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화물운수노조(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지속·확대를 요구하며 시작한 총파업이 16일 만에 종료됐다. 정부가 시멘트, 철강에 이어 석유 화학 업종에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 발동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파업 동력이 떨어졌고 결국 9일 파업종료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61.84%가 파업종료에 찬성했다.
이로써 화물연대는 그동안 요구해왔던 도로 위의 최저임금제인 ‘안전운임제’ 연장도,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도 얻어내지 못하고 빈손으로 파업을 종결했다. 정부는 화물연대에 제시했던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도 거둬들이는 분위기다.
결국 파업은 종료됐지만, 안전운임제를 둘러싼 뇌관은 사라지지 않았고, 저임금과 과로에 시달린다고 주장하는 화물 노동자들의 노동환경도 변한게 없다. 민주노총으로서는 파업 과정에서 미참여 운전자에게 쇠구슬을 투척하는 등의 행위로 부정적인 인식만 얻게 됐다. 그러나 민심은 정부 출범 이후 야당, 노동계 등과 일방통행식 태도를 보여온 정부·여당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여권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상승 추세와 관련, 노조의 불법파업에 대한 원칙적 대응의 결과라고 풀이하지만, 여론조사에서 여당 지지층을 제외한 일반 시민들은 정부의 대응이 일방적, 독단적이라고 보는 비율이 높았다.
◆빈손으로 복귀한 화물연대…향후 협상은 어떻게?
9일 화물연대는 파업종료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총파업종료·현장복귀의 건’이 가결됐다고 설명했다. 투표 참여 조합원 3575명 중 파업종료 ‘찬성’은 2211표(61.84%)로 나타났다. 파업 종료 ‘반대’는 1343표(37.55%), 무효표는 21표(0.58%)였다. 정부가 두 차례나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는 초강수를 둔 데다 물가상승, 무역적자 등으로 인한 경제난 속에서 파업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비노조원에 대한 쇠구슬 공격과 천막 내 도박 등이 여론에 오르내리며, 선전전에서도 실패한 모양새다.
파업은 중단했지만 올해 말 일몰되는 안전운임제에 대한 뇌관은 여전히 남았다. 더 나아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화물연대가 주장하는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은 11월22일 정부·여당이 집단운송거부로 인한 국가적 피해를 막기 위해 제안한 적은 있으나 화물연대가 11월24일 집단운송거부에 돌입하였기 때문에 그 제안은 무효가 된 것”이라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국회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정부 안이었던 안전운임제 일몰 3년 연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이 개정안의 통과 가능성은 남아있다. 이날 민주당은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단독으로 열고 안전운임제 일몰을 3년 연장하는 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안전운임제를 2025년 12월31일까지 운영한다는 부칙을 넣는 개정안이다. 민주당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곧이어 열린 전체회의에서 개정안을 심의해 의결했다. 파업에 앞서 해당 안을 제시했던 원 장관과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불참했다.
◆강경 대응으로 지지율 상승? 지지층 제외하곤 부정적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상승하는 추세다. 한국갤럽이 지난 6∼8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33%, 부정 평가는 59%로 각각 집계됐다. 직전 조사보다 긍정 평가는 2%p 올랐고 부정 평가는 1%p 내렸다. 이번 조사의 오차범위는 95% 신뢰 수준에서 ±3.1%포인트다. 무선(90%)·유선(1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됐고 응답률은 10.0%다.
응답자들이 꼽은 긍정 평가 이유는 노조 대응(24%), 공정·정의·원칙(12%), 결단력·추진력·뚝심(6%) 등 순으로 나타났다. 부정 평가 이유로는 독단적·일방적·소통 미흡(이상 9%), ‘외교’·‘경제와 민생을 살피지 않음’(이상 8%) 등이 꼽혔다. 응답자 중 노동자 처우와 노동 정책을 꼽은 비율도 3%에 달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런 지지율 상승으로 여권에서는 노조의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이 지지율 상승을 이끌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해당 여론조사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지층을 제외한 국민들은 정부에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응답자들은 현 정부가 노동계 파업 대응을 잘하고 있냐고 묻자 31%만 잘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51%는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국민의힘 지지층(65%)과 성향 보수층(59%),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자(73%) 등 핵심 지지층에서 파업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비율이 높았지만, 중도층의 51%, 무당층의 53%는 파업 대응을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화물연대가 주장하고 있는 안전운임제 적용 범위 확대와 지속 시행을 지지한다고 응답하는 비율도 48%에 달했다. 안전운임제에 대한 폐지까지 검토하고 있는 여권과 달리 중도층은 파업 지속에는 부정적이지만 안전운임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는 여론이 적지 않다.
국민들은 불법 폭력과 이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는 동시에, 정부가 야당과 노동계와 강경 모드로만 일관하는 것에 대해서는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장에서 왜 안전운임제 요구가 나오는지 들어보고 고민해봐야 하는데 노동자들을 무조건 힘으로 찍어 누르는 태도는 결국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고 또 다른 불씨를 만들어내거나 키우는 것”이라며 “정부가 지난 6월 파업 당시 화물연대와 합의를 해놓고 지금까지 방치한 것 아닌가. 파업으로 민생이 어려워진 책임은 정부에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