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법치주의를 둘러싼 혼란의 원인 중 하나는 법이 보통 사람뿐 아니라 힘있는 권력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 때문이다. 과연 그 법이 누구에게 적용되는지 따지지 않은 채 법치주의를 말할 수 없다. 통치자가 주권자가 아니고 법이 주권자이며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법의 지배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근본정신이다.
법치의 부재는 부패를 초래하고 공권력을 불신하게 만든다. 영어의 ‘부패’(corruption)는 라틴어로 ‘모두’(cor)와 ‘파괴한다’(rumpere)를 합친 ‘코룸페레’(corrumpere)에서 유래했다. 부패는 국가와 사회 모두를 파괴하고 산산조각내는 공동체의 적이라는 의미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존재방식이자 법칙이다. 정치인과 고위공직자의 경우에는 더욱 그래야 한다.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른 존재에게 전가하는 사회는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헌법이 규정한 이유는 국회의원이 국민 전체의 대표이고 행정부의 부당한 체포·구금으로부터 국회의 정상적인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16세기 영국에서 유래된 불체포 특권은 전제군주의 대권에 대항하여 의원과 의회가 획득한 특권에서 비롯되었고, 미국 헌법에 규정되면서 각국 헌법에 확대되었다. 이러한 불체포 특권은 입법권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행정권과 사법권에 대한 국회의 우위를 인정한 것일 뿐 결코 범죄를 저지른 국회의원을 과잉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28일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있는 노웅래 의원의 혐의는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에게 불법 정치자금 등 9억4000만원을 준 사업가 박모씨로부터 6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했다는 것이다.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현금 3억원이 추가로 발견되었고 노 의원은 그 용처를 제대로 소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국회의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당사자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혐의 입증에 충분한 증거를 확보한 경우에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노 의원의 경우도 구체적인 범죄행위가 특정되고 증거도 확보된 것으로 보인다. 부당한 검찰 수사의 희생양이고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당의 운명과 관련된 정치 사건이라며 기자회견까지 했지만, 구속과 진실 여부의 판단은 법원의 몫이다.
고위공직자와 정치권의 부패 의혹을 둘러싼 논란은 수십 년간 변함없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다. 김두관 의원은 2011년 경남지사 시절 7888만원의 재산을 신고했지만 아들은 6년간 영국 유학을 했고 딸은 중국 유학을 다녀왔다. 황희 전 문체부 장관은 매월 생활비로 60만원을 쓴다고 했지만 본인과 가족 계좌 46개를 보유하면서 빈번한 해외여행과 자녀를 매 학기 2000만원의 학비가 드는 외국인학교에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2017년 4억3445만원의 재산을 신고했지만 딸이 학비만 연간 1억원 이상 드는 미국 시카고 아트스쿨에 유학했고, 명품을 걸친 채 해외 유명 관광지를 다니며 찍은 사진으로 논란이 되었다. 국민들은 그 자금 출처에 대해 아직 납득할 만한 소명을 듣지 못했다.
노 의원 사건의 본질은 정치 부패다. 아무리 ‘K시리즈’가 좋다 해도 ‘K부패’는 막아야 한다. 체포동의안 표결이 자유 투표로 예정되어 있지만 그 결과는 여야 모두의 책임이다. 20대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었다가 실형이 확정된 홍문종, 염동열 의원의 사례를 국민들은 기억한다. 만약 동의안이 부결된다면 부패 옹호에는 여야가 한통속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고 일차적 책임은 다수당인 민주당에 있다. 불체포 특권은 결코 국회의원의 부패범죄 옹호를 위한 방탄막이 될 수 없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이번 체포동의안 처리 결과가 차기 총선에서 다시는 ‘선출된 도둑들’을 뽑지 않아야 한다는 정치권 물갈이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