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토끼의 해’인 계묘년(癸卯年) 새해 첫날 서울과 수도권 직장인들의 출근길은 어땠을까. 풍요와 희망을 되새기며, 안전하고 무탈한 출근길을 꿈꿨을 이들이지만, 일부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야 했다. 사고 여파로 ‘제시간에’ 직장에 닿기만을 바랐거나 인상이 예정된 교통비 탓에 어깨가 무거웠을 직장인들도 적잖았다.
2일 오전 경기도에선 지난달 29일 발생한 제2경인고속도로 북의왕IC 인근 방음터널 화재로 일부 구간의 통행이 차단되면서 극심한 출근길 교통 혼잡이 빚어졌다. 방음터널 화재 이후 사고 수습과 원인 조사를 위해 안양 석수IC부터 성남 여수대로IC까지 21.9㎞ 구간이 통제되면서 성남 방향 통제 시작점인 석수IC의 경우 후방 21㎞ 지점인 안현JC까지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행했다. 차량은 가다 서기를 반복했고, 일부 램프에선 빠져나오려는 차들이 뒤엉키며 극심한 정체가 이어졌다.
출근길 시민들은 잠시 겪는 불편보다 스스로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암울한’ 현실을 비판했다. 성남시 분당신도시에서 서울 관악구로 출근하던 40대 직장인 강모씨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면서 “안전대책도 무방비였는데, 사고 수습도 시민은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직장인 정모(38)씨는 “불이 난 갈현고가교 방음터널 아래를 지나는 47번 국도로 우회했는데 소통이 원활해 다행”이라면서도 “뼈대만 앙상한 방음터널을 지켜보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지하철 사고도 승객들의 출퇴근길 발걸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지난달 31일 성남시 신분당선 판교역과 정자역 사이 선로에서 전동차가 운행을 중단하는 사고가 발생해 승객들이 한 시간 넘게 고립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23일에는 지하철 3호선 무악재역과 독립문역 구간 선로에서 화재가 발생해 약수역∼구파발역 양방향 구간 열차 운행이 2시간가량 중지됐다.
이날 오전 서울지하철 1호선을 타고 출근길에 오른 직장인 유모(36)씨는 “요즘 뉴스에서 지하철 고장 기사를 자주 접하다 보니 지하철 안에서 조그만 소리만 나도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서울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에서 벌어진 일부 장애인 단체의 시위도 시민 불편을 가중했다.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한 시민은 좁은 틈으로 지하철을 타다가 넘어질 뻔했다. 출근 중이던 40대 박모씨는 “경찰이 문 앞을 막고 있어 머뭇거리다 결국 전동차에 타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경기 김포에서 서울 여의도를 오가는 40대 직장인 이모씨는 “매일 몸을 구겨 넣고 1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도시철도는 지옥철과 다를 바 없다”며 “지자체가 어떤 대안이라도 내놨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2019년 9월 개통한 도시철도 골드라인의 경우, 출퇴근 시간대 혼잡률은 300%에 육박한다.
출근길 혼잡 외에 교통비 등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새해 전국 대중교통·상하수도 요금 등의 인상이 줄줄이 예고된 가운데 가스요금 인상까지 겹치면서 가계 부담이 가중된 것이다. 서울시는 오는 4월 말 지하철,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요금을 300원씩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고, 경기도도 서울에 준하는 수준으로 택시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인천은 시내버스와 광역버스 요금 인상을 고려한다. 또 서울과 인천에선 상수도 요금 인상이, 경기도에선 일부 시·군에서 쓰레기봉투 가격 인상이 예상된다.
경기 수원에서 광역버스로 서울을 오가는 대학생 김모(23)씨는 “지난해 말 광역버스 입석 금지 조처가 내려진 뒤 여전히 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택시요금까지 올리면 이중으로 짐이 된다”고 했다. 인근 용인시의 주부 최모(40)씨도 “월급만 그대로이고 아이들 학원비와 공공요금, 외식비까지 줄줄이 올라 체감물가는 상상 이상”이라고 전했다.
막막한 현실 속에서 서울시가 운영하는 심야버스인 ‘올빼미버스(N버스)’는 다시 희망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새해 첫 월요일부터 야근 예정이라는 직장인 안모(35)씨는 올해 택시 대신 올빼미버스를 더 자주 이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배차 간격이 길어서 잘 이용하지 않았는데, 앞으로 운행 횟수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인세진 우송대 교수(소방안전학)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안전은 국가가 지켜주는 게 아니라 개인 스스로 지켜야 할 덕목이 됐다”며 “국민 스스로 안전의식을 높여 위험을 직감하고 사고를 줄이도록 안전교육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