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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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청정국 옛말…마약과 전쟁 중인 대한민국 [이슈+]

마약사건 연루 폭력조직 간부 “SNS로 손쉽게 필로폰 구해”
마약사범 10만명 당 31.2명… 국제 마약청정국 기준 초과
윤 대통령 “좀 부끄러운 얘기”…한동훈 “강력 단속·처벌”

과거 마약사건으로 징역형을 살고 나온 한 폭력조직의 전 간부는 22일 “요즘 10대들은 판매책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아이디로 연락하면 손쉽게 얼음(필로폰을 부르는 은어)을 구할 수 있다”며 “편의점 택배를 통해 물건을 주고 받을 수 있어 오히려 거래가 정말 편해진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약청정국이란 말에 “온라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어떻게 마약청정국”이냐며 코웃음을 쳤다. 그는 “예전엔 사는 사람만 샀지만 요즘은 다이어트나 불면증에 쓰려고 구하는 사람도 꽤 있다”며 “온라인상에서 광고를 하다보니 불특정 다수가 거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3일 영종도 인천본부세관 수출입통관청사에서 김혁 인천본부세관 조사국장(왼쪽)과 데이비드 퐁(David Fong)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한국지부장이 한국과 미국의 마약류 밀수단속 공조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때 마약청정국이라 평가받던 한국이 연일 재벌가·부유층 자녀, 연예인 등 사회 유력층을 대상으로 한 마약사범 수사로 골머리를 앓고있다. 코로나19와 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마약 범죄가 횡행하고 있고, 지난 3년간 마약류 사범은 매년 1만명 넘게 발생했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마약사범에 대한 엄정 방침을 밝힌 만큼 향후 검찰발 ‘마약과의 전쟁’이 보다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가 수사해 기소하거나 수사를 벌이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은 마약사범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재벌가나 부유층 자녀들이다. 특히 철강 분야 중견업체인 고려제강 3세인 홍모씨가 대마초 투약·소지 혐의로 구속됐고, 지난달 15일에는 남양유업 창업자의 손자인 홍모씨도 구속됐다. 그는 마약 혐의로 1년8개월 복역 후 출소한 황하나씨와는 사촌 관계다. 여기에 범효성가 3세인 조모씨와 JB금융지주사 전 회장의 사위인 임모씨 등이 대마 매수 및 흡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여기에 검찰이 재벌가 3세 등 대마사범 9명을 기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전직 경찰청장 아들 등이 자수하기도 했다.

 

부유층 뿐만 아니라 연예인들의 마약 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8일 3인조 그룹 가수의 멤버 안모씨를, 지난 10월21일에는 돈스파이크(본명 김민수)씨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재판에 넘겨진 래퍼 니플라는 지난달 10일 2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YG 연습생 출신인 한서희씨는 지난 9월23일 1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돈스파이크(김민수)가 지난 9월 28일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검찰은 이들이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쌓은 인맥을 바탕으로 국내외에서 마약을 함께 거래·투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명인들 뿐만이 아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6∼2018년 8000명대를 유지하던 연간 마약사범은 2019∼2021년 1만 명대로 늘어났다. 연도별로 보면 2016년 8853명, 2017년 8887명, 2018년 8107명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던 마약사범은 2019년 1만411명으로 전년 대비 28.4% 늘었다. 2020년에는 1만2209명으로 17.3% 증가했다가 2021년 1만626명으로 12.9% 감소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숫자다. 올해 상반기에는 5988명으로 집계됐다.

 

연령별로는 10대와 20대의 마약사범 증가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대 마약사범은 2016년 81명에서 2021년 309명으로 5년 만에 3.81배로 늘었다. 20대는 같은 기간 1327명에서 3507명으로 2.64배 많아졌다. 전체 마약사범 중 초범도 2019년 1751명에서 2021년 1962명으로 증가했다. 청소년까지 마약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신봉수 대검찰청 반부패 강력부장이 지난 10월 1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마약·민생침해 범죄에 대한 대응'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약 종류별로 보면 향정신성의약품인 필로폰 압수량은 2016년 1만579g에서 2021년 6만5605g으로 6.20배, 엑스터시 압수량은 같은 기간 2601정에서 1만6778정으로 6.45배 증가했다.

 

통상 인구 10만 명당 마약 사범이 20명 이하일 경우 마약 청정국이라고 지칭하지만 현재 한국은 10만 명당 31.2명으로 기준치를 넘어선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비대면 거래를 이용해 마약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면서 연령이 낮아지고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이같은 마약사범에 대해 엄정 방침을 내건 만큼 검찰의 마약범죄 수사는 보다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약 10여년전에는 우리나라가 마약청정국이라고 했다”며 “어느 때부터 검찰은 손 놓고, 경찰만 이 업무를 다 부담하다보니 정보나 수사 협업에 있어서 효율이 떨어진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마약 값이 떨어진다는 건 국가가 단속을 안 했다는 것”이라며 “사실 좀 부끄러운 얘기”라고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이자리에서 “학생 마약사범이 10년 동안 5배가 늘었고, 마약사범 중에서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긴 지 오래”라며 “정부가 반드시 막아내겠다. 막아내는 방법은 유통과 제조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처벌”이라고 말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