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소환을 통보하면서 야당 내부 분위기는 흉흉해졌다. 정점에 달한 ‘야당탄압’에 맞서 단일대오를 유지한 채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과 이 대표 개인과 당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리며 당내 갈등의 불씨가 커졌다.
검찰이 소환을 통보한 사실이 알려진 22일 당사자인 이 대표가 민생경청투어를 위해 경북·강원 지방을 찾은 가운데 일부 민주당 지도부 인사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에 대한 소환통보가 ‘야당탄압’임을 부각하며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을 방침이다.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이날 검찰의 소환통보가 사전협의 없는 일방적인 통보라고 언급하며 이 대표는 28일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소환통보 당일은 민주당이 진행 중인 민생경청 투어 광주광역시 일정이 예정돼 있다. 다만 검찰이 소환일을 변경하는 등 변수가 생길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 대표가 국회로 돌아오는 23일 지도부 차원에서 다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김의겸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경찰의 팔을 비틀어 ‘죽은 사건’을 다시 살려내 마침내 이재명 대표 소환에 써먹고 있다”며 “제1야당 대표 소환은 사상 유례없는 폭거”라고 규탄했다. 김 대변인은 “제1야당 대표 소환은 중대 사안인데 사전 조율 한 번 없었다”며 “또 지금은 예산안으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중차대한 시점인데 제1야당 대표를 소환하겠다는 것은 정치를 말살하겠다는 것이고 오로지 수사로 온 세상을 밀어붙이겠다는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당 내부에서는 분위기가 갈렸다. 친명(친이재명)계로 분류되는 한 초선의원은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대장동 수사가 원래 제일 중점적인 수사 사안이었는데 거기에서 아무것도 안 나오니 성남FC 후원금 의혹 건으로 이 대표를 소환한 걸로 본다”며 “성남FC를 문제 삼을 거면 다른 지자체도 모두 똑같이 털어야 형평성에 맞는 것 아닌가”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비명(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당 일각에서는 이 대표 사법리스크가 현실화하며 당마저 위협한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이 대표 개인 리스크가 당 전체로 번지지 않도록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비명계 중진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이 대표를 둘러싼 각종 의혹 수사가 심화하면서 당이 어쨌든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됐기 때문에 많은 분이 그 부분을 걱정하고 있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이 대표 본인이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당이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결부돼 끼어들어 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대표가 소환에 응해야 하는지를 두고는 “어차피 피한다고 피해질 성격의 사건도 아니므로 당당하게 소환에 응해 의혹을 털고 오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여당은 이 대표를 향해 ‘사필귀정’이라며 방탄 국회에 숨지 말고 소환에 응하라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국민의힘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거대 의석의 방패막이 뒤에 잠시 몸을 숨겨볼 순 있어도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라며 “검찰 수사 과정상 필요시 피의자에게 소환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다. 거짓의 선동으로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양 수석대변인은 “애초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의 성남FC인수 목적은 ‘정치적 이득’이지 않았는가. 불법적인 행정도 서슴지 않았던 결과가 부메랑이 돼 ‘사법리스크’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이 대표의 피의자 소환은 사필귀정으로 될 것”이라며 “지금은 ‘국민 속으로, 경청 투어’ 행보를 할 때가 아니라 ‘수사 속으로, 고백 투어’ 행보를 할 시간”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설마 169석 호위무사 뒤에 숨어 스스로 ‘위리안치’하는 기상천외한 선택은 하지 않을 거로 본다”고 덧붙였다.
◆대장동·변호사비 대납 관련 수사도 속도
‘성남FC 후원금 의혹’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성남지청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소환 통보를 하면서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특혜 의혹 등 이 대표가 관여된 다른 수사들도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에 대한 계좌추적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수사에 착수한 만큼 조만간 이 대표 수사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는 크게 서울중앙지검의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특혜 의혹과 수원지검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사건 등으로 나뉜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발생한 대장동 사건은 지난해 11월 ‘윗선’을 밝히지 못하고 ‘대장동 일당’ 기소를 끝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다 올해 하반기 검찰 정기 인사로 교체된 수사팀이 위례신도시 사건 수사에 착수한 뒤 지난 10월 출소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폭로를 시작으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았다.
유 전 본부장의 폭로를 도화선으로 사건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번졌고, 검찰은 이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을 차례로 구속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검사 엄희준)는 정 전 실장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로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이 대표를 81회 언급했다. 검찰은 배경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취지라고 했지만 법조계에서는 이 대표와 정 전 실장 관계를 부각해 이 대표를 향한 수사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 전 실장 혐의 중에는 이 대표의 측근들이 민간사업자들로부터 대장동 개발 이익 중 428억원을 나눠 받기로 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검찰은 이 대표 부인 김혜경씨의 수행비서 배모씨가 지난해 6월 이 대표 집에서 대선 경선 기간 현금 2억여원을 가져 나와 이 대표 계좌에 입금한 정황을 포착해 계좌추적에 착수했다. 이르면 내년 초쯤 이 대표 소환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향후 조사 대상자나 일정에 대해서는 답변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수원지검이 수사 중인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이 대표가 2018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을 때 쌍방울그룹이 거액의 변호사비를 대납해줬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재무담당 부회장 출신 한모씨 등 전·현직 임원 2명이 2018∼2019년 쌍방울의 200억원대 전환사채(CB)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계열사 간 부당 거래에 관여하고 비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히 이 비자금 중 일부가 이 대표의 변호사비로 흘러들어 갔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최근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고 보완수사를 통해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의 핵심인물인 김성태 전 회장도 조만간 해외 도피를 마치고 귀국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