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가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아 홈페이지에 게재한 ‘6·25가 미군에 남긴 5가지 유산’이란 글을 흥미롭게 읽었다. 먼저 6·25는 1947년 미 육군에서 분리돼 독립한 미 공군이 처음 수행한 전쟁이다. 6·25를 통해 미군이 주도하는 세계 유일의 유엔군사령부가 생겨나 지금도 존속한다. 미국이 공산주의 확장을 막고자 채택한 ‘봉쇄정책’을 실행에 옮긴 최초 사례이기도 하다. 또 6·25는 흑인과 백인이 한 부대에 속해 치른 첫 전쟁이다. 1948년까지는 흑인들로만 구성된 부대가 따로 있었다.
가장 시선을 끈 것은 다섯 번째다. 계급을 막론하고 미군 장병 누구나 지켜야 하는 행동수칙(Code of Conduct)의 제정이다. 정전 후 2년이 지난 1955년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탄생했다. ‘저항할 수 있을 때까지 저항하고 쉽게 항복해선 안 된다’ ‘적군에 붙잡힌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탈출을 시도해야 한다’ ‘포로가 되었을 때 동료들과 신의를 지켜야 하고, 그들에게 해로울 수 있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 ‘포로 심문에서 조국에 누가 되는 진술을 해선 안 된다’ 등 내용이다.
미군이 행동수칙을 만든 것은 6·25 기간에 접한 공산주의자들의 심리전 실태에 놀랐기 때문이다. 전쟁 당시 국군 포로는 북한군, 미군 등 유엔군 포로는 중공군이 각각 관리하는 식으로 분담이 이뤄졌다. 중공군에 붙잡힌 미군 포로 가운데 무려 21명이 전후 본국 송환을 거부했다. ‘미군 지휘부의 독단이 마음에 안 들어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싫어서’ 등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 군 당국은 물론 가족까지 나서 설득했으나 막무가내였다. 미 합동참모본부는 충격에 빠졌다. 미군 포로를 상대로 한 공산주의자들의 세뇌 시도와 고문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음을 합참도 인정해야만 했다.
세계에서 공산주의자들만큼 심리전에 능숙한 집단은 없다. 각급 부대마다 지휘관에 버금가는 이른바 ‘정치위원’을 둬 병사들의 정신무장을 감독한다. 전쟁이 나기 전부터 유언비어 유포로 적국을 동요시킨다. 포로를 자기네 편으로 포섭하기 위해 집요하게 달래고 때로는 폭력까지 동원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발달한 요즘 가짜뉴스는 최고의 심리전 수단이다. 남북 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북한이 거짓말 공세로 우리 안보를 흔들 가능성을 우려한다. ‘최전방 부대에서 탈영이 잇따른다’ ‘부유층 자제들이 앞다퉈 출국한다’ ‘주한미군이 철수를 검토한다’ 등 가짜뉴스를 SNS에 퍼뜨려 현역 장병은 물론 예비군들의 사기 저하도 꾀할 것이란 얘기다.
북한 심리전에 맞서 우리 군 역시 정신전력 제고에 힘써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마침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우리 장병들을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무엇을 지키고, 누구와 싸우며, 어떻게 이길 것인지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국가관, 대적관, 군인정신을 확립하겠다”고도 했다. 일단 방향은 잘 잡았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 대책을 마련해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1970∼1980년대 스타일의 천편일률적인 반공교육에서 벗어나 신세대 장병들도 수긍할 수 있는 논리와 스토리를 개발하고 발굴하는 것이 시급하다.
행동수칙 도입 이후 미군은 달라졌을까. 존 매케인 전 공화당 상원의원의 사례를 보면 긍정적 평가를 내릴 만하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7년 해군 소령 매케인은 그가 몰던 전투기가 추락하며 포로로 붙잡혔다. 이듬해 해군 제독이던 그의 부친이 미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에 임명됐다. 월맹 측은 일종의 선전 효과를 노리고 매케인에게 은밀히 석방을 제안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포로들과 신의를 지켜야 한다”며 단호히 특혜를 거절했다. 결국 6년 가까이 고통스러운 포로 생활을 한 끝에 1973년에야 풀려났다.
2018년 매케인이 타계했을 때 베트남에서조차 “고집스럽고 강직한 인물”이란 찬사가 나왔다. 적마저 감탄하고 인정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정신전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