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식 논란을 빚고 있는 김광동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신임 위원장이 한국전쟁 당시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 피해 사건인 ‘노근리 사건’에 대해서도 “집단 학살이 아님에도 반미화 때문에 사회 전체가 흥분했다”고 평가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제주 4·3 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폄훼한 발언이 알려진 데 이어 노근리 사건에 대해서도 이념 편향적인 역사 인식이 드러난 것으로, 진실화해위 위원장으로 부적격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2003년 저서 ‘반미운동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에서 노근리 사건에 대해 “전쟁 중 후퇴하던 미군의 오인 사격에 의한 충북 노근리의 희생”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마치 미국이 양민을 살해할 목적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자행한 것처럼 ‘집단 학살’이란 표현을 써가며 사회 전체가 흥분했던 것 등은 바로 한국사회에서 반미화의 진행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노근리 사건은 1950년 7월 충북 영동군 노근리 일대에서 미군이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기관총 사격과 전투기 폭격을 가해 수백명의 사상자를 낳은 사건이다. 사망자 150명, 행방불명자 13명, 후유장애자 63명 등 226명이 희생자로 인정됐다.
김 위원장은 같은 책에서 “한국의 반미운동은 다른 국가에서 나타나는 반미와 차원을 달리한다”며 “미국의 모든 정책을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미군 관련 사건을 의도적 살인이나 학살로 몰아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수업으로부터 일부 환경운동, 민주화운동 그리고 인권운동에 이르기까지 그 목표를 전반적 반미감정의 고조와 확산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노근리 사건 역시 반미운동 세력이 의도적으로 반미감정을 고조하기 위해 학살로 몰아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같은 김 위원장의 주장은 객관적인 사실과 배치된다는 반론이 있다. 노근리 사건의 경우 1999년 AP통신 보도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노근리 사건을 보도한 AP통신 취재팀은 2000년 탐사 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받는 등 이 사건이 공론화되는 과정 속에 ‘반미운동’과는 큰 관련이 없었다.
오인 사격 여부 역시 여전히 쟁점이다. 한·미 양국은 2001년 공동 조사에서 사격 명령에 관한 증언자들의 증언 불일치로 인해 사격 명령이 실제로 하달됐는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문제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김 위원장이 이러한 인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2019년 국회에서 열린 ‘6·25 인민군의 제노사이드: 진실과 허구’ 토론회에서도 “침략 전쟁을 막으러 온 미군에 의한 충북 노근리 오인 사격, 전쟁 중 발생했던 국민방위군 사건, 국군의 보복 사건만이 부각되는 현실”이라며 북한군과 중공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를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작 진실화해위는 김 위원장 취임 이전인 지난달에 한국전쟁 전후 희생자 모두를 배·보상 대상으로 하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국회와 정부에 권고했다. 김 위원장이 진실화해위원회의 수장으로 부적격하다는 평가도 나오는 배경이다. 현재 한국전쟁 민간인 피해자 관련 사건들이 진실화해위에서 진실규명 절차를 밟고 있는 만큼, 김 위원장의 왜곡된 역사 인식이 피해자 구제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과거 발언과 진실화해위 업무는 무관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