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 예산안을 놓고 치열한 샅바 싸움을 전개 중인 여야는 ‘오는 15일까지 합의안을 만들어보라’는 김진표 국회의장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일단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12월 정기국회 회기 내 예산안 처리에 처음으로 실패한 흑역사를 써 내려가면서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윤석열표 예산’을 어떻게든 확보하려는 국민의힘과 깎으려는 더불어민주당이 끝내 합의하지 못할 경우 정부 예산안을 대폭 깎은 민주당 측 수정안이 강행 처리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경우 집권 1년 차를 ‘문재인표 예산’으로 보내야 했던 윤석열정부는 내년에도 민주당 예산으로 한 해 나라 살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 ‘윤석열표 예산’ 대 ‘문재인표 예산’을 두고 격돌 중인 여야에 대해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해 절충점을 모색해 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 해외이전 방지” VS “초부자 감세”
여야 간 핵심 쟁점은 법인세율 인하 여부다. 국민의힘은 국내 기업의 해외이전을 막고, 해외자본을 국내로 유인하기 위해선 법인세를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행 법인세 최고세율 25%를 22%로 낮추자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여당 주장대로라면 대기업만 혜택을 보는 “초부자 감세”가 될 것이라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국회에서 회동을 가졌지만,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돌아섰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11일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법인세 최고 구간 (조정이) 어떻게 초부자 감세냐”며 “법인이 이득을 보면 법인 주식을 가진 주주에게 이득이 배당되고, 종업원에게 돌아간다. (민주당이) 교조적인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어제부로 의견 차가 너무 크고 접근할 만큼 접근했다”며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지, 협의로서 좁혀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를 두고 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같이 죽자는데 어떻게 하겠나”라고 했다.
민주당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중견 기업에 매기는 법인세율을 먼저 낮추자는 입장이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전날 “유가와 금리 급등 등으로 이익을 많이 낸 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 103개 슈퍼 대기업에 법인세율까지 대폭 낮춰주려고 정부·여당이 예산안 처리까지 발목을 잡을 때가 아니다”라며 “오히려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감안해 과세표준 2억원부터 5억원까지 중소·중견 기업 5만4000여개를 법인세율 현 20%에서 10%로 대폭 낮춰주는 것만 우선 처리하자는 민주당의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에 왜 윤석열정부와 여당은 끝내 동의하지 않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尹예산 VS 文예산… 사사건건 대립
이 밖에도 여야는 각종 예산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 중이다. 공공주택 정책과 관련해 국민의힘은 공공분양주택을, 민주당은 공공임대주택을 늘려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은 문재인정부가 밀던 주택 공급 정책이다. 민주당은 이 예산을 3조원 이상으로 늘려 잡아 여권의 거센 반발을 샀다.
용산공원 조성 비용은 민주당이 감액하자고 주장한다. 토양의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 정화작업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의힘은 “이미 문재인정부에서부터 추진돼 온 사업”이라는 반응이다.
정부부처와 관련해선,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과 행정안전부 경찰국에 인건비 차원 예산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 여당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법적 존립 근거가 부족한 조직에 예산을 줄 수 없다며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의 경우 민주당은 더 늘리자는 반면, 국민의힘은 “이재명표 예산”이라며 난색을 보인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성남시장, 경기지사 시절 지역화폐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이 밖에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 시기를 두고도 여야 의견이 엇갈린다. 이 법은 대주주 여부와 상관없이 상장주식 기준 50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린 투자자에게 과세하는 내용이다. 국민의힘은 2025년까지 2년 유예하자는 반면, 민주당은 내년에 바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투세는 문재인정부에서 도입 계획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