도 가해 학생은 ‘모3유’라고 쓰는 등 단어 중간에 숫자 등을 넣어 필터링을 피했다.

피해 교사들은 이런 문제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가해 학생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교사 성희롱이 범죄 행위란 점을 인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익명 시스템 신뢰가 훼손될 것”이라며 작성자 특정에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문제가 생겼다고 작성자를 특정하면 학생들이 ‘교원평가에서 선생님에게 불리한 내용을 쓰면 나도 특정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될 것”이라며 “작성자를 추적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피해 교사들이 경찰에 신고한 만큼 향후 수사를 통해 작성자가 특정될 것으로 보인다. 

 

B씨는 “(공론화를 막은 학교는) 가해 학생에게 ‘이래도 되는구나’란 메시지를 주고 있다. 교사에게 성희롱 발언을 적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피해자만 고통받는 것을 목격할 가해 학생들은 무엇을 학습하고 사회로 나가게 되나”라며 “가해 학생 계도, 재교육을 위해서라도 피해 교사들이 덮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해자가 마땅한 처벌을 받아 본인이 한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적었다. 이어 “무너진 마음과 정신적 충격 때문에 일상을 유지하기 힘들다. 가해 학생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학생들로 가득한 복도와 교실에 서야 하는 매 순간이 트라우마”라며 “교육부는 모독성 발언을 쓴 학생을 추적해 교육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도 “교육부가 가해자 특정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데, 이번에 그냥 넘어가면 학생 사이에서 ‘어차피 적발 안 된다’는 인식이 퍼져 이런 문제들이 더 많아질까 걱정된다”며 “가해 학생을 공개하라는 것도 아니고 따로 불러 주의를 주면 될 텐데 결국 수사기관까지 개입하게 됐다. 교육부가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교원단체는 서술식 평가 자체를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교총은 “현재 교원평가는 교권·인권 침해 주범”이라며 “부작용만 초래하는 교원평가는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교조도 “교원평가는 교사들에게 성희롱, 인권 침해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합법적’ 공간으로 전락했다”며 “교육당국의 방치가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