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데스크의눈] 안전 문제에 국민 갈라치는 정치인들

이태원 참사 아픔 여전한데
정파적 계산따라 망언 추태
해결 아닌 문제 키우기 급급
유권자, 정치꾼 배격 나서야

이제 열흘 남짓이면 새해다. 이즈음이면 언론은 2022년 국내외 뉴스를 선별해 게재한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다산다난한 한 해였지만, 지난 10월 끝자락에서 발생한 서울 ‘이태원 압사 참사’는 두고두고 안타까운 뉴스다. 외신에서도 ‘해외 10대 뉴스’의 하나로 꼽을 법한 참사였다. 참사 발생 2개월이 돼 가지만, 유족의 먹먹한 가슴은 조금이라도 해소될 기미가 없다. 정치의 부재도 원인으로 크게 작용했다는 말은 부질없기까지 하다. 문제를 키우는 정치 세력은 넘치지만, 해결하는 정치인은 찾기 힘든 때다.

이달 중순 세계일보 경남 창원 주재기자인 강승우 기자는 차마 언급하고 싶지 않은 정치인의 글을 접했다. 여당 소속 창원시의원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었다. “나라 구하다 죽었냐”에서 “자식 팔아 장사한단 소리가 나온다”까지 참사 희생자와 유족을 향한 저주의 눈빛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김 시의원의 글은 정치를 세력 간의 대결로만 여기고, 일반인의 눈물엔 공감을 보이지 못하는 정치꾼의 패턴을 전형적으로 보여줬다. 세계일보는 사실상의 가해자인 김 시의원의 이름을 애써 드러내지 않고, 익명으로 보도했다. 고통은 오히려 피해자의 몫이었다. 일부 유족은 기사 게재 이후 “악의에 가득 찬 시의원의 SNS 관련 언론 보도로 2차 가해로 피해를 입고 있다”며 “기사를 수정해주거나, 제목만이라도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제목을 수정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강 기자는 부서장인 나의 동의를 얻어 제목을 일부 수정했다.

박종현 사회2부장

세계일보의 보도 직후 여러 매체가 비슷한 내용을 게재한 뒤 김 시의원은 뒤늦게 글을 내렸다. 이후엔 정치의 속성 분출을 확인해야 했다. 동료 의원 일부는 그를 두둔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공직자가 유족을 조롱하는 행위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측면에서 시의회 차원의 징계 요구가 있었지만, 국민의힘 소속 27명 의원들은 누구도 서명하지 않았다. 유족의 제명 호소에 공감하기보다는, 김 시의원에 대한 치졸한 옹호만 반복됐다. 그들은 잘못된 신념의 성채에 굳건히 머물고 있었다. 그런 이들이기에 100명이 훨씬 넘는 국민의 생명을 앗아간 안전사고는 정부와 정치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확신할 것이고, 이 사고는 자파 정치 세력에 손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달 초 미국에 다녀왔다. 시차 적응을 못하고 새벽 일찍 산보를 하고 있는데, 소방차와 응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어둠 속 거리를 내달렸다. 미국에서 오래 거주한 지인이 “시민 생명이 걸린 문제일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사고나 재해가 발생하면 재산 피해 추정치에 관심을 먼저 두곤 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생명에 모든 우선 순위를 두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 일부 보수 세력이 군인이나 경찰 등에 대한 미국인의 존중을 부러워하면서도, 일반인의 생명엔 무게를 두지 않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태원 참사’에서 ‘세월호 침몰’을 연결짓는 듯하다. 일부에서는 ‘이태원 참사를 세월호처럼 참사 영업해서는 안 된다’는 억장 무너지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여당의 논리대로 이태원 참사가 정치적인 논쟁거리가 아닌 그저 큰 사고였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분명한 사죄, 추후 안전 대책과 응급 구조 체계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하는 것은 정부와 여당의 몫이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은 지당한 원칙이다.

여느 해라면 해넘이와 해맞이 여행이 대화의 소재로 올라올 시기다. 올해는 다른 느낌이다. 경북 영덕군만 하더라도 해맞이 축제로 각광받아온 호미곶 해맞이 행사를 올해는 열지 않기로 했다. 안전사고 우려 때문이다. 작지만 소중한 의식 전환으로 보고 싶다.

일주일 뒤면 2023년을 향한 관심이 차고 넘칠 것이다. 안전에 대한 관심이 내년을 관통하는 의식이 돼야 한다. 이를 통할 때 행정과 정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념과 막말을 통해 일부러 균열을 야기하는 정치꾼에 대한 본격적인 배격이 시작되길 소망해 본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국제적 표준을 만들어가고 있는 한국은 정치에 대해서도 그만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안전마저 정파적 계산에 나서는 정치꾼을 배격하는 유권자가 늘어날 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박종현 사회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