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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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든 산이든… ‘토끼의 삶’ 만만치 않네요 [연중기획-지구의 미래]

반려동물… 식용으로… 실험재료… 야생 생존

토끼의 해 맞아 재조명

 

반려 토끼의 그늘

가격 저렴 쉽게 구입했다 쉽게 버려

지자체·학교 등서 키우다 유기 많아

동물등록제 대상 아냐 고발 어려워

 

양질의 단백질원

유럽 토끼고기 소비량, 오리의 10배

국내 사육 급감… 10년전 4분의 1로↓

해썹 없고 종 정보 몰라 ‘깜깜이 사육’

 

실험 케이지 일생

번식 빠르고 혈액 얻기 쉬워서 활용

동물실험 화장품 유통 금지에 감소

국내선 전체 동물실험 건수 늘어나

 

개체수 준 산토끼

한반도 북한 ‘우는 토끼’·‘만주 토끼’

남한선 산토끼 불리는 ‘멧토끼’ 살아

한때 유해조수서 멸종위기 후보 관리

토끼해를 맞아 재소환한 토끼 퀴즈! ‘산토끼의 반대말은?’ ‘집토끼’라고 하면 당신의 IQ는 60. IQ가 올라갈수록 ‘죽은토끼’, ‘바다토끼’, ‘판토끼’, 그리고 IQ 200은 ‘알칼리토끼’라고 한다죠? 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개 글이지만, 실제로 토끼에겐 퀴즈 정답처럼 다양한 ‘토생(?生)’이 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은 ‘토끼’ 하면 마스코트나 동화에 나오는 캐릭터를 떠올릴 겁니다.

 

실물 토끼라면 놀이동산이나 동물원 먹이주기 코너에서 봤을 거고요. 이 밖에도 다양한 삶을 사는 토끼들이 있습니다. 반려동물로 사람과 함께 사는 토끼도 있고, 실험용이나 고기용으로 자라는 토끼도 있죠. 산에 사는 야생의 멧토끼도 있고요.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토끼는 어디서도 주목받는 일인자는 아닙니다. 반려동물 중에는 개와 고양이에 밀리고, 식용으로는 소, 돼지, 닭의 위상에 비할 바 아니죠. 멧토끼가 화제로 떠오른 경우도 별로 없고요. 그러다 보니 토끼에겐 비주류의 그늘이 드리우곤 합니다. 토끼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하소연을 할까요?

 

◆귀여워서 애틋한 ‘집토끼’

 

토끼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귀여움입니다. 귀여우면 갖고 싶죠. 인터넷에 토끼 분양을 검색해보면 어렵지 않게 토끼농장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가격도 개나 고양이에 비해 훨씬 저렴하고요. 그렇지만 키우는 일은 만만치 않습니다. 먹이사슬 하단에 있는 초식동물이다 보니 예민합니다. 좋은 의도로 한 행동도 토끼에겐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말이죠. 또 토끼는 쥐처럼 이가 계속 자라기 때문에 이를 갈 수 있는 무언가를 마련해줘야 하고, 일명 ‘젤리’라고 하는 폭신폭신한 발바닥 패드도 없어서 반드시 매트를 깔아줘야 합니다. 저렴한 분양가에 덜컥 토끼를 샀다간 난감할 수 있죠.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 토끼장에서 구조된 토끼들. 토끼보호연대 제공

“적어도 몇백만원은 갖고 시작해야 해요. 나이가 들어 만성질환을 관리하려면 1000만원 이상 쓸 각오도 해야 하고요.” (김지수 토끼보호연대 활동가)

 

토끼보호연대(토보연)는 국내 하나뿐인 유기토끼 보호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호소에는 가볍게 샀다가 가볍게 버려진 토끼가 현재 82마리 있습니다. 유기견, 유기묘와 다른 유기토끼의 특징이 있다면, 지방자치단체나 기관에서 키우다 버리거나 문제가 돼 구조된 경우가 많다는 거죠. 지난해 경기 군포 수리산에서 발견된 토끼 떼가 대표적입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가 토끼를 기르다 새끼가 늘자 감당하지 못하고 수리산까지 가서 ‘원정 유기’를 했죠. 현재 토보연은 수리산 유기토끼 11마리를 보호 중입니다. 이 외에 서울 동대문구가 조성한 배봉산 토끼장에서 2020년 여름 폭우 때 구조한 토끼 14마리,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 토끼섬에서 시민 볼거리로 사육되다 방치 논란이 일자 인계받은 토끼 4마리 등 최소 30마리가 지자체·기관에서 키우던 것이죠.

