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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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관계 하면 500만원” 노인 울리는 성혼계약서…음행매개 논란도

‘성관계를 한 경우 성혼사례금을 지급한다’

 

전국 10여곳에 사무실을 둔 한 결혼중개회사의 회원약관 중 일부로, 성관계를 조건으로 ‘성혼사례금’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10일 세계일보 취재에 따르면 해당 업체는 주로 70대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이성을 소개시켜주겠다”며 회원가입을 유도, 계약서를 쓰게 한 뒤 신청료와 추진료, 성혼사례금을 받아 챙겼다.

 

업체가 제시한 성혼 기준은 ‘혼인신고를 한 경우, 결혼식날짜를 정한 경우’ 외에도 ‘성관계를 한 경우’ 등이 포함됐다. 그리고 이 같은 사항을 업체에 알리지 않을 경우 ‘불고지위약벌금’ 약관을 근거로, 노인들에게 수백만원의 위약금을 요구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회원들은 ‘계약서의 내용을 나중에 알게 됐다’, ‘사람을 소개받은 적 없는데 성혼사례금을 청구했다’며 반발했지만 업체는 이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황이다.

 

피해를 입은 이들은 대부분 70대 이상 고령의 노인으로. “계약내용을 설명도 안 해주고 사인만 하라고 했다”며 “성혼사례금을 지급해야한다는 내용도 들어본 적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작성된 계약서 상 다른 부분은 부동문자로 기재되어있지만 성혼료 지급 란에는 수기로 금액이 쓰여 있었다.

 

현재 회원들은 유사한 피해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업체를 상대로 형사고소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해진 약관을 계약 시 제대로 설명하지 않을 경우 약관규제법 위반에 해당, 성혼사례금 지급 자체가 무효라는 주장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70대 A씨는 회원가입에 따른 신청료와 추진료를 납부하지 않았음에도 업체로부터 약 1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약정금) 소송을 당했다. 업체가 소개한 이성과 교제를 하고 성혼되었으므로 성혼사례금 지급 사유에 해당한다는 이유다

 

업체는 “정식 계약에 따른 정당한 청구” 라는 주장이지만 A씨는 “회원가입을 한 사실도 없고 이성을 소개받지도 않았다”고 반발했다.결국 민사소송까지 이어진 이 문제는 지난해 법원이 A씨의 손을 들어주면서 끝이 났다.

 

피해 회원들이 제공한 계약서 중 일부. 이들은 사전에 업체 관계자로부터 관련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과정에서 A씨 측 변호인은 “계약서를 작성하고 가입을 원하지 않아 신청료와 추진료를 지급하지 않았다”며 “원고도 피고(A씨)에게 만남을 주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피고가 가입을 원하지 않자 임의로 ‘성혼료 란’에 ‘오백만원(500만원)’을 기재하는 방법으로 문서를 변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재판부는 업체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기각하고 소송비용도 업체 측이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강원지역에 거주하는 80대 B씨도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B씨는 “계약서의 내용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했고, 사인하라고 해 사인만 했다”며 “성혼사례금과 위약금을 내라고 해 억울하다”고 말했다. B씨 역시 A씨와 마찬가지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지만, 성혼사례금은 물론 구체적인 약관 내용을 충분하게 설명 듣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부 성혼사례금 지급 조건이 반사회적 법률행위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업체는 성혼사례금을 지급하는 사례 중 하나로 ‘성관계를 한 경우’를 계약서에 기재했다. 업체가 회원에게 소개해준 이성과 성관계를 하면 그 즉시 업체에게 성혼사례금을 지급해야한다는 내용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같은 계약이 형법 제242조(음행매개)를 위반했다는 의견을 내놨다. 해당 조항에는 ‘영리의 목적으로 사람을 매개해 간음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적시돼 있다. 또 이를 근거로 결혼중개업체의 계약내용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결혼중개업체 관계자는 “결혼을 전제로 부부관계 등 교제 사실을 숨기고 성혼 사실을 부인했다”며 “회원가입 계약서에 따라 성혼사례금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계약 당시 충분한 설명을 했고 회원들이 직접 서명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춘천=박명원 기자 033@segye.com