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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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케어' 수술대 오른다… MRI·초음파 급여부터 손본다

건보 보장성 강화 재검토 배경

MRI·초음파 검사비 3년새 9.8배 급증
연 365회 이상 병원 다닌 사람 2550명
지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재정 빨간불
외래이용 횟수 많으면 본인부담률 높여
외국인 피부양자 입국 6개월 후 보험 적용
보장률 67%… OECD 평균 87%보다 낮아
생명 직결 필수의료에 재정 투입 추진
의사수 확대 계획 빠져 반쪽 대책 지적

건보 재정 현황
2019년에는 2조8000억원 넘는 적자
코로나 영향 작년·올해는 반짝 흑자
고령화로 올 진료비 100조원 넘을 듯
2023년 처음으로 7%대 보험료율 적용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재검토에 나선 것은 과잉의료이용으로 건보 재정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건보 재정 누수를 최소화하고,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에 재정이 쓰이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환자 부담이 커질 수 있고, 필수의료 확충에 꼭 필요한 의사 수 확대는 이번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MRI-초음파 검사 기기. 연합뉴스·게티이미지뱅크

◆건보 재정 누수 줄여 필수의료에 투입

8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지출이 급증한 초음파·자기공명영상(MRI) 급여부터 조정된다. MRI·초음파 검사 진료비는 2018년 1891억원에서 지난해 1조8476억원으로 3년 새 9.8배 늘어났다.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선택적 검사가 다수인 근골격계·척추 질환 MRI·초음파 건보 적용은 연기한다.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급여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뇌·뇌혈관 MRI의 경우 두통·어지럼에 대한 신경학적 검사 시 급여를 인정하고 있는데, 신경학적 검사상 ‘이상소견이 있는 경우’에만 급여를 인정하고, 인정 횟수도 3번에서 2번으로 줄일 계획이다. 상복부 초음파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급여를 적용하며, 하루에 여러 부위를 봐도 모두 건보 적용이 됐던 초음파는 하루 최대 인정 횟수를 정하기로 했다.

과잉의료이용도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연간 외래 의료 이용 횟수가 365회를 넘는 사람은 2550명, 이들에 투입된 급여비는 251억4500만원에 이른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외래이용 횟수가 많으면 본인부담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편한다. 또 과다의료이용자를 등록·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실손보험이 이 같은 과다의료이용에 영향을 끼친다고 보고, 개선안을 금융위원회와 함께 논의하기로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급증하고 있는 요양병원 관리도 강화한다. 2011년 976개던 요양병원 수는 지난해 1462개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급여비 지출은 2조2000억원에서 4조4000억원으로 늘었다. 중증도가 높지 않은 환자가 장기입원하지 않도록 환자 중증도 평가를 강화한다. 현재 입원 후 120일이 지나야 퇴원환자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입원 90일 경과로 단축한다.

이와 함께 본인부담상한제와 암 등 중증·희귀질환 환자에게 적용되는 산정특례제도와 의료비 경감 제도를 정비한다. 외국인의 피부양자나 장기 해외 체류 중인 국외 영주권자가 고액 진료를 받는 ‘무임승차’를 막기 위해 이들이 입국 6개월 후부터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건보 지출은 늘었는데 필수의료 확충은 미흡했다. 응급실에 이송됐으나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거나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는 일이 적지 않다. 중증응급환자 원내 사망률은 2019년 6.4%에서 2020년 7.5%로 늘었다. 급성심근경색 응급환자의 11.2%(2020년)는 다른 병원으로 전원돼 수술을 받았다. 지난 7월 서울아산병원에서 뇌출혈 간호사가 수술을 받지 못해 이송 중 사망했다.