 

정부가 하는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에서도 토끼는 개와 고양이 다음으로 많습니다. 동물 유기는 기르는 사람이 무책임한 탓이지만 토끼가 잘 버려지는 데는 제도적 허점도 있습니다. 김 활동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토끼는 동물등록제 대상이 아니라 유기범 특정이 어려워 저희도 유기범 고발 시 애로사항이 있어요. 그리고 학교나 지자체는 동물원수족관법상 동물원에 해당하지도 않고, 동물보호법상 위탁관리업에도 해당되지 않아 제도적으로 사각지대에 있죠.”

 

지난해 11월 국회를 통과한 야생생물법은 동물원·수족관이 아닌 시설에서 야생동물을 전시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올 12월부터 포유류는 교육용일지라도 동물원이 아닌 곳에서 전시할 수 없죠. 허점을 파고들어 꿋꿋이 토끼 사육을 강행하는 기관이 없길 바랍니다.

경북 상주의 ‘감 먹은 토끼농장’. 배문수 회장 제공

◆고기가 돼서 만나는 ‘죽은토끼’

 

“옛날엔 뒷산에서 토끼를 잡아서 먹었는데…”라고 이야기하는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1950년대 말 기사 중에는 “양토(토끼를 기름)를 시작하는 사람의 수가 현저히 격증하고 있음은 좋은 현상”이라며 “토끼고기를 여러 선진국민과 같이 즐겨 먹도록 하자”는 글도 있습니다. 배고팠던 시절 토끼는 값싸게 얻을 수 있는 양질의 단백질원이었죠.

 

유럽에선 1인당 토끼고기 소비량이 제법 많은데 특히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체코는 돼지·닭·소에 이어 많이 먹는 고기입니다. 오리보다 최대 10배나 더 먹죠.

 

한국은 육류 소비가 빠르게 느는 나라지만 토끼는 그렇지 않죠. 식용토끼를 기르는 농장도 급감하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주요 통계를 보면 2021년 말 기준 국내에는 1890호의 농가에서 4만6008마리가 사육되고 있습니다. 10년 전에는 4809호에서 20만마리 넘게 길렀는데 약 4분의 1토막 난 것이지요.

 

“예전엔 중간상이 토끼를 사서 자기 집에서 도축해 식당에 고기를 대줬어요. 그런데 박근혜정부 초기에 불법도축 단속을 하면서 식당에서 토끼고기 취급을 안 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애완토끼로도 많이 기르다 보니 ‘그렇게 귀여운 걸 어떻게 먹어’ 이런 인식도 작용했고요.”

 

경북 상주에서 토끼를 기르는 배문수 한국특수가축협회장의 설명입니다.

 

“시설만 깨끗하게 하면 수출도 할 수 있어요. 중국 상위 1%는 프랑스 토끼를 수입해서 먹고, 러시아는 중국 토끼를 수입해요. 우리도 이런 시장을 노려볼 수 있죠.” (배 회장)

 

문제는 깨끗하고 체계적인 사육이 현재는 농장주의 양심에 달려 있다는 거죠. 농장과 가공장에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해썹)이나 축산물 등급제도 없습니다. 유기축산물, 동물복지축산물 인증 기준도 없고요. 종 정보도 없습니다. 우리의 토종 멧토끼는 일단 아닐 거라고 합니다.

한반도에는 우는토끼(사진)와 만주토끼, 멧토끼 등 세 종류의 토끼가 있다.

“농장에서 기르려면 새끼를 많이 낳아야 하는데 멧토끼는 두세 마리씩 1년에 두세 번밖에 출산을 하지 않아요. 증식이 안 되니까 경제성이 없죠. 멧토끼(Lepus속)와 외국 래빗(Rabbit·멧토끼를 제외한 토끼속)이 섞일 가능성도 없습니다. 속(屬)이 달라서 교배가 안 되거든요.” (조영석 대구대 교수)

 

국립축산과학원 관계자도 배 회장도 ‘잡종’이라는 것 외엔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깜깜이 상태로 길러지고 있는 거죠.

 

◆케이지에서 일생을 ‘실험용 토끼’

 

인간을 위해 사육되는 토끼 중엔 실험용 토끼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동물실험에 사용되는 토끼는 외국에서 들여온 뉴질랜드화이트(NZW)가 대부분이고, 대형 품종인 플레미시 자이언트도 일부 있습니다. 토끼는 혈관이 잘 보이고 설치류에 비해 체구가 커서 다량의 혈액을 얻을 수 있습니다. 번식도 빨라 세대에 걸친 실험을 하기도 좋고요.

 

그렇지만 동물실험에 동원되는 토끼 수는 줄고 있습니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 동물실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1년엔 4만1659마리가 사용됐지만 2016년엔 3만7373마리로, 2021년엔 2만6676마리로 줄었습니다. 그 이유를 박재학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유전자편집기술이 발달하면서 마우스(생쥐)를 쓰거나 사람 질병 모사를 위해 고등동물을 활용하는 경우가 늘었어요. 토끼는 좀 어중간하죠. 무엇보다 대체실험 영향도 큽니다. 예전에는 화장품 개발할 때 토끼 눈 점막이나 피부에 시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동물실험 한 화장품은 팔기 어려우니까 대체법을 쓰게 된 거죠.”

