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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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피격 공무원, 구명조끼 없이 실족”…檢, ‘文정부 월북 몰이’ 무게 왜

檢 수사 상황으로 ‘사건 재구성’

이씨 입고 있던 구명조끼 ‘미궁’
당시 바다 상황, 자진 월북 불가
국정원도 “불명확하다” 보고해
“사건 은폐 필요에 월북 몰아가”

‘첩보 삭제 지시’ 박지원·서욱 기소
文 조사 안 해…나머지 수사 진행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채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에서 실족해 북한 해역을 표류했다. ‘인위적 노력’ 없이도 27㎞ 떨어진 최초 발견 지점으로 표류할 수 있다.”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모습. 연합뉴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반년 넘게 수사 중인 검찰이 이 같은 잠정 결론에 도달했다. 검찰은 문재인정부가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려 ‘월북 몰이’에 나섰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막바지 수사를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의 수사 상황 등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해 봤다.

 

◆각종 수영 장비, 배에 고스란히…해상 있던 구명조끼 입었나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는 2020년 9월21일 돌연 사라졌다. 실종 다음 날 북한군에 살해돼 시신까지 소각됐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수사 과정에서 수집한 여러 증거 자료를 종합해 “이씨가 배에서 이탈할 당시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무궁화10호엔 구명조끼 외에 방수복, 오리발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씨가 별도로 구명조끼를 갖고 있지도 않았다.

 

이씨는 2020년 9월22일 오후 3시30분쯤 북한 해역에서 처음 발견됐을 땐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무궁화10호엔 없는 것이었다.

 

이 한자 구명조끼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국방부는 한자 구명조끼 등을 조사해 달라는 유족 요청에 “정보가 없다”고 답했다.

 

검찰은 이씨가 해상에 떠다니던 것을 입었을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2020년 10월쯤 해양경찰청 등이 서해를 수색하다 구명조끼 2개와 구명환 1개를 수거했는데, 구명조끼 하나가 이씨가 입고 있었던 것과 중요한 특징이 같았다”고 설명했다.

 

◆자진 월북 가능성 배제, ‘실족’ 방점…당시 바다 상황 등 근거

 

검찰은 이씨가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채 바다에 빠진 점을 주된 근거로 자진 월북 가능성에 대한 의심은 합리적으로 배제됐다고 본다. 여러 정황에 비춰 봤을 때 실족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당시 바다 상황이 이를 뒷받침한다. 성인 남성이 원하는 방향으로 장시간 헤엄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씨가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전 1시58분쯤 바다 위엔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 수온이 22도, 유속은 시간당 2.92~3.51㎞였다. 성인 남성의 수영 속도는 시간당 2㎞ 정도다. 검찰은 올해 9월 연평도 해역에서 현장검증을 진행했다.

 

이씨가 북한군에 최초 발견된 지점이 무궁화10호에서 27㎞ 떨어져 있는 점도 실족 가능성에 힘을 실어 준다. 검찰 관계자는 “동력을 이용하지 않고 간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다만 검찰은 인위적 노력 없이 이동 가능한 거리로 본다. 해경이 수사 당시 4개 기관에 표류 예측 분석을 의뢰했는데, 2개 기관의 결과에 그런 사례가 포함돼 있었다.

 

또 이씨는 가족 관계가 긴밀했고,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을 때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안정된 공무원 신분에 외항선 간부급 선원으로 재취업할 수 있는 경력도 있었다. 북한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이는 모두 자진 월북 가능성에 반하는 정황증거다.

 

사건의 책임자인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은 “특별취급정보(SI) 정보에 이씨가 월북 의사를 표명한 내용이 있었다”며 “월북이 가장 유력한 실종 원인으로 추정됐다”고 항변한다. 사건 당시 국정원은 자진 월북이 불명확하다고 보고했다. 국방부 등 관계 기관 실무자들도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자진 월북으로 보기 어렵다”고 진술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왼쪽),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서훈 ‘보안 유지’ 지시에…국방부·국정원 첩보 5650여건 삭제

 

검찰 수사로 이씨 사망 다음 날인 2020년 9월23일 국방부가 관련 첩보와 보고서 5600여건, 국정원은 50여건을 삭제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중복된 것도 있지만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검찰 판단이다. 감사원은 올해 10월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며 국방부와 국정원이 각 60건, 46건의 첩보를 삭제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29일 첩보 삭제 지시와 관련해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서 전 장관은 2020년 9월24일 이씨가 자진 월북한 거란 취지의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거나 허위 발표 자료 등을 작성·배부한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박 전 원장과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은 국정원법 위반, 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박 전 원장과 서 전 장관이 서 전 실장의 보안 유지, 즉 사건 은폐 지시에 동조해 관련자들에게 첩보 삭제를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사실이 알려지면 국민을 구조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고 남북 관계에도 악재로 작용할 것이 예상돼 서 전 실장 등이 사건을 은폐할 필요가 있었고, 결국 월북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또 이씨 사망 다음 날 오전 1시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이 예정돼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은 영상을 통해 국제사회에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 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의 첩보 삭제 지시 혐의, 감사원 수사 의뢰를 비롯한 나머지 고발 사건 수사를 이어 나간다. 문 전 대통령 서면조사는 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자진 월북 취지의 발표를 비롯해 국가안보실 등 국가기관의 조치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인지가 수사팀이 규명할 실체”라며 “우리 사회에서 자진 월북자로 규정되는 건 당사자뿐 아니라 남은 가족에게도 월북자 가족이란 낙인을 남길 수 있어 명확한 근거를 갖고 사법절차에 준하는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