정부는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우선 중증·응급, 분만, 소아 분야에 더 많은 보상을 하기로 했다. 응급실 내원 중증 환자의 후속 진료 연계를 위해 ‘응급전용입원실 관리료’를 신설한다. 분만취약지 산부인과와 지역별 지역 소아암 거점병원을 육성하고, 소아전문 응급의료센터도 현행 8개소에서 12개소로 늘릴 계획이다. 분만 시 불가항력 의료사고의 경우 보상 국가분담비율을 확대한다. 정부는 내년 필수의료지원관을 신설해 정책을 지속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보장성 축소 우려…인력 정책 미흡 지적

이번 대책으로 환자 부담이 일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추진에도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보장성 87%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급여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의학적으로 검사나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치료를 못 받거나 비급여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비용을 부담할 수 없으면 검사·치료를 피할 수 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이날 성명에서 “정부가 재정 건전화를 빌미로 보장성을 축소하려 한다”며 “과잉진료도 보장성 강화 때문이 아니라 병원이 진료, 검사, 처치 등을 할수록 더 많은 수입을 얻는 구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임인택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대책이) 보장성을 합리화하겠다는 것으로 국민 혜택을 줄이는 취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필수의료에 수가 확대 등 보상책만으로 의료환경이 개선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필수의료 분야는 의사 수 부족이 원인으로 지적되는데, 의대 정원 확대 등 구체 계획은 이번 대책에서 빠졌다. 의정 협의에 따라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대 정원 확대 추진 등을 논의하겠다는 원론적인 언급만 담았다.

전공과목별 쏠림 해소 방안도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文케어 본격 시행하자 적자… 2028년 적립금 고갈 위기

 

급격한 고령화와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시행으로 건보의 장기 재정전망은 밝지 않았다. 내년부터 건보 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2028년에는 적립금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 내년에는 처음으로 7%대 건강보험료율이 적용된다.

 

8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당기 흑자를 내던 건보 수지는 문재인 케어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2018년부터 급격히 악화했다. 2018∼2020년 내리 당기 적자를 기록했고, 특히 2019년에는 2조8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병원 방문이 줄면서 건보 수지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반짝’ 흑자를 기록할 전망이지만, 내년부터 다시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예측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연합뉴스

앞으로 건보 수지 적자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난해 말 기준 20조2400억원의 건보 적립금도 빠르게 줄어들 전망이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건보 수지는 내년 1조4000억원 적자, 2024년 2조6000억원으로 적자 폭이 점점 커진다. 적자는 계속 불어나 2028년에는 8조9000억원에 달하게 되고 적립금은 모두 소진된다. 또 2060년에는 누적 적자가 5765조원에 달해 그해 국내총생산(GDP)에 육박할 것이란 장기 재정전망도 나왔다.

 

건보 재정이 악화하는 가장 큰 원인은 고령화다. 노년층에 접어든 인구가 늘어날수록 의료 이용이 증가하게 된다. 올해 상반기 건보 진료비는 50조845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50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상반기(44조8823억원)보다 11.6% 증가했다. 하반기에도 이 같은 증가세가 이어지면 올해 건보 진료비는 100조원을 넘을 수 있다. 이 중 43%가량이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다.

 

여기에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건보 지출이 크게 증가했다. 건보공단의 ‘건보 보장성 강화에 따른 연도별 집행액’ 자료를 보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문재인 케어 관련 총지출액은 18조5963억원에 달한다. 연도별 지출액은 △2017년 1842억원 △2018년 2조3960억원 △2019년 4조2069억원 △2020년 5조3146억원 △2021년 6조4956억원으로 해마다 지출 규모가 커지고 있다.

 

건보 지출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보험료율도 덩달아 올랐다. 직장가입자가 월 소득 대비 내는 보험료인 건강보험료율은 내년부터 7.09%로 오른다. 건강보험료율은 2017년 6.12%로 동결된 이후 △2018년 6.24% △2019년 6.46% △2020년 6.67% △2021년 6.86% △2022년 6.99%로 꾸준히 올랐다. 2026년이면 보험료율이 법정 상한선인 8%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 보험료율 인상에 따라 내년 직장가입자는 보험료가 월평균 약 2000원, 지역가입자는 약 1600원 증가한다.


이진경·이정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