2018년 3월 화장품법이 개정되면서 동물실험을 실시한 화장품은 유통·판매를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동물실험엔 3R 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최대한 비동물실험으로 대체(Replacement)하고, 사용동물 수를 줄이고(Reduction), 동물실험을 할 땐 최대한 고통을 완화(Refinement)하라는 겁니다. 토끼의 사례는 제도가 달라지면 동물의 희생을 줄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런 토끼 사례가 다른 동물로 확대되면 좋으련만 우리나라 전체 동물실험 사용건수는 늘고 있습니다. 2011년 165만9817마리에서 2016년 287만8907마리로, 2021년엔 488만252마리로 껑충 뛰었죠. 마우스, 래트 같은 설치류뿐 아니라 개나 고양이, 돼지도 늘었습니다.

 

유럽연합(EU)도 연구·교육 등에 동원되는 동물을 집계하는데요, 완만한 감소 추세를 보입니다. 2011년 1150만마리에서 2016년 982만마리로 줄었고, 2019년에는 1040만마리가 됐습니다. 2018년부터 노르웨이가 포함돼 늘어난 것처럼 보일 뿐 기존 회원국 기준으로 따지면 2016년보다 60만마리가량 줄었습니다.

 

◆“바깥도 녹록진 않아” 산(山)토끼

 

사람과 함께 사는 토끼가 마냥 행복해 보이진 않네요. 그럼 산에 사는 멧토끼는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요?

만주토끼

먼저 산토끼의 정체를 알아봅시다. 토끼는 우는토끼과(Pika)와 토끼과로 나뉘고, 토끼과는 다시 멧토끼류(Hare)와 굴토끼류(Rabbit)로 나뉩니다. 한반도엔 우는토끼와 멧토끼, 만주토끼(멧토끼류)가 살고 있습니다.

 

보통의 토끼는 울음소리를 내지 않지만, 우는토끼는 특이하게 ‘삐익’ 하는 소리를 내서 붙은 이름입니다. 귀도 둥글고 짧아 언뜻 보면 쥐를 닮았습니다. 남한엔 없고 북한에만 사는데 북한에선 쥐토끼라 불렀다고 해요. 북한 우는토끼는 영어이름도 코리안 피카(Korean Pika), 학명에도 코리아나(Coreana)라는 말이 들어가는 귀한 동물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잘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하네요.

 

“1000m 이상 고산에 살기 때문에 기후변화 지표동물이에요. 북한에서도 묘향산 이북에만 사는데 북한에 가서 조사를 할 수 없다 보니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서도 정보부족(DD·Data Deficient)으로 분류돼 있죠.”

 

IUCN 토끼전문가 그룹에 있는 조영석 교수의 설명입니다. 만주토끼도 북한 고산지대에 살 것으로 짐작되지만 확인되지는 않았어요.

 

우리나라에서 산토끼라고 부른 동물은 멧토끼를 말합니다. 한때 유해조수로 분류될 정도로 많던 멧토끼인데 최근엔 보기 힘들어졌다고 해요. 2001년 야생동물 조사에서 100㏊에 12.3마리가 확인됐는데 2017년엔 1.8마리로 급감했습니다.

멧토끼.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갑자기 줄었다면 제일 먼저 의심할 수 있는 게 감염병이죠. 토끼는 토끼바이러스성출혈열(토끼출혈병)이라고 하는 병에 걸릴 수 있어요. 70∼90%가 죽는 무서운 병이죠. 1984년 국내 농장에 토끼출혈병이 번져 3분의 2가 죽은 적이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아직 야생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되진 않았습니다. 다른 원인이 있다는 뜻이죠.

 

“토끼는 깡충깡충 뛰기 때문에 빽빽한 숲보단 초지를 좋아해요. 그런데 우리 산림은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죠. 서식 여건이 나빠진 겁니다.”

 

국립생물자원관 서문홍 연구사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조 교수도 비슷하게 말합니다.

 

“그렇다고 토끼를 위해 나무를 밀어버리자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다양한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거죠. 다양한 수종, 다양한 연령대의 나무가 있어야 해요. 초지 생태계도 필요하고요. 그런데 우리는 급하게 산림녹화를 하다 보니 생태계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일 수종으로 깔곤 했어요.”

 

토끼가 줄면서 2005년엔 수렵종에서 제외됐고, 광주와 울산은 보호야생동식물로 지정하고 있어요. 그 많던 멧토끼를 몰아낸 것 역시 어쩌면 우리 인간일지 모르겠네요.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